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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운 Nov 01. 2021

사나이 대 사나이 '한판 승부'

[동글이의 비밀일기] 선빵 날린 아빠 때문에 아깝게 졌다!

동글이의 책장을 정리하다 '보물'을 발견했습니다.

동글이가 쓴 일기장입니다.

꽉 찬 하루하루가 적혀있는데 가끔 한 편씩 소개해 보려고 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쉿~!! 비밀입니다. 동글이가 일기장 표지에,


[동글이의 비밀일기 ※주의 : 꼭 주인에게 허락받고 볼 것!]


이라고 써 두었네요. 주인의 허락을 ㅠ.ㅠ 못 받았어요. 읽다가 너무 귀여워서 올려봅니다.



[동글이의 비밀일기 ※주의 : 꼭 주인에게 허락받고 볼 것!]


삐딱삐딱 글씨... "동글아~ 또박또박 안되겠니?"



오늘은 아빠랑 오목을 했다.
내가 처음으로 아빠랑 오목을 해 본다.
아빠가 선빵을 쳤다.
왜냐면 게임에서 친구를 이겨봤었기 때문이다.
근데 실수로 /를 ⟨으로 해버려서 아쉽게 졌다.
다음엔 꼭 이길 거다.




남편은 아이들과 게임을 해 줄 때 져주는 법이 없습니다.

앵글이도 그렇게 컸습니다.

앵글이는 7살 되었을 때부터

아빠에게 보드게임, 루미큐브, 화투, 포커 등을 배웠습니다.

어느 정도 숙지를 하면 아빠가 게임 룰을 바꿉니다.

처음에는 계속 일방 져주다가 판을 키운 뒤

그동안 이겨서 딴 판돈을 고스란히 빼앗기게 되고

아이는 망연자실하게 되는 경험을 하며 치열하게 게임을 배웠습니다.


"7살짜리 하고 게임을 하는데 좀 져주지 맨날 애를 울려요?"

"게임에 져주는 게 어딨어? 정정당당하게 하는 거지."

"그럼, 판돈을 올리지를 말던가..."

"그럼, 게임 룰을 바꿀 때 싫다고 의사표현을 정확히 해야지."


앵글이는 이미 삐져서 마음이 상해있습니다.

달래도 소용없고, 아빠에게 잃은 판돈을 내어줘도 소용없습니다.

물론 판돈은 10원, 100원 단위라서 돈 액수가 큰 것은 아니지만

홀라당 한 번에 잃은 허망함으로 아이의 기분은 땅에 떨어진 상태입니다.

그러고 보면 앵글이는 어릴 때부터 지는 것을 싫어했던 것 같습니다.




남편이 아이들과 놀아줄 때는 늘 냉혹합니다.

아래층 동생네와 함께 모이면 가끔 보드게임을 하며 아이들과 놀아줍니다.

우리 가족의 게임 모습을 보며 동생은


"이 집은... 진짜... 피도 눈물도 없어!!"


라고 말할 정도니까요...


앵글이가 그렇게 아빠에게 냉혹한 게임을 배우며 자라 서일 까요?

웬만해서는 멘털이 나가지 않습니다.

초등학교 2학년쯤 까지는 울기도 하고 삐지기도 했는데,

이제는 아빠가 앵글이에게 매일 집니다.

앵글이의 전술이 훨씬 좋아졌거든요.

무슨 게임을 해도 앵글이에게 지자 이제는 남편이 삐집니다.

앵글이도 절대 '한 수도' 밀려주지 않거든요...




동글이가 7살이 되었을 때부터,

이제는 동글이 차례가 되었습니다.

가족들이 게임을 할 때 동글이도 한 자리 차지하려면 게일 룰을 익혀야 합니다.

컴퓨터 게임을 잘하는 동글이는 보드게임을 숙지하는 속도가 앵글이 어릴 때보다는 빠릅니다.

그리고, 앵글이와 정 반대의 성격을 가진 동글이는 판돈을 다 잃어도 삐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실 놀리는 재미가 없습니다.

이겨도 져도 판돈을 따던, 잃던 별 관심이 없거든요.

혹 자기가 이겨서 판돈을 따도


"누나, 이거 줄까?"


하며 그냥 나눠줍니다.

실랑이하는 재미가 있어야 신이 나는데 맥이 좀 빠진 달까요?

한 배에서 나와도 성격이 정 반대인 것을 보면 참 신기할 때가 많습니다.




아빠에게 오목을 하자고 동글이가 제안을 합니다.

엄마는 넉근히 이기는(사실 져준 건데 동글이만 모릅니다.)

제 실력을 아빠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과감히 도전장을 내밀며 식탁 위에 바둑판을 세팅합니다.


"아빠, 나랑 오목하자!"

"오목? 너 오목할 줄 알아?"

"그럼, 학교에서 친구들이랑도 해봤고, 엄마랑도 해 봤어."

"좋아! 그럼 한 판에 1000원이다!"

"동글이가 1000원이 어디 있어요? 판돈이 너무 크지. 다른 걸로 해요."

"엄마, 나 돈 있어. 엄마가 통장에 넣어놨잖아."

"그건 안돼! 통장에 넣은 돈을 게임에 쓰겠다고? 다른 걸 생각해봐."

"그럼, 아빠가 이기면 동글이는 컴퓨터 게임 하루 안 하기! 어때?"

