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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운 Oct 04. 2021

네 밥에도 진심일 순 없는 거니?

대충 때우면 어때!!

로운이에게.


안녕?

늘 밥에 진심인 네게 나도 쫌 할 말 하고 싶어서 어렵게 편지를 쓰는 거야. 상처 받지 않았으면 해.


가족들 끼니를 챙기느라 '먹는 것에 명품백 사듯 아낌이 없는' 로운아,

네 밥에도 진심일 수는 없는 거니? 아침에 세 식구 밥상을 각각의 취향 따라 챙겨가며 너는 시중만 들더구나. 그럴 수 있지. 얼른 먹고 출근과 등교를 해야 하니 도와주는 것 이해해.


가족을 모두 보낸 뒤 네 밥부터 먹으면 안 되는 거니?

넌 위장장애도 있잖아. 밥 보다 청소를 먼저 하니 끼니를 놓치는 거지. 한바탕 청소를 마치면 이미 아침 먹을 시간을 놓치게 되잖니. 애매한 시간이 되면 넌 또 고민하겠지. 이왕 아침을 놓쳤으니 좀 더 뒤에 아점으로 먹자 하고 말이야. 그래, 그럴 수 있지.


그런데 로운아,

두 끼를 한 번으로 줄여서 먹는 거니 제대로 갖춰서 먹을 수는 없는 거니?

그래. 나도 알아. 밥이란 모름지기 남이 차려준 밥이 최고지. 네가 만들어 네가 먹는 데에 시간과 열정을 쏟고 싶지는 않을 거야. 그렇다고 셰이크 한 잔으로 두 끼를 때우는 건 좀 아니지 않니? 그래. 그것도 그럴 수 있지.


간단한 한 끼 오트밀 셰이크


저번에 말이야. 네가 라면을 끓였잖아. 너 라면 끓이기의 신공을 보여주는 사람이잖니?

생각 안 나? '라면의 진심인 딸'로 한 달 메인을 장식한 거? 그런데 넌, 네가 먹을 라면은 왜 정성을 안 들이니? 맹물에 곁들일 재료도 없이 끓인 것도 속상했는데 퉁퉁 불어 오를 때까지 주방 정리하느라 맛있을 때를 놓쳤잖아. 그래. 그럴 수 있지. 


가족에게 끓여준 라면


그럼, 가족들 줄 때처럼 예쁜 그릇에 담고 김치도 좀 꺼내서 먹을 수는 없었던 거니?

그냥 냄비 채 대충 먹고 때우는 널 보며 많이 속상했어. 가족들에게는 1인 밥상으로 쟁반에 단정하게 올려서 각각 맞춤형 식탁을 전해주는 네가 왜 너에게는 친절한 밥상을 주지 않는 거니? 그래. 그럴 수 있지. 정작 너는 라면을 좋아하지 않잖아. 귀찮아서 선택한 거라는 것쯤은 나도 알아. 그래도 좀 '맛있게 차려서 먹지' 하는 생각이 들었어.


한 그릇 뚝딱 라면


그렇다면 로운아,

대충 때우는 라면을 먹더라도 잠시 쉴 수는 없었니? '먹으면서 뭘 하나' 보니, 내내 아이들 간식거리 장 보느라 라면 국물이 사라지는 줄도 모른 채 핸드폰만 보더구나. 그래. 그럴 수 있지. 아이들 오기 전에 도착할 수 있도록 하고픈 마음 모르는 건 아니야. 그래도 네 밥에도 좀 진심이었으면 좋겠어.


저녁이 되면 가족들이 냉장고를 열어보며 함박웃음을 짓는 것에 하루의 피로가 사르르 녹는다고 너는 말하겠지. 깨끗하게 정돈된 집과 맛난 먹거리로 풍성한 식탁을 준비해 주는 네가 대견해. 그래도 엄마가 건강해야 오래도록 네가 사랑하는 가족들 곁에서 행복한 웃음으로 바라볼 수 있잖아. 너를 위한 식탁도 정성과 진심을 다해보렴. 어렵겠지만 부탁할게.


사랑하는 로운아,

힘들면 힘들다고 얘기 해. 도움이 필요할 때는 도와달라고 하렴. 인생 별 거 없단다. 잠시 쉬어가며 살아도 괜찮아. 또 보자. 안녕.




내가 좋아하는 한식당 '일*정'
가끔은 걸판지게 한 상 차려진 식탁에 앉아 가족들 안 챙기고 내 맘대로 먹어보고 싶다.


