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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운 Oct 18. 2021

그 해 여름휴가 사람이 죽다

추억이 될 수 없는 홍천강

수영을 배운 적 없는 그녀는 물을 무서워한다. 접시물에도 빠져 죽을 만큼 물이 두려운 그녀는 강과 바다에 들어가 본 적조차 없다. 그런 그녀가 대가족이 함께하는 가족여행에 합류됐다. 여행지는 강원도에 있는 홍천강이었다. 교회에서 가는 수련회가 여행 경험의 전부였던 그녀에게 가족여행은 낯선 설렘을 가져다주었다. 목적지 중간중간 거쳐가는 휴게소에서 버터 두른 알감자와 맥반석 오징어를 고추장에 찍어먹는 그 맛도 일품이었다. 시간에 쫓기지 않는 여행이라 다음 휴게소에서는 무얼 먹을지 메뉴를 고르는 맛이 있었고, 가족과 함께 먹는 가락국수는 그간에 먹어봤던 국수 중 단연코 최고의 맛이었다.


천천히 여유롭게 목적지에 도착하니 작은 집 식구들은 이미 도착해 있었다. 강과 붙어있는 민박집에 짐을 풀어두고 어린 사촌동생들은 저마다 알록달록한 수영복을 갈아입고 튜브를 허리에 걸친 채 강가로 내달렸다. 아이들의 신나는 함성이 산으로 둘러싸인 마을 전체를 왁자지껄하게 메웠다.


여름휴가... 추석 모임을 대체한 여행이었다. 명절마다 큰집에 모여 2박 3일의 명절을 치르고 나면 작은 어머니들은 친정에 갈 수 없었다. 이번 여행은 결혼 후 40년 세월 종갓집 맏며느리로 살아온 어머니의 배려였다. 어머니는 종갓집 맏며느리로 살아내느라 명절에 단 한 번도 친정에 가지 못하셨다. 할머니, 할아버지 두 분 모두 돌아가시고 난 뒤 첫 모임을 가족 여행으로 한 것은 맏며느리의 통 큰 배려였다.


덕분에 아이들은 신이 났다. 좁은 집에 아버지 형제와 사촌동생들만 모여도 38명이었다. 복작복작 38명의 잔치상을 준비하느라 어머니는 한 달 전부터 장을 보고, 식재료를 준비하고, 일주일 전부터 갖가지 김치를 담그고 음식에 넣을 채소를 다듬느라 허리가 휠 지경이었다. 그 모든 과정을 생략하고 여행으로 돌린 것은 신의 한 수였다.


종갓집 외딸인 그녀 역시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어머니를 도와 10살 때부터 양파며 마늘이며 밑간으로 사용될 채소 다듬기와 뒷정리는 그녀의 몫이었다. 작은집 며느리들은 명절 전 날이 돼서야 일손을 거들었다. 그 조차도 마음이 있는 며느리만 그랬을 뿐 약은 며느리는 명절 전날 늦은 밤이나 명절날 식사 때에 맞춰 오기도 했다. 그래도 좋은 날, 가족 모두가 모인 자리에서 싫은 내색을 하여 분위기를 망치고 싶지 않은 어머니는 묵묵히 어른의 자리를 잘 채우며 40년을 살아내셨다.




난생처음 가족들 모두 함께하는 여행이었다. 아버지의 형제들과 가족들이 모두 함께 한 휴가로 계획된 모임에 어른 10명, 아이들 8명이 참석했다. 그녀는 사는 게 바빴던 부모님과 외식 한 번 제대로 한 적이 없었다. 종갓집이었던 그녀의 집은 늘 손님으로 북적였고 그녀는 일손을 거드는 것에 지쳐있었던 차다. 어린 손으로 무얼 그리 도왔겠느냐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그녀는 웬만한 새댁보다 더 일을 잘하는 종갓집 외딸이었다.


그녀는 집에서 모이지 않고 각자 맡은 먹거리를 준비해서 여행을 하기로 한 계획이 마음에 쏙 들었다. 집에서 지지고 볶는 것은 초대한 집 입장에서는 너무 힘든 일이었다. 사람 좋아하는 그녀도 모두가 떠난 집을 정리하는 것에 이골이 났다. 허리가 불편한 어머니를 대신하여 기름진 주방에 퐁퐁을 가득 묻힌 수세미로 벅벅 닦아 몇 번이고 물걸레질하는 것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20명이 넘는 가족들이 자고 간 이부자리를 세탁하고 널고 말리고 개어 정리하는 일 또한 몇 날 며칠의 일거리였다. 머물다 떠난 자리에 남아 있는 이들의 수고가 고스란히 남는 종갓집에는 손에 물마를 날이 없었다.




