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감상/ 잘랄루딘 루미의 "여인숙"
인간이란 존재는 여인숙과 같다.
매일 아침 새로운 손님이 도착한다.
기쁨, 절망, 슬픔
그리고 약간의 순간적인 깨달음 등이
예기치 않은 방문객처럼 찾아온다.
그 모두를 환영하고 맞아들이라
설령 그들이 슬픔의 군중이거나
그대의 집을 난폭하게 쓸어가 버리고
가구들을 몽땅 내가더라도.
그렇다 해도 각각의 손님들을 존중하라.
그들은 어떤 새로운 기쁨을 주기 위해
그대를 청소하는 것인지도 모르니까.
어두운 생각, 부끄러움, 후회
그들을 문에서 웃으며 맞으라.
그리고 그들을 집안으로 초대하라
누가 들어오든 감사하게 여기라.
모든 손님은 저 멀리에서 보낸
안내자들이니까.
잘랄루딘 루미(1207~1273)
페르시아 문학의 신비파를 대표한다. 대서사시인 《정신적인 마트 나비》는 수피즘의 교의 ·역사 ·전통을 노래한 것으로 ‘신비주의의 바이블’로 불린다.
동생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언니, 요즘 잘 지내?"
"그럼, 잘 지내지."
"어? 우리 언니 목소리가 착해졌네? 왜 이렇게 착해졌지?"
"나야 뭐... 원래 착하잖아." (ㅎㅎㅎ)
"아니, 우리 언니 착한 건 아는데 목소리가 뭐랄까... 해탈의 경지가 느껴진달까?"
동생은 동생인가 보다. 목소리의 변화도 느끼는 것을 보면...
"그런데 왜?"
"아니, 우리 신랑 말이야. 어제 팀원들이 자기만 빼고 커피를 마시러 나갔다며 걱정을 하는 거야. 그래서 내가 커피 마시러 셋만 갈 수도 있지 그게 무슨 문제가 되냐고 했어. 그랬더니 그들의 마음에 들지 않는 뭔가가 자기에게 있을 수도 있지 않느냐는 거야. 언니, 이게 이해가 돼?"
"음,... 제부는 나랑 성격이 비슷하잖아. 우리는 해결책을 바라고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야. 그냥 내편이 필요해서 말하는 거지. 다음에 비슷한 문제로 이야기하거든 네가 먼저 벌컥 화를 내줘. '아니, 뭐 그런 사람이 있어? 같은 팀원인데 같이 가자고 해야지 다 큰 성인들이 누굴 왕따 시키는 것도 아니고 도대체 나이를 뭘로 먹는 거야??'라면서 좀 더 과하게 편을 들어주렴."
"그렇게까지 해야 해? 난 별일 아닌 것 같은데... 그래서 내가 '그럼 당신도 커피 마실 때 그 사람들을 쏙 빼고 다른 사람들이랑 가면 되잖아.'라고 했거든."
"사회생활이 그렇지 않지. 한 회사, 한 팀에서 누구 한 사람 외면하고 살기는 어렵잖아. 그리고 제부는 너랑 달라서 그 사람들에게 먼저 다가가서 '어제 나를 빼고 너희만 커피 마시러 가서 좀 서운했어.'라고 말할 수 없을 거야."
"아이고, 답답해. 왜 못해? 그걸? 이래서 하나님이 서로 다른 사람을 만나도록 해서 짝지어 결혼시키나 봐."
"우리는 성인이고 너희 부부도 벌써 40이 다가오잖니? 40년을 살아오면서 그런 상황을 마주했을 때 어떻게 하면 좋을지 제부도 알고 있을 거야. 답은 알고 있는데 못하는 거야. 너는 진취적이고 자기애가 크기 때문에 나랑 맞고 나와 잘 지내는 사람과 살기도 바쁜데 뭘 그렇게 모두에게 좋은 사람으로 살려고 애를 쓰나 싶어 답답하겠지. 그러나 네 남편이나 나처럼 생각이 많고 모두에게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큰 사람은 자기 속마음을 드러내기가 쉽지 않아. 그러니까 해결책을 주려고 하지 말고 그냥 편이 되어주면 돼."
"아~ 난 그런 거 진짜 하기 어려운데... 뭐가 이리 어려워? 그래도 울 언니가 하라고 하면 또 해야지. 그렇지?"
"답이 필요한 게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도 내 편이 되어 나를 대신해서 화를 내 줄 사람이 필요할 때가 있어. 너는 아내로서 그 역할만 해 주면 그다음은 제부가 알아서 그 길을 찾아 해결해 갈 거야."