친구들과 함께 간 식당에서 굴비를 먹을 때의 그 만족감은 나에게 선물 같은 기쁨과 맛을 전해 주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맘껏 먹을 수 있던 굴비의 맛은 꿀맛이었는데 마음은 불편했다. 한 상 가득 차려진 밥상에 사랑하는 가족이 함께 둘러앉아 먹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식사에 집중하지 못하고 '조만간 남편과 아이들을 데리고 다시 와야지'하며 딴생각으로 마음을 채우다보니 밥에 집중하기 어려웠다. 혼자만 맛난 밥을 먹는 미안함, 함께 오지 못한 아쉬움이 밥맛을 앗아가서 맛을 온전히 음미하지 못한 식사가 되고 말았다.




남편과 아이들 살 발라주느라 정작 나는 좋아하는 굴비의 머리와 뼈 사이사이에 숨은 살들을 발라먹는다. 4 식구의 한 끼 반찬으로 구운 굴비 6마리는 몸통 살을 가시 없이 발라 세 식구에게 나눠주고 나면 버리기도 아까울 나머지 부속들이 나를 맞이한다. 잠시 '버려? 먹어?' 갈등을 하지만 굴비에도 진심인 나는 언제나 야금야금 잘 발라서 먹게 된다.


언젠가 동글이에게,

"동글아~ 엄마도 굴비를 엄청 좋아해. 동글이가 아직 어리니까 살을 발라주고 엄마가 뼈 부분을 먹는 건데 원래는 엄마도 몸통 살을 먹고 싶어."

라고 이야기했다. 그랬더니 동글이가,

"그럼 엄마도 몸통 살을 먹어. 나 조금만 줘도 괜찮아."

라고 했다. '아들아~ 엄마가 하려던 말은 그게 아니었단다.'




가족들과 함께 넷이 앉아서 식사를 하는 일은 거의 드물다. 움직이는 시간대가 각각 다르고 먹는 취향도 달라서 언제부터인가 1인 식탁으로 식사 준비를 해 주게 됐다. 맞춤형 식탁에 대한 만족도는 높은 편이다. 준비해주는 입장에서도 먹네 마네 실랑이를 하지 않아도 되니 일석이조다. 그런데 그렇게 식사를 하다 보니 내가 밥을 먹지 않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는 이가 없다. 각자 제 밥을 먹고 제 할 일을 찾아 떠난다. 그러다 보니 홀로 남아 식사를 때울 때도 있고, 가족들의 잔반을 보며 버릴까 말까 고민하다가 대충 챙겨 먹게 되는 날도 많다.


누군가 나를 홀대해서 벌어지는 일은 아니다. 가족들이 나를 아끼지 않아 벌어지는 일과가 아니라 그저 일을 하다 보니 그렇게 되었고, 각자의 삶을 찾아 각자의 일을 하고 있으니 먹고 있으려니 생각할 수도 있다. 이유는 여러 가지지만 내 몫을 챙기지 않은 것은 누구의 탓이 아니라 나의 선택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해 속상하거나 서운하거나 혹은 불행한 것은 아니다. 자연스러운 일상이고 그저 매일의 삶일 뿐.




집콕 생활이 장기화되면서 이러한 일상은 익숙한 삶이 되었다. 이전에는 일주일에 한두 번씩 친구를 만나기도 하고, 장을 보기 위해 바깥출입을 하기도 하니 낮 한 끼 정도 외식하는 것에 자유로웠다. 지금은 외출도 외식도 자유롭지 않다 보니 번거로움보다 쉽게 때우는 것을 선택할 때가 많다. 신기한 것은 별반 먹는 것이 없음에도 살이 찌는 것이다. 먹는 양이 아무리 적어도 운동량이 부족하다 보니 기초대사량 감소로 체중이 증가했다. 매일 6km씩 걷자고 스스로 계획을 세우지만 작심삼일이다. 동글이의 가정학습 주간 핑계를 대며 오전 시간을 흘려보내니 가을 낮 뙤약볕에서는 걷기가 귀찮아지고 '내일부터'를 외치게 된다.


나를 사랑하는 법에 소홀해지고 있음을 알아챈 지금부터라도 열심히 챙겨보자고 다짐해 본다. 매일 걷고, 하루 한 끼라도 정성껏 챙겨 먹자. 나의 건강이 가족의 건강임을 잊지 말자. 작심삼일이 되지 않도록 3일에 한 번씩 마음을 다잡자. 계획이 그저 계획으로 끝나지 않도록 실행으로 옮겨보자.



굳은 다짐으로 10월의 첫 주를 여는 로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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