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읽기의 말들 / 박총 지음 / 도서출판 유유

2021-10-30/#017 [새벽 기상-모닝 페이지]

by 로운
새벽기상 04:59


읽기의 말들 (박총 지음)



말을 살아 있고 문학은 도피가 된다. 그것은 삶으로부터의 도피가 아니라 삶 속으로 들어가는 도피이다. (시릴 코널리)

책은 다른 이의 몸 안에서만 박동하는 심장이다 (리베카 솔닛)



사람이 책을 고르는 것이 아니라 책이 사람을 고른다. (영화 [허리케인 카터] 중에서)

진정한 책 읽기는 책 쓰기가 될 때 비로소 완결된다. (탕누어)



독자는 대단히 불손해도 된다. (신영복)



나는 독서하는 방법을 배우기 위해서 80년이라는 세월을 바쳤는데도 아직까지 그것을 잘 배웠다고 말할 수 없다. (괴테)

글을 읽는다는 것은 취하는 것이고, 글을 쓴다는 것은 토하는 것이다. (이옥)



아이의 공부방보다 부모의 서재를 만드는 것이 우선이다. (와타나베 쇼이치)

책을 둘 때 가장 바람직한 방법은, 살기 좋은 그 어떤 설계도 무시하고 자기 주변에 책을 쌓아 두는 겁니다. (오사다 히로시)



처음엔 내가 책을 택하지만 언젠가부터 책이 나를 부릅니다. 이 책이 저 책을 낳고 한 권의 책이 숱한 책들의 도화선이 되어 책에서 책으로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독서의 연쇄가 일어납니다. (김이경)



나는 책을 읽을 때 타인들이 내 책을 그렇게 읽어 주기를 바라는 것처럼 매우 천천히 읽는다. (앙드레 지드)

어떻게 해서든지 읽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으로 읽는 책은 결코 좋은 벗이 되지 못한다. (W.D. 하우 엘즈)



대체로 글이란 눈으로 보고 입으로 읽는 것보다 손으로 직접 한 번 써 보는 것이 백 배 낫다. 손이 움직이는 대로 반드시 마음이 따르므로, 스무 번을 읽고 외운다 하더라도 힘들여 한 번 써 보는 것만 못하기 때문이다. (이덕무)




책모임에서 책벗들과 함께 읽고 토론을 했던 책이었다. 그리고 '박총 작가와의 만남'으로 강연도 책벗들과 함께 했다. 작가는 보통 이상의 생각을 지닌 분이었다. 평범한 것 같은데 평범하지 않고, 특이한 것 같은데 일반적인 사고를 가졌다. 우리가 도덕책에서 접할 법한 고정관념은 전혀 없다. 작가의 다독이 가져다준 변화일까? 무수히 많은 책들을 편견 없이 읽고, 우연히 마음에 쏙 드는 책을 만나면 열 번이고 백번이고 다시 읽는다는 작가의 이야기가 마음에 남는다.




국민학교 시절, 집에 가면 아무도 없는 빈 집이었던 것이 싫고, 혼자 있는 공간이 무서워서 하교 후 어린이 시립 도서관으로 매일 출석했었다. 입장할 때 5권의 책 제목, 지은이, 출판사, 간단한 요약을 적을 수 있는 종이를 한 장 나눠주었다. 도서관에 입장했으니 적어도 5권은 읽고 가라는 암묵적 메시지였던 듯하다. 초등학교 3학년부터 6학년까지 주말과 공휴일을 제외 한 모든 날 도서관에 갔다. 어떤 날은 5권, 어떤 날은 그 이상의 책을 매일 읽다 보니 6학년쯤 됐을 때는 도서관의 책들을 거의 다 읽었을 정도가 됐었다. 그 시절 읽은 책량으로 이후 30년을 살아오고 있는지도 모른다.


다섯 학년의 나이차가 있는 오빠에게 부모님은 계몽사에서 나온 [세계 소년소녀 세계 문학 전집 50권]을 사주셨다. 정작 오빠는 이 책을 읽지 않았다. 거의 매일 집에 혼자 있던 나는 글을 뗀 순간부터 이 책을 수도 없이 읽고 또 읽었다. 그중 동화집, 민화집, 우화집 등을 좋아해서 세계 각국의 동화집은 책이 너풀대도록 읽었던 기억이 있다. 아직도 친정집 책장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추억의 책이기도 하다.



박총 작가는 '몇 번이고 되풀이해서 읽고 싶은 책'이 한 권이라도 있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나는 어릴 때부터 행복한 사람이었나 보다. 전집이 있는 집은 부자였던 때가 있었는데 지금은 책의 귀함이 거의 사라진 듯해서 아쉽다. '읽기의 말들'은 다독으로 치면 앞설자가 없을 듯한 박총 작가의 다양한 이야기들이 적혀있다. 읽기 쉬운 말로, 여러 가지 사례와,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격언을 엮어서 펼쳐진 책을 추천하고 싶다.




2021-10-30/#017 [모닝 페이지] 새벽 필사



새벽을 깨우고,

글을 읽고,

필사를 하고,

시작을 알리는 발행 버튼...

모든 과정에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나태함에 젖어들지 않고,

스스로에게 자극이 되도록

하루를 좀 더 알차게 쓰고픈 마음.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후회가 남지 않는 오늘이 되길,

단지 그만큼의 욕심이었다면 욕심일 뿐.


그런데

누군가 내게 말했다.

너무 열심히 하다 지칠 수 있으니,

더 멀리,

더 오랫동안 글을 쓰려면,

조절이 필요하다고.


잠시 멈춰 섰다.

그리고 물음표를 던졌다.

"왜?"

아무도 내게

무엇을 하라 하지 않는데

나는 "왜?"

끊임없이 무엇을 하려 하지?


죽음의 문턱을 오르내린 경험이

자꾸 나를 몰아세웠나 보다.


질문을 받지 않았다면

계속 나를 몰아세웠으리라...

애정 어린 말 한마디가

정신이 번쩍 나게 해 주었다.


감사합니다. 작가님...



자신에게 자유의지를 허용하고픈 로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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