동네 친구와 오해가 될 만한 일이 있었다. 작은 오해로 친구는 마음이 상했고, 친구는 오해에 관하여 내게 직접 묻지 않고 다른 사람들에게 의견을 묻게 되었다. 돌고 돌아 나도 알게 되었고, 나는 즉각적으로 그 친구에게 진심으로 사과했다. 그리고 친구도 사과를 받아 주었다. 하지만 표면적으로는 사과를 받아주는 것처럼 보였지만 마음까지 편안해 지진 못했던 모양이다.
문제는 이미 떠돌아다니는 잘못된 정보로 다른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고, 생각에 생각들이 더해져 일파만파 퍼지면서 일이 커지게 된 것이다. 시작은 작은 오해였고, 겉모습으로는 해결된 듯 보였지만 이미 풍성해진 소문으로 나는 상처투성이가 되었다.
엄마에게 늘 진심인 앵글이가 격분하기 시작했다.
"엄마! 엄마는 자식은 그렇게 안 키우면서 정작 자기 자신은 왜 그렇게 답답하게 살아? 가서 따져! 그리고 안 통하면 안 보면 되잖아. 엄마는 왜 맨날 바보같이 당하고만 살아? 그 이모는 자기를 지키려고 뭐든 하잖아. 엄마도 해! 아닌 건 아니라고 하고, 엄마도 그 이모처럼 똑같이 좀 하라고!!"
앵글이가 하는 말은 구구절절 맞는 말이었다. 그렇지만 나는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오해였지만 오해를 할 만한 빌미를 제공한 사람은 나였고, 그 정도의 일은 충분히 이해될 만한 관계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관계 형성이 됐었다고 믿었던 것은 나만의 생각이었던 모양이다. 내가 아무리 마음을 주고 다가갔어도 상대방은 나와 친하다고 느끼지 않았던 모양이다.
"앵글아, 편이 돼 줘서 고마워. 네가 대신 화를 내 주니 엄마 마음이 좀 위로가 되네? 우리 딸, 많이 컸구나. 이제는 엄마의 고민도 나눌 수 있을 만큼 자란 거잖아. 그런데 앵글아~10대의 너와 40대의 엄마는 갈등을 해결하는 방법이 좀 달라야 하지 않을까? 감정적으로 해결할 수 없는 일들도 많아. 우리는 아직 이 마을에 살고 있고, 엄마가 함께 하는 사람들은 한 마을에 사는 사람들이잖니? 어느 한 사람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그 사람과 척을 지면 그 사람과 관계된 다른 사람들이 엄마와도 연결되어 있어서 주변까지 다 불편해질 수 있어. 그렇게 되면 한 사람을 잃는 것이 아니라 관계 전체를 잃게 되는 거야. 그래서 아프지만 엄마는 기다리고 있어. 시간이 조금 지나면 지금보다는 나아질 거라 믿어."
"그래서, 엄마는 다치고 아파도 된다는 거야? 왜 어떤 사람은 자기 하고 싶은 대로 다 하는데 굳이 꼭 엄마만 맨날 참아. 엄마가 밥도 못 먹고 잠도 못 자고 살도 빠지는 거 그 이모는 안대? 엄마가 말을 안 하니까 모르는 거잖아. 가서 말을 해!"
"그렇지... 지금은 좀 아프네. 그리고 좀 슬프기도 해. 그런데 엄마가 잘 살았다면 그 이야기를 듣게 된 다른 친구들이 처음 들었을 때는 '그랬어?' 하며 듣겠지만, 누군가는 그 친구에게 '그래도 잘 풀어가는 게 좋지 않을까?'라고 이야기해 줄 거야. 엄마는 그동안 사람들과 좋은 관계로 잘 살고 있었다고 생각하거든. 아프지만 며칠 더 기다려보려고 해. 엄마는 사과도 했고, 오해도 풀었고, 엄마가 할 수 있는 것은 다 했어. 이제는 기다리는 일만 남은 거야."
"엄마! 말은 그렇게 하지만 엄마가 진거야. 엄마는 지금 도망가고 있는 거잖아. 자기 마음의 소리를 잘 들어봐. 마음도 그렇게 이야기하고 있는지. 내가 볼 때 엄마는 엄마 마음의 소리를 듣지 않으려고 도망치는 걸로 보여."
생각의 깊이를 더해가는 로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