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는 사회 비판적인 내용을 우화의 형식을 빌어 짤막한 삽화와 함께 전달합니다. 대부분 우울하고 어두운 단면을 보여주지만 생각의 여지를 남겨두고 마무리짓습니다. 무엇을 가르치려 하거나 분명한 마무리는 없습니다. 마치 '궁금한 이야기 Y'를 보는 듯합니다. 선택은 독자의 몫이 되어버립니다.
단편적인 생각으로 결론을 짓고 그것이 옳다고 주장하는 '라떼'스럽고 '꼰대'스러운 생각들을 전환하라는 메시지가 담겨있습니다. 모두가 힘들고 어려운 일이 닥쳤을 때 "조금만 더 힘을 내!"라거나 "이 시기를 거치면 반드시 성장할 거야!"라고 이야기할 때 작가는 불평불만을 그냥 늘어놓으라고 전달하는 듯합니다. "힘든데 왜 견뎌?" , "슬픈데 왜 참아?"라고 하고 싶은 대로 하며 살라는 듯 툭툭 던져놓는 짧은 이야기는 읽은 후 더 많은 생각과 여운으로 다가옵니다.
스무 편의 잔혹한 우화는 생각 없이 훑어 읽으면 한 시간이면 읽을 수 있을 만큼의 분량입니다. 그런데 읽는 내내 생각하게 하고, 반전의 반전을 던한 결론이 '허무'하기도 합니다. '맥락 없는 맥락'으로 독자의 뒤통수를 치는 듯한 작가의 메시지가 발상의 전환을 불러일으킵니다. 그중 두 편을 소개하려 합니다.
불행한 소년
소년은 불행한 환경에서 살아갑니다.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천사가 다가와 '조금만 더 힘을 내!'라고 응원합니다. '조금만 더 참으면 반드시 좋은 일이 있을 거야.'라고 말하는 천사의 위로에 소년은 힘을 냅니다. 그러나 소년은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까지 불행했고, 참고 참은 세월이 야속했습니다. 임종을 앞둔 소년은 부당함에 맞서지 않고 억울한데도 당하며 참고 참아왔던 세월이 억울하고 참담했습니다. 결국 천사와 함께 죽음을 맞이하며 소리칩니다. "네가 나를 평생... 속인 거야!"
모두가 착하게 살아야 한다고 말하지만 사실 착하게 살아가는 사람은 손에 꼽힙니다. 어쩔 때는 그 착함을 이용하며 그것을 딛고 성장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작가는 부당함에 맞서며 굳이 착하게 살지 않아도 괜찮다는 메시지를 던져주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냄비 속의 개구리
냄비 속의 개구리들은 천천히 달아오르는 냄비 속에서 우왕좌왕합니다. 어느 한 예민한 개구리가 '냄비가 뜨거워지는데?'라며 의문을 제기합니다. 그러나 잘난 척하는 개구리가 '다른 냄비는 없어! 설령 있다 해도 그곳이 여기보다 더 나을 거라는 걸 어떻게 알 수 있니?'라며 설득합니다. 의견을 내지 못하는 다른 개구리들은 이상하지만 머물러 있습니다. 그러나 예민한 개구리는 뛰쳐나오며 '바보들아! 뜨거운 것은 그냥 뜨거운 거야!'라고 소리칩니다.
개구리를 처음부터 뜨거운 물에 집어넣었다면 바로 뛰쳐나왔을 것입니다. 찬 물에서 서서히 달아오르니 죽을지도 모를 현실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현실을 직시하고 뛰쳐나온 개구리 한 마리만 살아남았죠. 나는 과연 끓어오르는 냄비 속에서 안주하며 살아가고 있을까요? 변화와 도전을 시도하고 현실에 안주하지 않으면 지금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을 않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