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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운 Aug 31. 2021

슬기로운 집콕 힐링 포인트[프랑스 자수]

빨강머리 앤을 좋아하는 '로운'의 자수 이야기

세상에 재미있는 것들은 너무나 많다. 많아도 너무 많은 게 문제다. 그 모든 것들을 다 해보고 싶은데 시간이 없다. 그러다 보니 시간을 쪼개고 쪼개서 그때그때 꽂힌 것을 하나씩 해 본다. 요즈음은 글쓰기에 꽂혀 있어서 많고 많은 취미활동을 거의 못하고 있다. 하루가 24시간인 게 너무 아쉽다.


한 때는 잠자는 시간을 쪼개서 무언가 계속했었다. 나이가 드니 몸에서 거친 욕을 해댔다. 그 결과, 약이 한 알씩 늘어났다. '저런, 이럴 수가...'라고 생각하시는 분, 분명 계실지도 모른다. 여기저기 아픈 곳이 늘어나니 의사 선생님께서 처방을 내려주셨다.

"로운님은... 음... 잠을 좀 주무셔야 합니다. 모든 병이 잠이 부족해서 생기는 것 같아요. 약의 도움을 받으시더라도 숙면을 취하시면 몸이 회복되는데 도움이 될 거예요."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아서요. 근데 팔뚝과 손가락이 아픈 것도 잠을 자야 낫나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쉬어야 낫는데 계속 사용하시잖아요. 그럼 낫지 않죠. 가만히 있는 게 힘드시나요? 저는 가만히 있는 게 제일 좋던데요... 누가 제 일을 대신해주고 저더러 가만히 쉬라고 했으면 좋겠어요."

"시간이 아까워서요. TV를 보더라도 하다못해 빨래라도 개켜야지 그냥은 못 있겠더라고요."

"그러니 제가 숙제를 드리는 겁니다. 일주일 동안 아무것도 하지 마시고 식사도 되도록 시켜서 드세요. 잠도 푹 주무시고 일주일 뒤에 만납시다."




세상에서 제일 힘든 게 가만히 있는 거다. '죽으면 어차피 가만히 있을 텐데 살아있을 때는 무어라도 하면서 움직여야 하는 거 아니냐'라고 하니 남편은 허허하며 웃는다. 깨어있을 때는 무언가를 열심히 한다. 작년에는 집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서 되려 좋았던 점도 있다. 그동안 해보고 싶었던 것들이 많았는데 바깥활동이 많아서 하지 못하고 미뤄뒀던 것들을 하나씩 꺼내가며 하기 시작했다. 대체로 움직임이 없는 활동, 가만히 앉아서 하는 일은 시간을 들여야 할 수 있는 일들이다.


퀼트, 재봉기, 자수(프랑스 자수, 리본 자수, 비즈 자수, 입체 자수... 종류도 많다.), 손뜨개, 망스 티치, 펀치 니들, 비즈공예, 마크라메, 인형 만들기... 등 등


이쯤 되면 수공예 중 안 해본 걸 찾는 게 더 빠를 듯하다. 손으로 하는 것들은 대체로 좋아하고 나름 감각도 있어서 독학이 가능하다. 세상이 좋아져서 컴퓨터에 궁금한 것을 입력만 하면 사진 자료부터 영상까지 없는 것 없이 다 있는 세상이다. 그런데 수공예 활동은 대체로 앉아서 하는 작업들이라 남편은 좋아하지 않는다.


남편이 싫어하는 이유,

1. 생산성이 떨어진다. 곧 돈 되는 일이 아니다.

2. 하루 종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앉아있다. 곧 작품이 시작되면 마무리될 때까지 밥도 안 먹고 잠도 안자는 아내가 걱정되고 마음이 불편하다.

3. 차라리 운동을 했으면 좋겠다. 곧 돈이 안되면 몸이라도 튼튼히 만들었으면 좋겠다.

4. 집이 어수선해진다. 곧 장비 발 세우는 아내 때문에 우리 집 트리에 갖가지 수공예 장비가 늘어난다. 펜트리만 비워도(팔아도) 한 밑천 잡겠다는 생각이 든다.

5. 식탁이 가난해진다. 곧 수공예에 집중하다 보면 식사 준비 시간을 놓쳐서 밥상이 일품식으로 간단해지는 경향이 있다.


등등의 이유로 내가 즐겨하는 [수공예 취미생활]을 응원하지 않는 편이다.




일리 있는 남편의 평가를 뒤로하고 나는 여전히 좋아하는 것들을 찾아 끊임없이 시간을 쪼개어 쓴다. 그러다 푹 빠진 것 중 하나가 [프랑스 자수]이다.


