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어나야 해. 시간이 다 됐어. 접종 후에는 샤워 못하니까 씻고 머리 완벽하게 말리고 나가자."
부스스 눈을 뜬 앵글에는
"어? 시간이 이렇게 됐네? 빨리 준비할게."
간단하게 블루베리 요플레와 귤 3개로 아침을 적당히 때운 후, 씻고 준비하는 데까지 20분.
"우리 걸어갈까?"
"그래. 좋지."
온라인 클래스 수업을 듣는 동글이를 뒤로 하고 집을 나섰다.
승강기에서 내리니 복도에 서늘한 바람이 스쳐 지나갔다.
"차를 타고 갈걸 그랬나? 너무 춥지 않아?"
돌아오는 길에 혹시 한기가 들까 걱정이 스쳤다.
"선택할 수 있는 시간 1분!"
"일단 현관 밖으로 나가보자. 나가보고 추우면 다시 들어오지 뭐."
막상 현관 밖을 나가니 복도의 찬 바람이 온데간데없고 따스한 기운마저 느껴졌다.
"엄마, 나오니까 날씨 너무 좋은데?"
"그러네. 걷기로 하길 잘했네. 그렇지?"
앵글이와의 산책은 언제나 즐겁다.
조잘조잘 옆에서 수다 삼매경인 앵글이의 이야기를 듣는 것도 좋고,
어느새 자라 나란히 서서 보폭이 맞아지는 것도 신기하다.
햇살이 적당히 따사롭고,
따뜻한 기운이 곁들여진 찬 바람이 상쾌했다.
갑자기 차가워진 바람 탓인지 나무는 옷을 갈아입다 멈춘 듯 보인다.
"엄마~ 나무가 갑자기 추워져서 놀란 것 같지 않아? 옷을 갈아입다 말았어."
"단풍 구경을 하기도 전에 저대로 멈춰서 겨울이 되는 건 아니겠지?"
"저것 봐... 아직도 그냥 초록이잖아."
"우리 동네가 추워서 그런 건 아닐까?"
"그럴 수도 있지. 시골 맞다니깐..."
일산의 끄트머리에 있는 우리 동네는 파주와 맞닿아 있다.
서울살이와 비교하자면 여름에는 3도 높고, 겨울에는 3도 낮게 느껴지는 동네.
간절기 옷이 무색하게도 반팔과 패딩을 번갈아 입는 기분이 드는 곳.
사계절 중 봄, 가을이 있는 듯 없는 듯 스쳐 지나가는 곳이 우리 동네다.
그래도 오늘은 가을 내음이 물씬 나서 걷기 좋았다.
동네 중심거리에 있는 병원에서 코로나 1차 접종을 마쳤다.
15분 대기 후 귀가하라셔서 대기실에 앉아있다가 나왔다.
"주사를 맞았는지도 몰랐어. 아무것도 안 느껴지던데?"
앵글이는 아픈 것도 둔감하다.
그래서 어릴 때부터 아이를 잘 살펴야 했다.
아프다고 얘기하지 않아서 아픈 것을 눈치챌 때쯤은 입원각이었다.
주사를 맞고 뻐근할 텐데 아무렇지도 않단다.
접종 확인 버튼
"엄마, 백신 만든다고 뉴스에 나올 때는 아무도 안 맞을 것처럼 난리 더니, 이제는 서로 맞겠다고 난리야. 사람들 마음이 정말 제멋대로 아냐?"
"막상 백신이 나오니까 맞아야 살 것 같은가 보지."
"그니까... 사람들 성격들이 이상해!"
코로나에 확진된 사람이 근 2년 동안 주변에 한 명도 없다가 최근 주변에서 하나둘씩 생겨나고 있다. 이제는 독감처럼 일반적인 증상으로 다가오나 보다. 딸아이 친구 중 몇 명이 부모의 확진으로 자가격리에 들어갔다. 너 나할 것 없이 걸릴 수 있다는 것이 증명되고 있는 셈이다.
친구 엄마들이 확진되어 격리소로 이동했고 통화는 가능해서 안부를 물었다.
백신 접종을 안 한 확진자는 3일~5일가량 생사를 오갈 만큼 오한과 통증, 열 등으로 많이 고생했다는 후문이다. 백신 접종을 한 확진자는 오한과 통증, 열이 나지만 한결 수월하고 후유증도 덜하다고 한다.
백신으로 인한 부작용으로 힘든 분들도 계시지만 확률적으로 백신을 맞았을 경우 코로나에 걸렸을 때 덜 고생하고 후유증도 덜하다고 하니 맞는 것이 낫겠다 싶어서 앵글이를 데리고 접종을 하러 갔다. 나와 남편이 접종했을 때를 생각해보면, 접종 후 통상 5시간 이상 경과됐을 때부터 증상이 조금씩 나타났으니, 오늘 오후 4~5시 정도 후부터 혹시나 모를 앵글이의 백신 반응을 위해 타이레놀과 따뜻한 전기장판을 준비해주었다. 접종 후 따뜻하게 몸을 보호하면 '오한'으로부터 조금 자유로울 수 있다.
앵글이 접종을 이유로 방문했지만 병원에 간 김에 나도 독감 4가 백신을 맞고 왔다. 독감접종을 할 생각으로 나선 길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미리미리 예방하면 좋을 것 같았다.
돌아오는 길.
맑은 공기를 마스크로 감싸고 걷는 것이 아쉬웠지만,
주사 맞은 기념으로 카페에 들러 달고나 커피와 딸기 요구르트 스무디 2장을 포장해서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