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5일 라면으로 세끼를 먹으라고 해도 먹을 수 있다는 앵글이는 라면에 항상 진심이다. 다이어트를 해야 한다며 하루 세 시간 꼬박 운동을 하면서도 운동하는 이유가 '라면을 먹기 위해서'이기도 하단다. 주중에는 먹고 싶은 마음을 꾹 참고 다이어트와 운동에 매진하고 주말에 한 번, 한 끼를 어쩔 때는 한 번에 두 종류의 라면을 순삭 하기도 한다.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음식이 라면이라며 농*과 오*기 라면 연구원으로 취업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할 정도이다.
한 번은 TV에 라면 연구원이 나와서 하루에 50개 정도의 라면을 먹기도 한다는 이야기를 듣더니 자기도 그만큼 먹을 수 있다고 호언장담을 한다. 라면이 왜 좋으냐고 했더니 온갖 다양한 맛의 라면이 있기 때문에 종류를 바꿔가며 먹으면 물리지 않고 충분히 살 수 있다고 한다. 살찌는 것만 아니면 라면으로 삼시 세끼를 먹고 싶다는 앵글이의 라면 사랑은 오늘도 ing이다.
나는 소화력이 떨어져 어쩌다 한 번 라면을 먹고도 소화시키려면 한 참이 걸린다. 그래서 되도록 저녁식사로 라면을 먹지 않으려 한다. 신기한 것은 소화를 못 시키는 줄 알면서도 라면을 먹는 거다. 특별히 반찬을 필요로 하지 않고 한 끼 때우는 데는 이만한 음식이 없다. 아이들에게 라면은 아침, 저녁으로 대체해서 먹을 수 없다고 선을 그어 놓았지만 사실 내가 생각해도 라면은 맛있다. 딱히 먹고 싶은 메뉴가 떠오르지 않을 때는 여지없이 "라면!!"을 외치는 아이들에게 속으로는 "그냥 라면 줄까?"의 외침이 들려오는데도 애써 다른 음식을 권해본다. 그런데 실은, 어쭙잖은 외식보다 라면이 100배 더 나을 때가 많다.
한국의 배달 문화는 단연 세계 최고이다. 그런데 배달 한 번 시키려면 음식별로 분류된 카테고리를 선택하는 것도 보통일이 아니다. 고심 고심하다가 큰 카테고리 하나 선택을 마치면 신중하게 드래그하게 된다. 사진으로 볼 때는 다 맛있어 보인다. 그런데 맘에 쏙 드는 메뉴 찾기는 남자 친구(여자 친구) 고르는 것만큼이나 신중해진다. 그러고 보면 대체로 먹는 데에는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진심인 듯하다.
그렇게 고르고 골라 "엽떡 어때?" 하면 어느 한 사람 "난 엽떡 싫어!" 거절도 아주 단호하다. "그럼, 족발을 어때?" 하면 또 다른 한 사람이 "보쌈이 더 낫지 않아?" 이렇게 실랑이를 하다 보면 주문은커녕 메뉴 선정도 못하고 30분이 훌쩍 지나간다. 그러다가 누구 한 사람 "에잇! 됐어!! 그냥 라면 먹자!"라고 하면 아무도 반대 의견을 내지 않고 "오~ 라면 좋아!". "나도 라면!" , "그럼 오늘은 짜파**어때?"라고 의견을 낸다. 듣고 있던 내가 "엄마는 짜파** 싫어하는데... 몰랐어?" , "그럼, 짜파**도 끓이고, 푸라면도 끓이면 어때?"
땅! 땅! 땅! 순식간에 의견이 모아지고 바로 실행에 옮겨진다. 가족들의 라면 사랑은 언제나 진심이다.
동네 단골 식당인 화포**은 삼겹살을 시키면 직원이 직접 구워준다. 만족스러운 굽기가 완성되기까지 젓가락을 고기로 가져갈 수 없다. 군침을 삼키며 다 구워질 때까지 기다린다. 쥔장이 "이젠 드셔도 됩니다!"라고 하면 요이~땅~~ 하듯 젓가락을 빠르게 들이댄다. 순식간에 고기를 집어삼키고도 뭔가 부족할 때 식당 쥔장의 특급 레시피로 만들어낸 해물 육수에 푸라면을 넣어 끓이면 그 맛이 '캬~~~' 완전 기가 막히다. 쥔장은 라면 수프를 해물육수로 끓인 라면에 절대 넣지 못하게 해서 식당에서는 지리로 라면을 먹게 된다. 하지만 요즘에는 포장해서 먹기 때문에 (쥔장이 곁에 없으니) 수프도 하나 슬쩍 넣어서 끓여 먹는다. '음~ 역시 환상적인 맛이다.
