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더위가 시작되고 아이들의 방학도 예년보다 당겨져 7월 중순 고등부의 방학에 이어 초중등부도 방학을 했습니다. 음력 절기 인 초복과 중복이 7월에 몰려 있었고, 코로나와 더위를 핑계 삼아 올여름은 집에서 휴가를 대신하기로 합의를 했습니다. 그리고 가족들에게,
"어차피 올 해는 휴가도 안 갈 텐데 휴가 왔다 생각하고 집에서 시원하게 에어컨 틀고, 맛있는 거 시켜먹으면서 즐겨볼까?"
호기롭게 큰소리를 탕탕 쳤죠.
우리 집은 서남향이라 바람도 꽤 잘 통하고 시원합니다. 그래서 7월 초에는 에어컨을 틀지 않고도 지낼만했었습니다. 초복을 기점으로 더위가 짙어지고 3주가량 에어컨을 사용했지만 다른 가정보다 에어컨 사용 빈도가 적다고 느꼈습니다. 중복을 기점으로 더위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고 에어컨 사용시간이 점점 길어졌습니다. 그래도 나름 집중되는 전력 사용량에 신경을 써야겠다는 생각으로 가정 내 에어컨 온도를 거의 27~28℃로 맞추고 선풍기를 사용했습니다. 그래서 전년도에 비해 에어컨 사용량을 줄였다고 생각했었죠.
에너지 사용량 1310kwh
그러나, 더위가 일찍 시작되어 무더운 기간이 2주 간 집중되었고, 에어컨을 틀었던 기간도 7월 한 달에 몰렸던 것이 문제였습니다. 가족과 함께 휴가차 여행을 떠나면 2박 3일 숙박료와 여비로 솔찬히 비용이 발생될 것이니 휴가를 가지 않는 대신 '가족들과 여름을 시원하고 즐겁게 보내보자'는 생각이었는데 막상 고지서를 받고 보니 가슴이 시려옵니다.
7월 전기사용량
전기세만 392,040원.
아파트에 설치된 빌트인 에어컨이 2010년형이고 실외기의 동작 방식이 가변형이라 요즈음 인버터식 에어컨보다는 전력 소비가 많은 편입니다. 전기세가 좀 나올 거라 예상은 했었지만 40만 원가량 전기세 폭탄을 맞으니 조절을 조금 더 했었어야 하지 않았나 후회가 밀려옵니다. 기분 상으로는 전년도보다 에어컨 사용을 줄였다고 느꼈는데 전년도에는 7~8월에 걸쳐 더위가 찾아왔고, 올해는 7월 한 달에 더위가 몰렸던 것을 간과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전년도에는 에어컨 사용 기간도 반반씩 나눠져 전기세 누진구간을 피했었고, 올 해는 더위가 일찍 시작되어 더위 집중 구간에 1,000 kWh이 초과되었던 것이었죠. 덕분에 슈퍼유저 요금이 적용되었고, 결국 전기세 폭탄을 맞았습니다.
고지서를 받아 들고 잠시 생각에 잠겼습니다. 다른 때 같으면 고지서를 우편함에서 꺼내며 남편에게 사진을 찍어 보내줬을 텐데 이번 고지서는 사진을 찍어 보내기가 미안했습니다.
'어차피 자동이체로 관리비는 지출되었을 테고 이미 알고 있을 텐데 다시 확인시킬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스쳐가고,
'이체 확인이 안 되었을 수도 있으니 퇴근하고 오면 보여줘야지.'
하는 마음이 스쳐갔습니다. 아주 잠깐이라도 생활비 걱정을 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죠.
나무 같은 남편입니다. (출처 : 픽사 베이)
동글이가 돌이 지날 때부터 9년째 동글이의 머리카락을 집에서 정리해 줍니다. 전문 미용사가 보면 형편없을 수 있지만 그래도 햇수로 거의 10년 차라 동글이 커트 하나는 꽤 잘하는 편입니다. 그러다 보니 남편의 뒷머리, 귀밑머리 정리 정도는 집에서 해 줍니다. 그러면 미용실에서 한 번, 집에서 한 두 번 교차로 커트를 해도 되거든요. 며칠 전 남편이 뒷머리 정리를 부탁하길래 여느 때와 같이 욕실에서 커트를 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그날따라 남편의 뒷머리와 귀밑머리에 흰머리가 많아진 것이 눈에 들어왔어요. 코로나로 2년째 멈춰버린 경기로 일거리가 줄어들어 힘들다고 자주 이야기하지만 스쳐 들었던가 봅니다. 그런데 남편의 뒷머리가 희어지고, 왠지 어깨도 5cm쯤 내려간 듯 느껴지면서 코끝이 찡해지며 눈시울이 붉어졌죠. 말 한마디 건네면 굵은 눈물이 뚝뚝 떨어질 것만 같은데 자꾸 말을 시키는 거예요.
"나이를 먹어서 그런가? 머리카락이 잘 안 자라. 그렇지?"
"응"
"뒷머리에 흰머리 많이 늘었어? 면도하다가 보면 희끗희끗 흰머리가 삐죽 튀어나와있는 게 보여서..."
"이발기로 밀었더니 이제 하나도 안 보여요. 괜찮아. 아직 멋있어."
"그래? 너만 그렇게 생각하는 거 아냐? 동글이가 아직 10살인데 아빠는 자꾸 흰머리가 늘어서 어떡하냐?"
"뭘~ 다른 집 남편들보다 당신이 훨씬 젊고 멋져. 내 눈에는 처음 만났을 때 그대로야. 29살로 보인다니까?"
"그래? 당신은 그거 병이라니까... 나이가 50인데 아직도 그러면 안되지."
"뭐 어때? 나만 좋으면 되지. 난 아직도 당신을 보면 설레고 두근두근해."
"너 진짜 병원 가봐야겠다. 심장에 이상 있는 거 아냐?"
라고 이야기하면서도 싫지 않은 모양입니다. 입꼬리는 올라가거든요.
남편이 나이가 들고, 남편도 흰머리가 생길 수 있다는 생각을 별로 해보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분명 지난달에도 뒷머리 정리를 해줬는데 왜 유난히 이 달에는 남편의 흰머리만 눈에 들어왔을까요? 함께 나이 들어가는 동반자가 있음이 감사한 일인데 평소에는 그 감사를 왜 자꾸 잊고 못난 면만 봤을까요? 굳이 마음에 들지 않는 면을 찾으려 한다면 찾겠지만 일상의 삶 속에서 불평할 만한 점이 별로 없는 남편인데, 굳건히 가장의 자리를 잘 지켜내고 있는 남편에게 좀 무심했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둘이 만나 넷이 되었고, 20대에 만나 50대를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습니다. 마음은 20대 그 시절에 머무는데 둘만 바라보다 둘이 더해져 각기 해야 할 역할과 책임의 무게가 커지니 마음과 다르게 감정도 덤덤해지고 말도 투박 해지는 부부가 되었습니다. '깨달음'을 주셨으니 오늘부터는 20대의 그녀를 소환해 볼까 싶습니다. 조금 더 다정하고 사랑스러운 눈빛과 말로 오늘도 여전히 가족을 위해 일하고 돌아온 남편을 반갑게 맞이 해 주어야겠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가족들이 모두 모이는 주말이 찾아왔네요. 이번 주말은 아이들보다 남편부터 먼저 챙겨봐야겠습니다. 아이들의 뒷전에 밀려 먹는 것조차 아이들 좋아하는 것으로 준비했던 것이 미안한 마음이 되어 올라오네요. 남편을 위한 주말로 한껏 힘을 보태줘야겠습니다. 행복한 주말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