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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운 Feb 17. 2022

단톡방에서 나온다는 것은?

친한 사람 중 확진자가 없으면 사회성 제로?

태어나 얼마 지나지 않은 때부터 아기는 할머니 손에 자랐다. 며느리에게 받은 생활비를 아껴 쓰고픈 할머니는 슈퍼에 진열된 분유통을 보다가 작은 통의 분유보다 큰 통의 이유밀이 크기도 크고 가격도 분유 가격의 절반에 웃도는 것을 보며 고민 없이 이유밀을 선택했다. 다행히 아기는 잘 먹어주었다. 그런데 분유를 먹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기는 보채기 시작했고, 할머니는 아기가 먹성이 좋아 분유를 계속해서 찾는 거라 생각했다. 아기는 할머니의 무지로 분유 대신 아기밀을 먹으며 신생아기를 보냈다.


예방접종을 하기 위해 병원을 찾은 할머니에게 의사 선생님은 아기 엄마를 데려오라셨다. 의사 선생님의 호출을 받은 아기 엄마에게 의사 선생님은,


"아기에게 무엇을 먹이시나요?"

"남양분유를 먹고 있는데요?"

"아기가 남양분유를 먹고 있다고요? 그럴 리가 없을 텐데요...?"

"맞아요. 우리 아기는 남양분유를 먹고 있어요."

"아기를 누가 키우고 계시죠?"

"시어머니께서 키워주시는데요...?"

"그럼 시어머니께 연락하셔서 아기가 어떤 것을 먹고 있는지 물어봐주시겠어요?"


시어머니께 확인을 해 보니 남양분유가 아니라 남양 이유밀을 먹이고 있다고 하셨다.


"시어머니께서 남양 이유밀을 먹이셨다고 하시네요."

"그렇죠? 분유 먹는 아기가 이렇게 됐을 리가 없습니다. 아기가 지금 황달이 심하고, 영양실조에 걸려있어요."

"정말이요? 어떻게 해야 하죠?"

"일단 지금에라도 정상적으로 분유를 먹이셔야 하고 한동안 치료를 받아야 합니다."


아기 엄마는 화가 났지만 당장 아기를 돌볼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마음을 추스른 후 시어머니께 아기의 상태를 알리고 왜 이유밀을 먹이게 됐는지 여쭈었다. 시어머니의 답변을 들은 아기 엄마는 황당했지만 마냥 나무랄 수도 없는 일이었다. 아기는 이후 엄마가 직접 사다 주는 분유를 먹고 자랐다.


그녀의 아기 때 사진을 보면 팔, 다리는 깡 마르고 배만 볼록 나온 그 모습이 마치 기아와 같다. 분유보다 이유밀이 더 크고 값이 싸니 무지했던 할머니는 손녀의 분유값을 아껴 생활비에 보태려고 이유식으로 만들어진 아기밀을 아기에게 먹였다. 아기에게 꼭 필요한 영양은 부족하고 물배만 가득 채워 키워진 아기는 결국 영양실조에 걸렸다. 그렇다고 손녀를 돌보던 할머니를 탓할 수는 없다. 그녀 또한 자신을 이뻐했던 할머니를 원망하지 않았다. 할머니는 손녀에게 넘칠 만큼 충분한 사랑을 주셨고, 그 사랑 덕에 바쁜 엄마의 사랑이 부족했어도 잘 자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핑계를 대자면 "골골 100살"로 살 거라는 놀림과 '걸어 다니는 종합병원'이라는 별명을 얻은 것이 아기밀 때문이라고 그녀는 생각한다. 그녀는 어릴 때부터 열이 한 번 오르면 40도를 웃돌았다. 하지만 너무 자주 아프다 보니 가족들에게는 그녀가 아픈 것쯤은 별일이 아니게 되었다. 관심받지 못하며 홀로 아픈 설움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거다.


아기가 태어나 100일 전후로 하는 기침감기를 '백일해'라고 부른다. 어르신들은 '아기가 크다 보면 감기도 걸리고 아프기도 하지. 자꾸 약 먹이면 아기가 되레 약해진단다.'라고 생각했다. 그녀의 할머니도 잦은 기침을 하는 어린 손녀가 스스로 면역력을 키워 이겨내리라 믿고 병원 가기를 차일피일 미루셨고, 치료시기를 놓쳐 그녀는 결국 '소아천식'으로 살아가게 되었다.


※ 백일해(출처 : 다음 백과)
보르데텔라 백일해균에 감염되어 발생하는 호흡기 질환을 의미합니다. 여름과 가을에 백일해의 발병이 증가하는 경향이 나타납니다. 가족 내 2차 발병률이 80%에 달합니다. 연령이 어릴수록 사망률이 높아지며, 1세 미만의 사망률이 가장 높습니다. 현재는 예방접종으로 인해 백일해의 발생이 현저히 감소하였습니다.

※ 소아천식(출처 : 다음 백과)
어린이 천식. 기침, 천명(가슴에서 씩씩거리는 소리가 남), 호흡곤란 등이 일어나는 증상.


