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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운 Aug 29. 2021

우리집 노래방 "가창오디션"

"캐스팅" 이 될 때까지 내일도, 모레도 연습은 계속될 것이다!!


세상 참 좋아졌다.


어른들의 말씀을 듣던 때가 언제였더라? 까마득한 그때, 나도 어른들께 많이 듣던 이야기였다. 그때의 어른들도 지금의 나도 그 나이가 되니 하게 되는 말 "세상 참 좋아졌다."

늘 좋아지는 세상이고 앞으로는 더 좋아지겠지. 사는 게 퍽퍽하다 생각돼도 지나고 나면 어제보다 오늘이 더 좋다고 느껴지는 게 삶이고, 그것이 사는 맛인 것 같다.


방학이 끝나고 질병관리본부에서는 2학기 전면 등교를 계획했지만 확진자수가 줄어들지 않고 있는 상황이고 아직 4단계에 멈춰있다. 그래도 고등학생들은 입시를 치러야 하고, 입시 준비의 '꽃'인 고등학교 2학년들은 단계와 상관없이 2학기 전체 등교가 확정되었다. 


등교가 시작되자마자 고등학생들의 시험 잔치가 시작됐다. 고등학교 2학년 앵글이의 2학기 중간고사 음악 수행평가는 [노래 오디션]이다. 선생님들의 추천 노래 3곡과 학생들의 추천 노래 3곡, 총 6곡 중 한 곡을 골라 음악실 무대에서 마이크를 잡고 가수가 되어 노래를 부르는 것이 이번 수행평가의 미션이다. 


선생님들이 선택한 곡은, '사랑하게 될 줄 알았어', '너였다면', '포장마차'이고,

학생들이 선택한 곡은, '꿈속의 너', '비밀번호 486', '오래된 노래'였다.


6곡 중 5곡은 대체로 느린 템포의 발라드여서 앵글이는 그중 밝은 '비밀번호 486'을 선택했다. 변성기가 살짝 스치는 중인 앵글이가 느리고 호흡이 긴 곡을 소화하기는 벅차 보여서 '비밀번호 486' 추천해 주었는데 이 곡도 만만치 않다. 하루에 한 시간씩 무한 반복 연습을 하고 있는 앵글이지만 영 마음에 들지 않는 눈치다. 진성으로 소리 내기가 어렵다 보니 가성으로 노래를 불러야 하고, 고음은 변성기로 인해 더 가늘게 소리가 빠져 소리가 영 재미없게 들린다. 그래도 연습으로 극복해 보려고 딴에는 열심히 연습해 보지만 변성기는 연습으로도 극복 불가인 듯하다.  


하필이면 34명 중 마지막 순서라 피날레(finale)를 장식해야 한다며 연일 연습에 매진한다. 수행평가에 진심인 고2 딸 앵글이의 피나는 노력은 2주 간 계속될 예정이다. 그래도 교과서에 수록된 이태리 가곡이나 우리 가곡을 연습할 때보다는 신나 보이고, 교실에서 무반주로 수행평가를 보는 것보다는 노래방 반주에 에코 빵빵 마이크도 주어진 다하니 연습할 맛이 나는 모양이다. 그래서 수행평가 연습을 위해 마이크도 샀다. 실제와 같은 환경에서 연습을 해야 한다며 마이크에 욕심을 내는 앵글이를 위해 과감히 투자했다. 노래방에 직접 가지 않아도 TV와 블루투스를 연결하니 노래방 못지않은 맛이 난다. 신기한 세상이다.


수행평가에 진심인 고2 딸의 시험 준비



[비밀번호 486]

한 시간마다 보고 싶다고 감정 없이 말하지 말아
흔하게 널린 연애 지식은 통하지 앉아
백번을 넘게 사랑한다고 감동 없이 말하지 말아
잘 잡혀가던 분위기마저 깨버리잖아
여자는 생각보다 단순하지 않아
행복하게 만드는 방법도 조금씩은 달라

[후렴] 하루에 네 번 사랑을 말하고 여덟 번 웃고 여섯 번은 키스를 해줘
날 열어주는 단 하나뿐인 비밀번호야
누구도 알 수 없게 너만이 나를 가질 수 있도록
You're my secret boy boy boy boy boy boy

아무데서나 나타나지 마 항상 놀라지만은 않아
화장기 없는 얼굴 보이면 화도 나는걸
남자는 여자만큼 섬세하질 않아
하고 싶은 대로만 한다면 다 된다~ 믿어

어렵다고 포기하진 말아줘 너 하나만 원하는 날 알아줘
바람둥이 같은 남자들에게 여자들은 늘 속곤 하는 걸
날 애태우고 달랠 줄 아는 네가 되길 바라


고등학교 때 성악을 배운 적이 있었다. 교회 성가대 지휘도 했었다. 그래서인지 가창 시험이 있을 때마다 앵글이의 엄마에 대한 신뢰가 빛을 발하는 좋은 기회가 주어진다. 가창 시험을 볼 때마다 앵글이는 레슨 받기를 자처하고, 나는 앵글이가 고객인 듯 진심으로 과외를 해 준다. 시시콜콜 소리 내는 구간을 끊어가며 부르고 멈추기를 반복해도 싫은 내색 한 번 없다. 노랫말 가사에 발음 붙이는 법, 음의 기승전결에 따른 음색의 크기 조절 등 엄마의 지적질(?)이 이어져도 고쳐가며 불러준다. 가족끼리는 뭘 가르치는 게 아니라고 우스갯소리를 하지만 앵글이는 자기보다 좀 낫다고 여기는 부분에서는 이의제기 없이 잘 받아들이는 편이다. 그 마음이 참 고맙다.


