아티스트 웨이-P106~109 [내부의 걸림돌, 회의주의]
폭넓은 삶을 추구하는 우리에게 가장 큰 걸림돌은 마음속 깊은 곳에 있는 회의주의이다.
이것은 '내밀한 의심'이라고 부를 수 있는데, 종교를 믿든 안 믿든 상관없이 작용하는 것 같다.
우리는 창조주나 창조성이란 것을 의심한다.
보이지 않는 손이 돕고 있다는 것을 믿기 어려운 이유는 단 하나, 우리가 창조적인 사람이 될 수 있음을 의심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런 의심으로 자신을 감싸며 행운의 선물에서 흠을 찾아내려고 할 뿐만 아니라, 삶에서 이 행운을 몰아내려고 안달복달하는 것이다.
당신 자신을 신과 신의 사자가 빛을 비춰주고 끊임없이 말을 거는 찬란한 권력자로 생각하라. (브렌다 율런드)
창조성 회복 과정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우리의 새롭고 방대한 계획을 우주가 도와줄 수 있다는 가능성을 믿지 않고 오히려 이에 저항하게 된다는 점이다.
나는 우리의 마음을 '방'이라고 생각한다.
그 '방'에 삶이라든지 신, 가능한 것과 불가능한 것에 대한 일상적인 생각을 모두 담아놓는다.
우리는 지금 창조성을 회복하는 과정에 있으므로 다른 접근 방식이 필요하다.
그 방식이란 우리의 회의주의를 잠시 옆으로 밀쳐두고 낯선 생각이나 우연한 기회가 스치고 지나갈 때마다 문을 조금씩 더 열어가는 것이다.
창조성을 회복하기 위해 우리의 믿음을 바꿀 필요는 없다.
그러나 그 믿음을 꼼꼼히 검토하는 것은 필요하다.
창조성 회복은 무엇보다도 마음을 여는 연습이다.
다시 한번 당신의 마음을 문이 살짝 열린 방이라고 상상해보라.
문을 조금 더 여는 것은 마음을 조금 더 여는 것이다.
필름이 아무리 늦게 돌아가도 영감은 언제나 자신이 선택한 촬영기사에게 충분한 시간을 준다. (마이너 화이트)
2021-11-01/#019 [모닝 페이지] 새벽 필사
딸아이가 18살이 되니 참 좋다.
마음이 어지러워 사색이 필요할 때 딸아이가 손 내밀어주었다.
"같이 산책할까?"
그 말이 고마웠다.
함께 2만보를 걸었다.
동네를 돌고 또 돌며, 얕은 야산을 걸으며 딸아이의 수다를 들어주었다.
그러다가 신호등에 걸려 멈춰 섰다.
아무도 없는 밤,
차도 사람도 없는데,
맥없이 지나가는 시간... 똑딱똑딱...
갑자기 딸아이가 손을 잡더니 후다닥 뛰었다.
그러고서 하는 말...
"남 탓하며 살아!"
"응?"
"아니, 신호가 길어도 너무 길잖아. 무단횡단을 한 건 신호등 때문이야."
"ㅎㅎㅎ"
말없이 웃었다.
"엄마도 그러니까 남 탓하며 살라고..."
이제는 말하지 않아도 아는 사이가 됐나 보다.
속이 어지러운 것을 일일이 말하지 않았는데도 눈치 100단이 되었다.
걸으며 내내 딸아이의 말 '남 탓하며 살아!'가 귓가에 맴돌았다.
그래... 때로는 남 탓도 하며 살아보는 거지 뭐...
내 안의 창조성을 깨우기 위해 닫힌 마음의 문을 살짝 열어두는 것이 필요하다고 작가는 말한다. [마음의 문]을 여는 것...
열어 보이는 듯 하지만 사실 꼭꼭 닫아두고 부지불식간 누군가 허락 없이 들어올까 긴장하며 살고 있지는 않았을까? 생각해 보았다. 하루에도 수많은 일들이 스쳐 지나가는데 꼭꼭 닫힌 문 안에 갇혀 새로운 세상을 바라보지 못한 채 고립된 자아를 갖고 살아가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 봐야겠다.
내가 선한 삶을 살고자 노력하는 데에는 특별한 믿음이 있어서이다. 기적을 경험해 보지 않으면 믿거나 말거나가 되겠지만, 내게 미치는 특별한 은혜가 있음을 믿고 살아간다. 내가 한 노력 이상의 것으로 갚아주시는 조물주의 은혜가 그러하고, 내 영역이 미치지 않는 곳에서도 온 가족이 건강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 또한 은혜이다. 그 마음을, 그 은혜를 함께 나누며 좋은 에너지를 전달하면서 오늘도 새 달을 맞아 힘차게 시작해 본다. 11월! 기대가 된다. 좋은 일만 가득할 것 같은 예감으로 오늘도 또 열심히 살아보자.
자식에게서 깨달음을 얻는 로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