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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운 Jun 24. 2021

"친구같은 엄마가 되어줄께."

"엄마가 내 엄마여서 고맙습니다."

내 안에는 자라지 않은 어린 내가 있다...


태어나면서 바쁜 엄마를 대신 해 나를 키워주신 친할머니는 양육자이자 엄마였다. 4살 많은 오빠는 엄마가, 갓 태어난 나는 할머니가 맡아 키워 주셨다. 5살쯤 엄마 집으로 가게 됐을 때 오빠는 거울을 보며 낯선 동생에게 사랑을 빼앗길까 걱정이 돼서 많이 울었다고 한다.


가을을 맞이하는 맑은 하늘


형제는 부대끼며 함께 자라야 한다. 아기였던 동생을 보지 못한 오빠는 어느 날 다 큰 아이를 동생으로 맞이하게 되었고 갑작스러운 동생 맞이는 어린 오빠에게도 부담이었을 거다. 그게 꼭 이유는 않겠지만 50이 다 되어가는 지금도 보통의 남매 사이라기에는 좀 거리가 있다. 반말을 해야 할지 존댓말을 해야 할지 갈등하는 정도의 어색함이랄까?




엄마는 상대적으로 친숙한 오빠를 더 편히 대하고 아꼈다. 학창 시절 내 친구들은 현대판 아들과 딸 이라며 놀리기도 했으니 남들 보기에도 엄마의 편애는 지나침이 있었다.


딸로 태어나 50이 다 되도록 엄마와 단 둘이 무언가를 해 본 기억이 거의 없다. 둘이 함께 쇼핑을 한 적도, 외식을 한 적도, 여행을 간 적도 없다. 그게 뭐 대수랴 싶겠지만 이역만리 외국에 사는 아들과는 매일 한두 시간 전화하는 관계니 나와 안 친한 건 맞는 듯하다. 엄마는 내게 어렵고 잘 보여야 할 대상이며 눈밖에 날까 두려운 존재였다.


자라면서 오빠와 싸움이 나면 이유 상관없이 거의 나만 혼이 났었다. 계집애가 사나워서 오빠를 이겨먹으려 한다는 둥, 오기가 가득하다는 둥, 이기적이라는 둥... 분명 오빠가 잘못해서 벌어진 일인데 인신공격적인 말들로 야단을 맞는 건 내 몫이었다. 두세 번 비슷한 일이 반복된 후부터는 아얘 이르지 않는 방법을 선택했던 것 같다.


엄마의 편애로 당당해진 오빠에게 나는 꽤 자주, 꽤 오랫동안 맞고 자랐다. 기합에 가까운 벌을 세우고, 얼굴을 뺀 나머지 부위를 맞았으며 때로는 쫓겨나기도 했다. 집에서 쫓겨나면 2시간이 넘게 지하철과 버스를 환승해야 갈 수 있는 할머니 집에 갔었다. 그때 나이 초2~6이었으니 꽤 긴 세월 동안 유일한 내편인 할머니 곁은 숨구멍이었다. 할머니가 6학년 10월에 돌아가신 뒤로 지금까지 내게는 안식처가 없다.




결혼을 하고 나니 외로움이 더해지고, 아이를 임신하고 출산하고 조리하는 기간에는 친정엄마가 없는 설움에 울기도 많이 울었다. 차라리 고아였으면 기대도 없었을 텐데 존재하는 엄마의 외면으로 친정이 없는 나는 늘 외로웠다. 엄마를 이해하고 싶어 심리학과 미술치료 공부를 해 봤지만 내 아이를 키우며 더 이해가 안 됐었다.


어미는 자식의 희로애락에 같이 울고 웃는다. 아이의 작은 움직임에도 민감히 반응하고 아이가 자라며 보이는 모든 모습에 감동과 기쁨, 위로함을 얻기도 한다. 자식을 키우는 것에 대가를 바라지 않을뿐더러 퍼주고 퍼줘도 늘 부족한 것 같은 게 부모 마음임을 아이를 키우며 매일 깨닫는다. 그런데 내 어머니는 왜 내게 퍼주는 사랑을 주지 않았을까? 스스로에게 묻고 또 물어도 잘 모르겠다.




어릴 때부터 난 꽤 인기가 있었다. 학교에서도, 친구들에게도, 선생님들에게도, 동네에서도 어딜 가나 칭찬받는 아이였다. 사실 칭찬받는 아이가 되기 위해 죽을힘을 다해 열심히 살았다는 표현이 더 맞다.


살아남기 위해, 집에서 쫓겨나지 않기 위해 나이에 맞지 않는 성숙의 옷을 입고 아이다움을 버렸다. 사람들로부터 조숙하다는 평가를 받았고 어딜 가나 모범생이었다. 그러한 행동 이면에 엄마에게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있었던 게 아닐까? 어른이 된 나는 몸만 자라고 미성숙한 자아가 내면에 잠자고 있다. 문득 어린 나를 깨우는 일이 벌어지면 한동안 그 안에서 헤매곤 한다.


그래서 난 아이가 조숙하게 자라는 것을 싫어한다. 아이는 제 나이에 맞게 자랄 때 가장 행복하다.





