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로운 Jun 27. 2021

우산 들고 마중 오는 엄마가 내게는 없었다.

 두려움을 없애려면 부딪쳐 싸워봐!

6월의 마지막 주말 늦은 오후

맑았던 하늘에

순간 먹구름이 몰려들었다.


내 집 위로 모여든 검은 구름



신기하게도 우리 마을 위로 구름이 자주 몰려온다. 저 멀리 남의 마을은 맑은 하늘과 투명한 구름이 초여름 오후 시간을 넉넉히 비치는데 유난히 우리 마을 위에만 비구름이 모여들었다. 자주 빚어지는 현상이지만 볼 때마다 신기한 걸 보면 나도 참... ^^


가끔은 하늘 위로 올라가 비구름과 흰구름의 경계에 몸을 맡겨 보고 싶다.  


초등학교 다닐 즈음,

차를 타고 지방 친척집을 가는데 굵은 빗줄기가 쏟아져 '큰일이구나!' 싶다가 어느 정도 달려가다 보면 해가 쨍쨍 비춰 비가 내린 흔적 조차 없던 적이 있다. 달리는 내내 비가 오다, 해가 비추다를 반복하는 고속도로에서 얼마나 신기하던지 비와 햇살의 경계에 서서 그 신기함을 느껴보고 싶던 기억이 있다.


오늘 하늘이 어릴 적 향수를 부른다.

저 하늘 위에서 몸의 반반을 걸치고 왼쪽 팔은 빗줄기에 오른쪽 팔은 햇살에 맡겨 보면 어떤 느낌일까?


빗소리를 영상으로 담아 올리고 싶은데 아쉽다.

  


집 머리 위로 시작된 빗줄기가 온 마을을 덮어 흐른다. 비를 가르고 거리를 걷고 있으면 추적추적 불평을 늘어놓았으려나? 집 안에서 본 빗소리는 낭만이 가득하다.






맞벌이로 바쁜 부모님은 초등학교 때에도 마중을 오신 적이 없었다. 오늘처럼 갑자기 비가 내리면 교문 밖에 삼삼오오 두세 개씩 우산을 들고 선 학부모들로 인산인해를 이뤘었다. 아무도 안 올 줄 알면서도 내심 기대감에 기웃기웃 엄마 얼굴이 보이나 찾았더랬다.

'역시... ㅠㅠ'

엄마는 없었다.

초등학생인 난 친구들에게 혼자인 날 들키는 게 부끄러웠다. 그래서 부러 아이들 모두 가고 난 뒤 마지막으로 교문을 나섰다.


중학생이 되고 나서는 같은 상황이 오면 당당히 비를 맞았다. 비 맞고 가는 나를 본 친구들이 우산을 씌워주마고 다가오면

"비는 맞아야 제맛이지. 우산이 없는 게 아니라 비 맞는 걸 좋아하는 거야. 흠뻑 젖으면 물이 튈까 신경 안 써도 되고 바닥에 고인 물을 첨벙첨벙 밟을 수도 있고, 이거 은근 신이나~ 너희도 해봐~ 살갗에 빗방울 떨어지는 느낌이 간질거리고 정말 시원해!"


친구들은 우산을 접고 같이 비를 맞았다. 처음에는 의심의 눈초리였던 친구들이 옷이 다 젖을 즈음에는 내 말에 공감하며 함께 첨벙첨벙 집으로 가는 길 내내 비와 함께 웃고 떠들었던 하굣길이 기억에 맴돈다. 그 후 난 비가 두렵지 않아 졌다. 비가 내리는 날이면 의례 친구들과 함께 비를 맞으며 하교했고, 함께 우리 집으로 와서 샤워를 하고 내 옷으로 갈아입혀 집으로 보냈다. 그렇게 중학교, 고등학교 시절을 비와 함께 했다.


 




어른이 된 난, 지금도 비가 좋고 비 맞는 게 싫지 않다. 중고등학교 때처럼 비를 맞으며 첨벙 대진 못한다. 혹 지나가는 사람들이 정신없는 사람으로 오해할까 싶어 조심할 뿐 비가 내리면 창 밖으로 손을 내밀어 빗방울을 느껴본다. 비 맞으면 머리카락 빠진다며 10살 아들은 질색하고 나무라지만 팔 하나쯤 어떠랴...


자연은 순리대로 세상을 움직여주는 거라서 하늘에 가득 찬 나쁜 공기를 비에 실어 내려보낸다. 자연을 보면 겸손해진다. 때가 되면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고, 하루 종일 후덥지근 달궈진 땅에 시원한 빗줄기로 열기를 식혀주는 것을 보며 오늘도 감사함을 느껴본다.




사람의 마음은 자연만 못해서 순리대로 살아가지 못한다. 간사한 마음은 갈대와 같아서 이리저리 휩슬리다 상처 받고 눈물짓는다. 그러다 홀로 독해져서는 영영 세상살이와 마주하지 않을 듯 홀로서기를 선포하기도 하고, 그러다 이내 외로워지면 기댈 곳을 찾아 나선다.


나이를 먹으면 나잇값을 해야 한다고 어른들 말씀하시던 그 나이가 되었다. 40이 넘으면 제 얼굴에 책임져야 한다며 인상이 나빠지는 건 심뽀가 나쁜 거라고 얘기하던 동네 아줌마들 이야기가 내 이야기가 된 나이가 되고 보니 어른들 말은 그른 말이 하나 없다.


나이를 먹으며 내 욕심을 조금 내려놓고 순리대로 사는 어른으로 살아보려 애를 쓴다. 겉과 속이 다를 말을 하는 어른이 되면 주변이 모두 힘들어진다. 나는 이것을 '시어머니식 언어'라고 이름 지었다. 속으로는 다른 생각을 하면서 겉으로 '괜찮다'라고 이야기하면 며느리는 이해하지 못한다. 마음을 전하는 방법이 잘못되면 의도와 생각에 상관없이 도리에 맞지 않는 어른이라고 오해를 받는다. 마음의 소리를 겉으로 하면 가끔은 웃지만 오해는 안 한다. 그렇게 한 해 두 해 보내며 겉과 속이 같은 나의 언어에 익숙해지도록 마음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려고 노력한다. 섭섭함이 올라오면 '그럴 수도 있지!'라고 내 마음도 달랜다. 섭섭함에 딱정이가 앉지 않도록 하면 결국 내가 행복해진다. 함께하는 사람들과 일상의 소소한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오늘도 행복한 하루를 마무리해 본다.


오늘도 참 잘 살았다!






사진출처: 로운과 픽사베이







 

작가의 이전글 "친구같은 엄마가 되어줄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