소아천식은 고쳐지는 병이 아니다. 그저 잘 관리하면서 발현하지 않도록 조심하며 살아가야 한다. 그러나 면역력이 떨어지고 체력이 약해지면 잠자고 있던 천식이 발현된다. 그래도 천식을 오랫동안 앓다 보니 스스로 어느 정도 조절이 가능하게 되었다. 스스로 통원치료 증상과 입원 치료 증상을 가늠하여 병원에 갔고, 입원을 요할 듯한 느낌이 들어 입원 짐을 챙겨 병원에 가면 영락없이 입원이었다.

기초체력과 면역력이 떨어지는 그녀는 잔병을 달고 살았다. 유행병이 돌기 전 뉴스 보도보다 먼저 걸렸고, 독감 예방접종을 맞고 독감에 걸려 입원을 하는 일도 다반사였다. 스트레스가 심해지거나 체력을 무리하게 쓰면 천식이 발현되어 숨을 쉴 수 없을 만큼 기침을 했고, 다른 사람들은 가벼운 찰과상 정도로 지나갈 일도 염증이 심해져 오래도록 병원 치료를 받아야 하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그녀가 고등학교 입시를 준비하던 때, 교회 여름 성경학교에 참석했다가 교회 오빠의 장난으로 뒤로 넘여졌다. 잠시 정신을 잃었다가 몸을 일으키니 코에서 맑은 물이 왈칵 쏟아져내렸다.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진다'는 속담처럼, 뒤로 넘어졌는데 코에서 물이 쏟아지니 당황스럽기도 하고 놀랍기도 했다. 피가 났으면 바로 119를 타고 병원에 갔을 텐데 물이 쏟아지니 이상하기는 했어도 무섭지는 않았다. 그대로 몸을 일으켜 집으로 돌아오는데 머리가 띵하며 몽롱했다. 세게 넘어진 탓이려니 하고, 샤워를 하고 이내 잠이 들었다.

다음날이 정기 검진으로 병원에 가는 날이어서 오전에 병원에 들렀다. 기초검사를 하고 진료를 마친 후 처방전을 받아 돌아서다가 의사 선생님께,


"선생님, 질문이 있는데요...?"

"네~"

"어제 제가 뒤로 넘어졌는데 코에서 물이 쏟아졌거든요? 이상해서요... 그 물은 뭘까요?"

"네?? 뭐가 쏟아져요?"

"맑은 물이었어요. 생수 같은..."

"얼마나 쏟아졌죠?"

"음... 한... 한 바가지 정도? 바지가 다 젖었었거든요..."


갑자기 의사 선생님 얼굴이 사색이 되고, 곁에 서 있던 간호사 선생님도 사색이 되셨다. '왜 그러지?' 두 분의 반응을 보며 어리둥절하고 있는데 의사 선생님께서 호출 버튼을 누르시며 이동 침대를 가져오라 하셨다. 그러더니,


"잠시 이쪽으로 와서 앉아보겠어요?"

"네."

"눈을 감고 내가 묻는 말에 대답을 해보세요."

"네."

"(선생님은 그녀의 코에 무언가를 가까이 대며) 무슨 냄새가 나죠?"

"음.... 향긋한 풀내음이 나는데요?"

"눈을 뜨고 한 번 보겠어요?"


눈을 뜨고 보니 담배꽁초였다. 의사 선생님을 바라보니,


"CT를 찍어봐야 알겠지만, 학생이 쏟아낸 맑은 물은 뇌척수액일 가능성이 높아요. 지금부터 검사를 위해 움직이는 것 외에는 지시가 있을 때까지 누워만 있어야 하고 절대 움직이면 안 돼요. 알겠죠?"

"네."

"간호사님, 이 학생 데리고 가서 CT부터 찍고, 결과 나오면 학생 데리고 진료실로 와주세요. 학생은 계속 누워있어야 하니까 보호자 연락해서 바로 입원 수속해주시고요..."


갑작스러운 입원이었다. 검사를 마치고 진료실에 왔더니,


"사진을 살펴보니 뇌수막이 찢어지면서 뇌 속에 있는 뇌척수액이 모두 쏟아졌어요. 여기 사진 보면 이쪽이 뒤통수 쪽인데 뇌가 살짝 기울어져 있는 것이 보이죠? 이쪽이 후각을 주관하는 곳인데 뇌가 눌리면서 후각 기능을 제대로 못하게 된 거예요. 혹시 집에서 엄마가 음식을 하는데 이상한 이야기 하거나 그런 적 없어요?"

"생각해보니 어제 저녁에 엄마가 된장찌개를 끓이고 계시는데 삼계탕이냐고 여쭤봤어요."

"그죠? 그랬을 거예요. 후각 기능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을 테니까요."

"그럼, 입원해야 하나요?"

"당연하죠. 원래는 수술을 해야 하는데 아직 어려서 자연 치유될 수 있도록 기다려볼 거예요. 2주에서 한 달 동안 입원을 하게 될 텐데 절대 움직이면 안 돼요. 화장실 가는 것 외에는 누워만 있어야 해요. 머리가 흔들리지 않도록 조심해야 하거든요. 2주 지난 뒤에 차도가 보이면 더 기다려볼 거고, 그대로이거나 더 나빠지면 수술을 하게 될 거예요. 그때까지는 절대 안정 환자라는 거 잊지 마세요!"