"앵글아~ [비밀번호 486]의 노랫말을 잘 읽어봐. 노랫말을 보면 남자 친구가 습관적으로 하는 행동에 여자 친구가 화를 내고 있잖아. 노래를 부를 때 감정이 전달돼야 하는 거야. 변성기 때문에 표현하기 어려우면 두 소절씩 끊어서 두 마디는 작은 소리로, 두 마디는 큰소리로 불러보렴. 그리고 이 노래가 4분의 4박자잖아. 그럼 박자 치기 할 때 '강약 중강 약'으로 치잖아. 소리를 낼 때도 그런 느낌으로 내야 해. 붙점이 있는 것처럼 말이야. 그리고 노랫말을 보면 뒷 소절에서 여자가 화를 내고 있어. 화가 난 소절에서 소리를 키워봐."

"응? 진짜 그러네? 알았어. 다시 불러볼게."


말이 쉽지 사실 노래로 감정을 표현하는 것은 쉽지 않다. 특히 우리 가요는 더 어렵다. 받침글자가 있어서 정확한 가사를 전달하며 감정을 싣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녹음을 해 가며 반복해 보지만 소리에 감정을 넣어 부르는 게 어려운지 계속 나더러 불러보라 시킨다.


"노래 부르지 말고 노랫말을 소리 내서 읽어봐. 구연동화하듯, 화를 내고 있는 여자의 마음이 돼서 읽어보렴."

"근데, 내가 모쏠(모태솔로)이라 왜 화가 나는지 이해가 안 돼. 이 정도 답답하면 헤어지면 되는 거 아냐?"


이런... 우리 앵글이의 '사랑'은 멀고 먼 이야기가 될 듯하다. 공감능력이 남녀 간의 사랑에서는 거의 zero에 가깝다.


"여자 마음이 이해가 안 가거든, '말하지 말아' , '통하지 앉아' , '깨버리잖아' , '단순하지 않아' , '조금씩은 달라' 부분을 꾹꾹 눌러서 끊어 불러봐. 스타카토가 아니라 테누토로 한 음, 한 음을 꾹꾹 눌러주는 거야. 악센트를 주면 노래가 좀 살아나."

"응, 해볼게. 잘 들어봐. 그리고 그 부분에서는 엄마가 같이 불러줘."


오늘도 앵글이의 노래 연습은 한 시간이 넘도록 그칠 줄 모르고 계속됐다.




연습을 마치고 앵글이와 마주 앉았다.

"그런데 엄마, 이 여자 말이야. 욕심이 너무 많은 거 아니야?"

"왜?"

하루에 네 번 사랑을 말하고 여덟 번 웃고 여섯 번은 키스를 해줘 날 열어주는 단 하나뿐인 비밀번호야 누구도 알 수 없게 너만이 나를 가질 수 있도록


"아니, 하루에 네 번 사랑한다고 해달래. 그리고 여덟 번이나 진심으로 웃어줘야 해. 뽀뽀도 아니고 키스를 여섯 번을 해달라잖아. 그게 가능해?"

"........."

"아니, 이런 걸 이야기하니까 내가 공감을 못하지. 아이고, 그냥 헤어지라 해."

"저런."


우리 앵글이가 아직 사랑을 못하고, 연애 경험이 없는 이유를 알겠다. 자연스럽게 나오는 감정들을 머리로 이해하려고 하니 어찌 사랑이 되겠는가? 가끔 학교에서 '사귀자'라고 페메를 보내는 남자아이들이 있는 모양이던데 그 친구들이 연애감정을 이해 못하는 앵글이의 반응을 보며 상처 받을만하다 싶었다.


"아니, 노래들이 가사가 다 구질구질해. 그냥 심플하게 사랑하고, 헤어지면 쿨하게 잊고 그럼 안되나?"

"사랑을 하게 되면 그게 무 자르듯 감정이 잘라지니? 감정들이 두루두루 다 섞여서 화가 나더라도 막상 보면 눈 녹듯 다 풀리고, 그러니까 또 쪽쪽 뽀뽀도 해주고 애교도 부리며 사랑을 나누고 그러는 거지."

"에휴. 난 사랑 안 하고 그냥 혼자 살게. 남자 잘못 만나서 여자 인생 망친 사람은 있어도, 혼자 살아서 인생 망치는 여자는 암만 생각해도 없는 것 같거든."


우리의 대화는 여기까지 하고 오늘 강의는 마쳤다. 저러다가 나처럼 첫눈에 반한 남자를 만나면 불타오르는 감정 주체 못 해서 이 남자 아니면 안 된다며 죽기 살기 사랑할 날도 있겠지. 우리 삶이 '도레미파솔라시도'처럼 명확한 소리를 내는 것은 아니니 말이다.


다음 주 금요일 피날레를 장식할 앵글이의 오디션에서 "캐스팅" 버튼이 눌러지도록 내일도, 모레도 연습은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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