추석 모임을 대신 한 여름휴가는 가기 전부터 기대가 되었다. 부모님이 바빠 흔한 분식점에서의 외식도 거의 해본 적 없이 고등학교까지 졸업했던 그녀다. 여행이라고는 교회에서 가는 수련회가 전부였다. 부푼 기대감으로 떠난 여행코스는 홍천강에서 1박, 베어스타운에서 1박으로 2박 3일을 보내는 것이었다.


홍천강 인접에 민박집을 잡은 가족들은 각자의 방에 짐을 풀고 강가에 그늘막 텐트를 쳤다. 그리고 음식을 준비하는 작은어머니들을 거들고 있는데 작은 어머니들은 그녀에게 물놀이하는 어린 사촌 동생들을 챙겨달라 부탁하셨다. 물을 무서워하는 그녀는 강가 자갈바닥에 앉아 말로만 아이들을 단속했다. 아이들은 흥이 바짝 올라 그녀의 목소리가 들리지도 않는지 자꾸 강 중간으로 흘러 흘러갔다.



'저러다 큰 일 나지.' 싶은 생각이 든 그녀는 강가에 내 던져둔 튜브를 허리에 꿰차고 강으로 들어갔다. '엥?' 들어가 보니 무릎 조금 위로 올라올 만큼 낮은 물이었다. 그래도 강 중간은 깊이가 다를 수 있어 조금씩 걸어 들어가 아이들에게 소리쳤다.


"안쪽으로 들어가면 물이 깊어질 수 있어. 얼른 바깥쪽으로 나와!"


나이차가 띠 동갑 이상으로 나는 누나의 외침에 아이들은 혼이 날까 싶어 얼른 바깥쪽으로 나왔다. 물을 끼얹고 수영을 하며 깔깔대는 아이들의 목소리가 온 산과 강에 울려 퍼졌다.




집에서 모일 때에도 아이들은 잘 놀았다. 남의 집에 와서 함께 놀고 뒹굴며 한 이불을 덮고 자는 경험이 어릴 때의 추억으로 고스란히 남는다. 칠팔 명의 아이들을 방 하나에 몰아넣어 잠을 재우면 이불을 뒤집어쓰고 속닥거리느라 밤이 깊어진다. 괜스레 문을 벌컥! 소리 나게 열며


"너희들!! 지금부터 10분 동안 말하는 사람 있으면 내일 슈퍼마켓에는 떠든 사람만 빼고 갈 거야!"


아이들은 명절에 큰 집에 놀러 와서 그녀와 함께 슈퍼마켓에 가는 것을 좋아했다. 통 큰 그녀가 아이들에게 '무엇이든 골라도 좋아.'라고 풀어놓으면 그간에 사지 못했던 것들까지 하나둘씩 챙겨서 카운터로 가져오는 재미가 쏠쏠했다. 부모님과 함께 슈퍼에 가면 불량식품이니 사탕은 안되니 하며 실랑이를 해야 하는데 그녀는 아이들이 고르는 것이 먹을 것이든 장난감이든 가리지 않고 사 주었다. 아이들에게는 꿀맛인 쇼핑이다.


마냥 좋은 그녀는 또 아니다. 엄한 면도 있어서 저녁이 되면 자신들이 잠잘 자리는 스스로 치우고 닦아야 했다. 손걸레 하나씩 쥐어주고 방들을 닦도록 시키고 이부자리를 펴고 잠잘 수 있도록 정리하는 것도 가르쳤다. 청소와 이부자리 정리를 잘 끝내면 미리 준비해두었던 선물 보따리를 하나씩 안겨주었다. 아이들에게는 누나가 준비해 둔 선물 보따리를 풀어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일 년에 두 번, 명절에만 만날 수 있는 어린 동생들을 위한 그녀의 배려였다.





아이들을 강 밖으로 내 보내고 그녀가 나가려는데 발이 땅에 닿지 않았다. 당황한 그녀가 손으로 물살을 밀어내며 밖으로 나오려고 안간힘을 쓰는데 낯선 청년 하나가 다가왔다. 청년은 그녀에게


"물놀이하는 거 좀 도와줄까요?"