입원이었다. 다른 환자들과 함께 있을 수 없어 1인실에 혼자였다. 침대와 문 앞에는 '절대 안정! 면회사절!' 표지가 붙었다.


※ 뇌(출처 : 다음 백과)
: 뇌는 두개골과 뇌수막(머리뼈 안에 뇌를 싸고 있는 얇은 껍질)에 싸여 뇌척수액 속에 들어 있으며, 주로 신경세포(뉴런)와 신경 섬유로 구성되어 있다.

※ 뇌척수액(출처 : 다음 백과)
: 뇌와 척수를 둘러싸고 있으며 윤활작용을 하고 물리적인 충격을 막아준다. 뇌척수액은 주로 뇌실에서 만들어져 대뇌와 척수를 연결하는 뇌간에 있는 통로를 통해 척수 쪽으로 내려가며, 주위 조직에 스며들어 중추신경계 밖으로 나간다. 뇌와 척수는 뇌척수액 속에 잠겨 있으며, 뇌의 무게를 지탱하는 데 도움을 주고 뇌 및 척수와 주위를 싸고 있는 뼈가 만나는 면의 마찰을 줄여준다. 또한 머리를 맞았을 때 충격을 줄여주는 완충역할을 하며 두개골 속의 압력을 일정하게 유지시켜준다.   


18살 여름, 혹독한 입원 기를 보냈다. 뇌진탕 이후 다음날 정기검진이 없었다면 병원을 찾는 시기를 놓쳐 위험할 수도 있었다. 그러고 보면 복이 참 많다. 한 달의 입원 기를 보냈지만 다행히 자연 치유되어 수술은 피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후 학교 체육활동은 할 수 없었고, 입시를 위해 배우던 성악을 포기해야 했다.


코로나19 이후 햇수로 3년 째이다.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아니 특별한 일조차 만들지 않은 채 집콕 만 2년 차이다. 남들은 이런 나에게 유난을 떤다고 표현한다. 때로는 너무 몸 사린다고 이야기하기도 하고, 인간관계를 끊고 사는 거냐고도 한다. 동네 친구들 모임은 안 간지 오래다. 작년 중반까지는 몇 번은 거절하고, 몇 번은 핑계될 이유를 찾지 못해 나갔다.

대체로 사람이 많이 모이는 카페에서 모였다. 백혈구 감소증으로 감염병에 취약한 나는 유난을 떤다는 말이 싫어 그들과 비슷하게 마스크를 벗고 차를 마셨고, 그들이 많은 이야기를 할 때 주위를 살폈다. 건강염려증은 심해졌고, 나갔다 들어오면 내 몸이 병균 덩어리가 된 듯한 피로감에 시달렸다. 그도 그럴 것이 면역력 자체가 보통 사람들보다 약한 내게 지독한 코로나는 불안 수치를 올리기에 충분했다.


※ 백혈구 감소증(출처 : 다음 백과)
정의상 혈액 순환계 내의 백혈구 수가 혈액 속에서 1㎣당 5,000개 이하인 상태를 말한다. 백혈구 감소증은 대부분의 과감 염증에 동반되며 특정한 감염, 특히 바이러스나 원충류에 의한 감염에 흔히 동반되어 나타난다. 다른 원인으로는 쇠약, 영양부족, 만성적인 빈혈, 몇 가지 비장 질환, 무과립 백혈 구증, 홍반성 낭창, 과민성 쇼크 등이 있다.

※ 백혈구 감소증은 백혈병과 다릅니다.

약속이 잡힐 때마다 번민하다가 소소한 모임들을 하나씩 정리하기 시작했다. 양해를 구하고 단톡방에서 나왔다. 하나둘씩 정리하다 보니 지금은 모임을 위한 단톡방이 하나도 남지 않았다. 한 달 정도는 마음이 번잡했다. 세상에 홀로 남은 듯한 헛헛함이 있었다. 이대로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나만 홀로 남는 것은 아닌지 불안했다. 아이들이 매일 집에 있었던 것은 그런 복잡한 생각에서 벗어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매일 할 일이 있었고, 챙겨야 할 가족이 있었기에 외롭지는 않았다.


단톡방과 이별 후 한 달이 지나자 평안이 찾아왔다. 연신 울려대던 톡방은 조용해졌고, 수시로 울리던 전화벨이 멈췄다. 남편과 아이들, 가끔 있는 외부 전화가 하루에 한 두통 올뿐 전화기 용도가 소통에서 쇼핑으로 전환되었다. 5년째 사용하고 있는 핸드폰을 바꾸려고 했는데 바꿀 이유가 없어졌다. 친한 사람 중 확진자가 없으면 사회성 제로라는 웃픈 이야기가 시시껄렁하게 들려오는 요즘, 집콕 생활에서도 평안하다.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에 가지 않아도 일상생활이 가능한 우리나라는 참 좋은 나라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감사한 마음으로 하루를 살아내고 있다.


세상을 등진 듯 일상을 살고 있는 로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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