라면을 세 개나 넣고 끓여서 식탁으로 가져다주었는데도 모자랐다.
"고기를 먹고 나서 후식으로 먹는 라면인데 1인 1이라면이 부족하다고??"
"아이~ 엄마... 우리를 몰라? 4개를 끓였어야지..."
"그러니까... 엄마는 꼭 라면 끓일 때만 아끼더라?"
"여보~ 내가 라면 많이 사줄게. 아끼지 말고 팍팍 넣어."
셋이서 바닥에 남은 부스러기까지 먹을 량으로 낚시질이 한창이다. 라면이 맛있는 건지, 사장님이 서비스로 보내주신 해물육수의 위력인지는 알 수 없다. 그냥 라면은 진리인 듯...
앵글이는 그날의 컨디션에 따라 라면 고르는 취향이 달라진다. 그때그때 달라지는 취향 때문에 앵글이가 좋아하는 라면을 종류대로 준비 해 두어야 한다. 매운맛이 당기는 어느 날은 불닭**면으로, 매콤 새콤한 맛이 당기는 날은 8*비빔면을 끓여 먹는다. 고등학생이 되어 좋은 점 하나는 직접 만들어 먹는 거다. 얼마나 자주 만들어 먹었는지 이 두 가지 라면은 나보다 앵글이가 훨씬 더 잘 만든다. 나는 라면을 퍼질 만큼 푹 끓이는 편이다. 소화를 잘 못 시켜서 그런지 잘 익을 라면이 맛있고 먹고 나서도 속이 편하다. 그런데 앵글이는 뜨거운 물에 담갔다 뺀 수준으로 꼬들꼬들하게 끓여 먹는다. 그래서 불닭**면과 8*비빔면은 엄마의 힘을 빌지 않으려 한다. 푹 퍼진 비빔면은 모양새도 맛이 없어 보이긴 한다.
어쩌다 가끔, (진짜 가끔이다.)
내가 "라면 끓여줄까?"라고 선심을 쓸 때가 있다. 그럴 때는 떡도 넣어주고 계란도 1인 1 계란으로 듬뿍 넣어준다. 주말 오후 밥으로 끼니를 채우기는 애매한 시간 배가 고파질 때 라면 한 그릇은 소소한 행복감을 가득 채우고도 남을 만하다. 엄마의 수고도 줄여주고, 가족들은 맛있게 먹어주니 말이다.
어쩔 때는 라면이 화를 부르기도 한다.
애써 여러 가지 반찬을 만들고 더위를 이겨가며 국을 끓여 한 상 가득 식탁을 채웠는데
"라면 하나 끓여서 같이 먹을까?"라고 첫눈에 반한 남자가 한 마디 거들면 아이들은 우후죽순으로 "나도! 나도!"를 외친다. "엄마가 오늘 밥상을 차리려고 채소도 다듬고 씻고 조리하느라 4시간이나 서 있었는데 뭔 라면? 안돼!!" 괜스레 부아가 치밀어올라 한 마디 툭 던지면, "에이~ 한 개만 끓일게. 하나만 끓여서 나눠 먹으면 되지. 만들어 놓은 거 다 먹고, 라면도 먹고... 어때?" 어차피 지는 게임이다. 라면은 산해진미도 다 이긴다. 그렇게 아침을 라면과 동행하면 퉁퉁 불은 엄마의 주둥이가 쑤~욱 들어갈 때까지 한참의 시간이 걸린다는 것을 세 식구는 아직도 모르는 듯하다. 건강, 영양, 위생, 맛... 모두를 아우를 만큼 정성을 한 아름 들인 엄마의 식탁에 [라면!!!]이라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면은 식탁에 한 자리 차지하고 가장 인기 있는 반찬으로 자리매김했다.
매일 세 끼, 일 년 365일을 라면으로 먹고 싶어 하는 딸아이는 주말의 라면을 위해 오늘도 다이어트를 겸한 운동에 열정을 쏟는다. 6일 동안 열심히 절식을 하고 하루는 자신의 정신건강을 위해 좋아하는 음식을 먹여줘야 되지 않느냐는 개똥철학을 들이밀면서 말이다. 그러고 보면 라면 사랑이 엄마 사랑을 이기는 듯해서 라면에 살짝 질투를 느끼기도 한다. 아니...
"라면~ 너!! 딱 기다려! 내가 너를 이길만한 메뉴를 개발하고 말 테닷!"
사진출처 : 로운과 픽사 베이 그리고 다음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