처음에는 동네 친구들에게 선물할 티 매트와 티코스터 만들기로 시작했었다. 매트 4장, 코스터 4장을 한 쌍으로 포장해서 선물했더니 다들 너무 좋아하길래 주변 지인들에게 선물용으로 만들기 시작했었다. 그러다가 내가 너무나도 좋아하는 '빨강머리 앤'을 수놓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안을 찾고 어떻게 수를 놓을지 생각하고 다양한 기법으로 수를 놓아보니 완성도도 높아지고 재미도 있었다. 그렇게 하나씩 수를 놓다 보니 어느새 작품이 하나둘씩 늘어가고, 작품 네 개가 완성이 되었다.



애정애정 뿜뿜 나의 '빨강머리 앤'


프랑스 자수로 빨강머리 앤을 한 편, 한 편 완성하는 맛은 아주 꿀 맛이다. 책에서 나온 장면들을 하나씩 수를 놓으니 그림이 주는 만족도와 다른 매력이 있었다.


처음에는 평면으로 수를 놓다가 갈수록 욕심이 생겨서 점차 입체 자수를 놓게 되니 한결 그림이 풍성해지고 살아나는 느낌이 들었다. 헤어스타일, 입체 꽃, 그리고 '베이킹하는 앤'을 수놓을 때는 머랭 치는 앤을 입체로 표현해봤다. 도안과 기법 설명 없이 혼자 표현하고 싶은 대로 표현하는 자수는 어떻게 수를 놓을지 구상하는 시간까지 재미가 있다.


입체 자수로 표현한 베이킹하는 '앤'


수를 놓는 것을 보며 앵글이가,

"엄마는 조선시대에 태어났어야 하는데 시대를 잘못 태어난 것 같아."

"왜?"

"평민 말고 양반집 규수로 태어났으면 좋을 법한 취미를 다 갖고 있잖아. 그리고 엄마 얼굴이 조선시대 미인상이야. 그때 태어났으면 정말 먹히는 얼굴이라니까..."

"그거 칭찬이야?"

"칭찬이지. 조선시대 여인상이, 희고 뽀얀 피부, 쌍꺼풀 없이 큰 눈, 까맣고 숱이 많은 머리카락, 허리 가늘고 하체가 튼튼한 여인이 완전 인기였거든? 봐~ 딱 엄마지?"

"아무리 좋게 들으려 해도 칭찬 같지가 않네."

"아니야. 취미도 얼마나 고상해. 집에서 수를 놓고, 책 읽고... 완전 딱이라니까?"


앵글이의 놀림에 굴하지 않고 꿋꿋이 수를 놓았다. 그렇게 하나씩 완성하는 재미가 있었고 욕심이 커져서 수놓은 종류도 다양해졌다.


테이블매트와 티코스터


프랑스 자수 기법을 다양하게 사용해 보려고 티코스터의 밑그림을 꽃으로 그려 넣었다. 그리고 하나하나 정성을 다해 한 땀 한 땀 수를 놓고, 시드 비즈로 입체감을 살렸다. 재봉기로 마무리한 후 다림질까지 마치니 너무 예쁜 작품이 완성되었다.


꽃 잎 가득 티코스터


보기만 해도 기분 좋은 티코스터가 빛을 발할 때는 얼음 가득 아이스커피와 함께 할 때다. 컵에 방울방울 물이 맺히면 테이블에 물이 고여 닦아야 하는 수고를 해야 하는데, 티코스터 한 장 깔아주면 예쁘게 놓인 수를 보면서 맛도 좋아지고 기분도 달뜨게 하는 데다 맺힌 물방울까지 흡수 해 주니 일석삼조다.


잠시 글쓰기로 마음이 옮겨져 수판을 꺼냈던 것이 언제였나 싶다. 아쉽기도 해서 사진으로 기록을 남겨본다. 시간을 알뜰하게 사용하려고 취미활동을 했는데, 익숙하고 잘하게 되니 마을공동체에서 재능기부 수업을 통해 이웃들에게 가르침을 줄 수 있게 되었다. 배우는 이들은 수강료 없이 배우고, 가르치는 이는 봉사하는 기쁨이 있으니 그저 취미에만 그친 것이 아니라서 더 좋다.


자수는, 한 땀 한 땀 마음을 모아야 작품이 예쁘게 나온다. 분주한 마음을 정갈하게 정돈시켜 주고 아름다운 것들을 보며 심성도 고와지니 옛사람들도 수를 놓았나 보다. 꽃잎 몇 장 수를 놓아도 심심한 옷가지에 숨결을 넣어주고, 하얀 손수건 위에 꽃 한 송이 그려 넣어도 고급진 수제품이 되니 많은 공을 많이 들이지 않고도 빛을 내는 작품이 탄생된다.


시간을 많이 할애해야 하는 작품이 아니더라도 홈질 몇 번에 마음을 담은 선물을 지인과 나눌 수 있어 더 좋은 취미, 그래서 난 수를 놓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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