"아니에요. 괜찮아요."

"그러지 말고 같이 놉시다!"

"아니요? 그냥 가세요. 괜찮아요."


덩치가 있고 얼굴이 창백할 정도로 하얀 청년은 무언가 다른 의도가 엿보이는 수상한 미소를 띠며 그녀 곁으로 성큼 다가왔다. 그러더니 그녀가 가까스로 붙들고 있는 튜브를 양손으로 잡아 물아래로 깊이 눌렀다. 그녀는 머리끝까지 물에 잠겨 숨을 쉴 수 없었고 강물이 코와 기도로 넘어가는 것이 느껴졌다. 숨이 거의 넘어갈 때쯤 청년은 붙잡고 있던 튜브에서 손을 떼었다. 그녀는 반사적으로 물밖로 튕겨져 올라왔다.


"푸하~"


입에서 코에서 귀에서 물이 쏟아지며 겨우 숨을 돌릴 때쯤, 청년은 다시 튜브를 붙잡고 그녀를 물속으로 밀어 넣었다. '살려주세요!' 소리쳤지만 물 밖에서는 들리지 않았다. 그녀는 '살려주세요!'라고 외치고 있지만 입 밖으로 꺼내지는 말이 아니었다. 숨이 간당간당할 때 그가 튜브에서 손을 떼니 다시 강 위로 그녀가 튕겨져 올라왔다. 덜덜 떨리는 목소리고 그녀가


"왜 그러세요? 살려주세요..."

"내가 언제 아가씨를 괴롭혔어요? 놀고 있는 거잖아요. 재밌죠?"


그가 말을 건네는데 술냄새가 진동을 했다. 그녀에게 장난을 걸고 있는 거라는 듯 이죽거리던 그는 다시 그녀를 물속으로 밀어 넣었다... 세 번째다. 이제는 더 이상 버둥거릴 기운도 없었다. '이렇게 죽나 보다.' 그녀가 거의 포기할 때쯤, 강 건너에 있던 작은어머니가 그녀를 발견했다.


"야!! 거기 너 뭐야! 손 안떼?"


성큼성큼 작은 어머니가 물속으로 뛰어 들어오는 것을 본 청년은 튜브에서 손을 뗐다. 그리고 이내 청년이 뒤돌아 일행이 있는 쪽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물에 시달리다 거의 정신을 잃은 듯한 그녀의 튜브를 작은어머니는 잡아끌며 강 밖으로 나왔다.


"어떻게... 괜찮아? 소리를 치지... 어른이 이렇게나 많은데 텐트 치느라 못 봤네. 괜찮겠어? 병원으로 갈까?"

"아니요... 지금은 못 일어나겠어요. 여기에 잠깐 앉아서 숨 좀 돌릴게요. 감사합니다. 작은엄마!"




그녀는 강가에 앉아 숨을 고르기 시작했다. 한 10분쯤 지났을까? 이제야 주변 풍경과 사람들, 가족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 남자의 일행이 있는 쪽으로 고개를 돌리는데,


'어??'


그녀에게 못된 장난을 쳤던 청년이 강 중간에서 물속으로 들어갔다 나왔다를 반복했다. 허우적거리는 것이 마치 물에 빠진 듯 보였다. 그의 일행들은 10m도 채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그를 보고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저희들끼리 키득거리고 있었다. '뭔가 이상해. 물에 빠진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스쳐 지나가는데 그가 한번, 두 번, 세 번... 물에 들어갔다 나갔다를 세 번 하더니 이내 물 위로 떠올랐다. 순간 나는 벌떡 일어났다.


"작은 엄마!! 사람이... 사람이 죽은 것 같아요. 작은 엄마!!"


그제야 그의 일행들도 내 쪽과 물에서 떠오른 그를 바라보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119! 119를 불러주세요."


일행들은 그를 끌고 물밖로 나와 흉부압박을 하기 시작했다. 5분이 채 되지 않아서 119가 도착했다. 그리고 구급대원이 다가와 그를 살피더니,


"돌아가셨습니다."

"그게 말이 돼요? 5분 정도밖에 안되었어요."