"좋아. 그럼 내가 이기면?"

"네가 이기면 뭘 하고 싶은지 네가 정해."

"그럼, 내가 이기면, 아빠랑 나가서 축구하는 거 어때?"

"오케이. 콜~"


사실, 지나 이기나 엄마 입장에서 보면 다 좋은 일입니다.

동글이만 그걸 모르는 것 같습니다.

게임을 시작하면 피도 눈물도 없이 봐주지 않는 아빠를 동글이가 알턱이 없죠.

몇 번을 했는데도 동글이가 졌습니다.

결국 아빠는 자유권을 얻어 소파를 차지했고,

애먼 동글이만 컴퓨터 게임권을 잃었습니다.

그렇게 하루가 지난 일이 기억에 남아있는데

일기장에 고스란히 쓰여 있는 게 '피식~' 웃음이 나네요.




요즘은 남편이 동글이에게 바둑과 장기를 가르칩니다.

제법 숙지 속도가 빨라서 아빠와 꽤 오랫동안 경기를 합니다.

아직은 아빠가 한 두수 물려줘야 되지만 조만간 아빠를 앞설 수도 있을 듯합니다.


아이가 아빠와 놀이에 푹 빠져 있는 모습을 보면 왠지 마음이 흡족합니다.

함께 컴퓨터 앞에 앉아 경기를 할 때도 있고,

바둑이나 장기, 오목, 보드게임을 할 때도 있습니다.

요즘은 날이 좋아서 같이 나가 배드민턴을 치고 들어오기도 하죠.

이 땅에서 아빠로 사는 일도 만만치가 않습니다.


어느 날 동글이가 엄마 한데 이야기합니다.


"엄마, 아빠가 얼마나 힘들게 사는지 알아?"

"아빠가 힘들게 살아? 왜?"

"내가 저번에 아빠 사무실에 같이 갔었잖아."

"그랬지."

"아빠가 몇 시간씩 서서 일해. 얼마나 힘들겠어? 다리도 아프고..."

"아빠가 서서 일해?"

"응. 컴퓨터 앞에 서서 계속 일해. 한... 5시간쯤?? 서있었을걸?"

"그래서 아빠가 힘들게 일하는 것 같았어?"

"힘들잖아. 아빠가 그렇게 힘들게 일해서 돈 벌어다 주는 거야."


동글이는 알까요?

아빠가 계속 앉아 있으니 자세도 나빠지고 살도 찌고 해서

운동하기 위해 서서 일하는 거라는 걸...

그래도 동글이 눈에 아빠가 힘들게 일하며 자기를 키우고 있다고 믿는 것은 좋은 일인 듯합니다.

그래서 동글이에게 별 다른 말은 안 해주었습니다.

아빠는 가족을 위해 힘들게 일하는 분이시니까요...




한 주가 시작되는 월요일.

오랜만에 동글이는 등교 주간을 맞았습니다.

오늘도 학교에서 친구들을 만나 반갑고 신나겠죠?

사람을 좋아하는 동글이는,

친구와 약속을 하고 놀이터에 가지 않아도

즉석에서 친구를 만들어 함께 놀고 들어옵니다.

대상이 형, 누나여도 상관없고, 유치원 동생들이어도 괜찮습니다.

그저 아무에게나 다가가서


"나랑 같이 놀래? 난 3학년이고 이름은 동글이야. 넌 몇 학년이야?"

모르는 친구에게 다가가 통성명을 하고 꼭 학년이나 나이를 묻습니다.

상하관계를 알아야 포지션을 정할 수 있어서 그런 듯합니다.

그렇게 즉석에서 친구를 사귀고 서로 갖고 나온 딱지 등을 나눠서 놀기도 하고,

정원의 잠자리 잡기도 하면서 해가 지도록 놀고 들어옵니다.


"동글아, 밖에 친구 있었어?"

"친구? 놀이터 가면 늘 있지."

"그래? 누구랑 놀았는데?"

"이름은 몰라. 그냥 같이 놀았어."

"처음 보는 친구야?"

"응. 한 명은 4학년이었고, 한 명은 1학년이었어. 둘은 가족이래."

"그래? 처음 만난 친구인데도 재미있었어?"

"응. 재미있었어."


동글이의 친화력은 단연 최고입니다.

앵글이는 낯을 가려서 늘 엄마와 동행했었는데

동글이는 누구와도 잘 어울리는 친화력으로 혼자 나가서도 잘 놀고 옵니다.

오늘도 벌써 하교했어야 할 시간인데

학교 마치고 바로 놀이터로 뛰어갔네요.




11월의 첫날입니다.

2021년도 이제 두 달 남아있네요.

올 한 해는 브런치를 친구로 만나 행복했습니다.

앞으로도 행복할 것 같습니다.


주변에 코로나 확진으로 자가 격리된 지인들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위드 코로나를 선포했는데

코로나는 오히려 더 가까이 다가온 느낌입니다.

이젠 감기처럼,

걸리면 치료받고, 스스로 조심하며 살아야 하는 것 같습니다.

11월.

날씨도 좋고,

봄의 화사함과 조금 다른

가을의 운치가 물씬 느껴지는 매일이 아름답습니다.

위드 코로나여도 코로나가 사라진 것은 아니니,

각자 개인위생 잘 지켜서 건강하시길 바라봅니다.




11월의 첫날, 로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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