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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운 Sep 21. 2021

딸아이가 청소를 합니다.

소소한 기쁨이 행복을 가득 충전해 주었어요.

아무래도 해가 서쪽에서 뜰 모양입니다. 살다 보니 이런 일도 있네요... ㅎㅎ 부스럭부스럭 딸아이 방 쪽에서 어수선한 소리가 들려옵니다. 요즘 부쩍 제방 세간살이를 이리 옮겼다 저리 옮겼다 하며 정리꾼이 되었답니다. 그러더니 거실로 나와 손 청소기를 들었다가 막대걸레를 밀었다가 아무래도 도구가 마음에 안 드는지 계속 뭔가를 찾더니만


"바닥이 너무 끈적거려. 아무래도 제대로 청소를 해야 할 것 같아."

"정말? 청소하려고?"

"응. 엄마는 하던 거 해도 돼. 나 혼자 할게."


'옳다구나!' 반가운 소식입니다.


"그럼, 큰 청소기 꺼내 줄까?"

"그럼 더 좋지. 손 청소기는 좀 답답해."


망설일 필요 뭐 있나요? 얼른 세팅! 세팅! 맘 바뀌기 전에 청소도구 싹~ 꺼내 주고 최대한 협조해드려얍죠... 마음속에서 '얏호!' 룰루랄라 흥얼흥얼 노랫말에 덩실덩실 어깨춤이 납니다. 앵글이 낳고 18년 만에 처음 있는 기적적인 날이거든요...




사춘기 딸 키워보셨나요? 키워 보신 분들은 아실 거예요. 등교 후 딸 방이 어떻게 생겼는지 말이죠.


긴 머리카락 굴러다니는 거야 늘 있는 일이니 그렇다 쳐도 화장대의 자잘한 용품들과 헤어 관리용 드라이어, 고데기도 긴 머리용, 앞머리용이 있고, 앞머리 손질하는 동안 뒷바람으로 선풍기가 돌아가죠. 왜냐고요? 모발 손실 방지를 위해 시원한 바람으로 말려야 하거든요.



바닥에 형태 그대로 벗어놓은 옷들은 입은 건지 입을 건지, 빨 것인지 개켜줬던 건지 도무지 구분할 수 없죠. 바닥 여기저기 떨어져 있는 자잘한 물건들은 용도를 알 수 없어요. 여자아이들 살림살이는 가짓수가 보통이 넘거든요.


물건들은 함부로 치워서는 안 돼요. 쓸 것인지 버릴 것인지도 알 수 없고 섣불리 버렸다가는 난리가 난다니까요? 바닥에 널브러진 옷들도 빨랫감으로 내놓기 전까지는 미리 앞서 치워서는 곤란해요. 학교 다녀와서 이미 세탁기에 들어간 옷을 찾으면 낭패라니까요?


그나마 다행인 건 건조기의 등장이에요. 건조기를 반려 가전으로 들인 것은 신의 한 수예요. 뭐가 뭔지 모를 때 몽땅 다 빨고 건조해 정리 해 놓으면 감쪽같으니까요... 자칫 니트 의류가 건조기에 쓸려 들어가면 큰일이 나요. 옷이 반토막이 나거든요...




그랬던 앵글이 가 청소를 한다네요. 중학교 들어가면서 대체로 자기 방 정리는 하고 있지만 온 집안 청소는 처음 있는 일이잖아요? 어머나 세상에... 살다 보니 이런 신통방통한 일이 있네요.



청소기도 구석구석 잘 돌리고 선반 위도 청소기로 먼지를 쓱쓱~ 제법 손길이 맵네요. 우와~ 정말 놀랄 노浶자가 아닌가 싶어요. 물걸레 청소기도 동글동글 잘도 굴러가네요.


여기서 끝이냐고요? 아뇨? 세상에나 네 상에나 손걸레를 빨아서 거실장도 닦고, 책상이며 냉장고, 싱크대까지 야무지게 닦아줬어요. 우와~ 18년쯤 키우니까 이런 일도 다 일어나네요...





이게 뭔 큰일이라고 수선이냐 하시겠지만, 처음 보는 풍경이라 놀랍고 고맙고 대견하네요. 제법 컸다고 말동무에 산책 동무도 해주고, 외출하면 동글이 밥도 챙기고 부족한 공부도 봐주죠. 8년 터울이 길긴 긴가 봐요. 동글이도 누나 말이라면 꼼짝없이 듣는 걸 보면 말이에요.


온 집이 반짝반짝 해졌어요. 바닥청소만 한 줄 알았더니 방방마다 침대 시트도 단정히 정리해뒀더라고요. 나잇값은 못 속이는 것 같네요.




딸 둔 엄마들의 고민이 한결같이 발 디딜 틈 없는 방바닥이거든요. 제가 여러분께 오늘은


"여러분~ 걱정하지 마세요~ 고2쯤 되니 집안 청소도 하는 깔끔쟁이로 변신합니다!"


라고 소리치고 싶어 지네요.


아이들은 나날이 자라잖아요. 오늘 앵글이의 수고로 저는 신선놀음했습니다. 청소 후는 자장면인데 맛집도 모르고 자장면을 제가 좋아하지 않아서 피자&스파게티로 팍팍 쐈습니다. 딸아이가 자발적 봉사를 했는데 심 값이 문제겠어요?


어제가 어제 같고 오늘이 오늘 같은  같이 반복되는 일상이지만 소소한 기쁨이 행복을 가득 충전해 주었어요. 자식 키운 보람이 있네요. (물론 청소시키려고 키우는 건 아니지만요.)



온 가족이 함께 웃는 오늘이 행복한 로운입니다.









사진출처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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