그의 일행들은 당황해서 우왕좌왕하며 격양된 소리로 말했다. 구급대원은,


"물에 빠졌을 때 살 사람은 혀를 입 밖으로 내어 흉부압박을 하면 삼킨 물을 내뱉으며 호흡을 하는데, 이 분은 혀가 이미 말려서 기도를 막았습니다. 혀가 기도를 막고 말려들어가면 저희가 살릴 수 있는 방법이 없어요. 이미 사망하셨습니다."


몰랐었다. 물에 빠졌을 때 살 사람과 죽을 사람의 양상이 다르다는 것은 모두가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저기 푯말 보이시나요? 이곳에서 사망사고가 많이 나서 세워 둔 푯말입니다. 강 중간에 물이 회전하는 구간이 있어요. 주변은 물이 낮은데 그 부분만 석자 넘는 깊이로 갑자기 깊어져 보통 그곳에서 익사사고가 많이 일어납니다. 그래서 푯말을 세워둔 겁니다. 그런데도 여기서 수영을 하시면 안 되시죠. 물놀이를 하시더라도 물 가 얕은 곳에서 발만 담그시는 정도로 하셔야 해요."


119가 사망한 그를 싣고 일행 중 한 사람을 태운 채 떠나고 휴가를 왔던 강가의 많은 사람들은 순간 망연자실하여 온 세상이 정지된 듯했다.


30분쯤 지났을까? 슬금슬금 사람들은 다시 강물에 들어가 놀기 시작했다. 사람이 죽었는데 그 사실이 잊히는 시간이 30분도 채 되지 않았다. 인간이 망각의 동물이라지만 눈앞에서 사람이 죽었는데 그 자리로 다시 들어가 하하호호 웃으며 물놀이를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신기했다. 친구를 잃은 사람들만 텐트를 거두고 짐을 정리해서 떠나갔다. 그 외의 사람들은 그들이 떠난 자리에 다시 돗자리를 펴고, 웃음을 되찾았다. 신기한 현상이었다.


오직 그녀만 강가 자갈 위에 앉아서 옴짝달싹 못했다. 그녀가 죽을 뻔했던 그 자리에서 그녀를 위험에 빠뜨린 낯선 그가 그녀의 눈앞에서 그녀가 보고 있는 중에 죽어버렸다. 사람이 눈앞에서 죽는 것을 보는 경험을 그 누가 하랴. 그녀는 그의 얼굴과 표정이 잊히지 않아 몸서리가 쳐졌다.


그렇게 하루가 지나가고 가족들은 그 밤을 보내기 위해 각자의 방으로 들어갔다. 그녀는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눈을 감으면 계속 그의 얼굴이 떠오르고 물에 빠뜨리던 그 순간이 피부에 와닿으며 덮고 있는 이불이 강물처럼 느껴져 소름이 돋았다. 깜박 잠이 들면 그가 덮쳐와 소스라치게 놀라 잠에서 깼고 온 몸은 땀으로 범벅이 되었다. 그렇게 밤 새 잠을 못 이룬 채 아침이 되었다.




베어스타운으로 이동하는 차 안에서 가족들은 그녀가 걱정이 되어 한 마디씩 거들었다. '괜찮으냐'라고 묻는데 물을 때마다 기억이 떠올라 그녀는 괴로웠다. 차라리 묻지 말아줬으면 싶었지만 대거리할 힘도 없었다. 낮부터 밤까지 시달리고 밤새 악몽으로 잠을 못 잔 탓도 있지만 그의 얼굴이 눈앞에서 어른거려 속이 울렁거렸다. 베어스타운으로 가는 고속도로 휴게소마다 들러 가족들과 아이들은 요기를 했지만 그녀는 아무것도 먹을 수가 없었다.


모두가 함께 있는 자리에서 벌어진 사고였지만 목격자는 그녀 혼자였고, 그녀에게 유해를 끼친 사람이어서 가장 밀접한 피해를 입은 사람도 그녀였다. '다시는 홍천강에 놀러 가지 말자'며 옛말 하듯 이야기하는 가족들 틈에서 그녀는 함께 어울려 대화를 나눌 수가 없었다. 그녀에게는 옛말이 아니라 현재였다. 가족과 함께하는 첫 여행과 휴가였지만 그녀에게는 평생 잊히지 않을 트라우마로 남았다. 그 이후에도 홍천강에는 가 보지 못했다. 30여 년이 지나가고 있지만 낯선 청년의 얼굴이 잔상처럼 남아 그녀에게 홍천강은 추억이 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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