어른이 된 나는 어릴 때의 나 보다 좀 더 인기가 있다. 동네 '핵인싸' '오지랖 아줌마'다. 가까운 이들에게 퍼주기 좋아하고 도움이 된다면 봉사와 재능 기부하는 일에 앞장선다. 가급적 얻어먹기보다는 사주는걸 더 좋아하고 베풀며 사는 것이 마음 편한 인정 많은 아줌마로 살고 있다. 


그런데 엄마에게는

인색하고 이기적이고 저만 아는 사람 소리를 듣는다. 자라면서 50년이 다 되어가도록 그 누구에게도 듣지 못한 평가를 엄마에게만 듣는 거다. 왜일까?


엄마에게 이런 유의 주제로 대화를 꺼내면 전쟁이 난다. 그래서 난 용기를 내지 못하고 마음속 응어리를 이고 지고 살아간다...




어쩌다 보니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나는 엄마에게 엄마의 좋은 모델링을 배우지 못한 공부하는 엄마다. 특히 첫아이가 자라며 일어나는 모든 일은 내 인생에 있어 모두 처음이고 생소한 경험이라 어렵다. 그래서 늘 나의 어린 7살, 10살, 15살, 18살을 떠올리며 아이와 함께 크고 있다.


아이가 어려도 인격적으로 만나려고 노력하고 어른이라는 이유로 내 생각을 강요하거나 긴 말로 설득하려 노력하지 많았다. 아이가 혼란해 할 때 내 감정을 느끼는 대로 들려주고 아이의 감정을 물어봐준다. 그리고 어떻게 하길 원하는지 그 해답 또한 아이와 의논하며 18년을 함께 커오고 있다.


다행히도 아이는 잘 자라주고 있다. 사춘기를 겪을 때도 속말을 함께 이야기하며 지나갔고 진로를 고민하는 고2가 된 지금도 함께 나누며 살아간다. 아이 말로는 제 친구들 중 자기가 엄마랑 제일 친한 것 같다고 이야기해 준다. 고마운 일이다.




살아가면서 엄마의 자리가 필요한 상황들이 많이 생긴다. 엄마가 있는데 엄마가 없는 나는 그때마다 홀로 견디고 해결하며 중년이 되었다. 이제는 엄마가 없어도 내 갈길을 갈 만큼 삶이 안정되었고 혼자서 살아낸 시간들이 모자람 없이 값지게 잘 채워졌다.


그런데 이제는 딸 노릇을 해야 할 나이가 되었다. 그토록 외롭게 힘든 고비고비를 홀로 넘어왔는데 오롯이 내 어깨 위에 연로한 부모 부양이 얹어졌다. 그토록 애틋한 오빠는 15년째 이민 생활을 이어가고 있고 외면받던 나는 끊임없이 부모를 책임져야 하는 삶을 살아간다.

 



나는 엄마에게서 자식으로 커가며 부모가 부담하는 양육비용 모두가 언젠가 내가 갚아야 하는 빚이라는 말을 들으면서 컸다. 그런데 애틋한 아들에게는 그런 말을 안 한다. 줘도 줘도 아깝지 않은 게 자식이라고 한다. 열 손가락 깨물면 더 아픈 손가락도 있고 덜 아픈 손가락도 있는 모양이다.


겉으로 보이는 모습을 볼 때 나는 누가 봐도 효녀다. 사랑을 주시든 안 주시든 묵묵히 내 할 도리를 하고 싫은 내색 없이 잘 섬겨드린다. 이웃집 동생이 엄마랑 투닥투닥 다시는 안 볼 듯 싸우다 이내 돌아서서 전화 통화하며 아무 일 없는 듯 사과하고 또 만나고 하는 걸 보며 부러움을 느낀다. 내가 살면서 단 한 번도 하지 못했던 모습이다.


내 어머니는 기대에 못 미치면 외면으로 응대하므로 아예 거스를 생각 자체를 안 하고 산다. 어쩌면 살면서 일어나는 소소한 갈등을 서로 겪고 토로하는 과정이 없어 엄마고 딸임에도 어색한 관계로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나뭇결 사이로 보이는 맑은 하늘




딸에게 가끔씩 이야기해 준다.

"엄마는 할머니에게서 엄마 역할을 배우지 못했어. 그래서 많이 외로웠단다. 그런데 너에게 난 따뜻하고 힘이 되는 네 편이 되어주고 싶어. 그래서 늘 공부한단다. 좋은 엄마가 되기 위해 애를 쓰지만 부족할 수도 있어. 그럼 가르쳐주렴. 네가 원하는 엄마가 어떤 엄마인지 얘기해주면 엄마가 노력해볼게."

딸아이는 답 해준다.

"욱~하는 엄마가 아니어서, 꼰대 같은 엄마가 아니어서, 함께 산책하며 얘기 들어주고, 시험기간에는 마주 앉아 친구처럼 학생도 되어주는 엄마여서, 친구들이 놀러 오면 친구처럼 대해줘서, 성적의 결과보다 공부하는 과정의 노력을 칭찬해주는 엄마여서 고맙습니다..."


딸의 말에 눈시울이 붉어졌다. 애씀이 헛되지 않아 감사했고 친구 같은 대화가 될 만큼 잘 자라주어 엄마 없는 빈자리를 함께 나눌 내편이 되어준 게 기특하고 감사하다.


살아오는 동안 어려움도 많았지만 나는 지금 내가 서 있는 이 자리가 제일 좋다. 오늘도 잘 살아낸 나를 칭찬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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