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기상 03:56
일상적인 삶을 이야기하고 있는 [행복 목욕탕]은 우리나라의 1980년대 생활상과 비슷합니다. 배경도, 삶의 모습도 너무도 닮아있어 이질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드라마 한 편 같습니다. 그런데 일본 영화 특유의 색깔이 있습니다. 저는 일본 영화를 즐기는 편은 아닙니다. 그런데 [행복 목욕탕]은 꼭 한 번 보셨으면 하는 마음으로 추천합니다.
각기 다른 4명이 모여 가족이 되었습니다. 누구 하나 공통점이라고는 찾을 수 없는 네 사람은 한 집에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마다의 사연이 얽기고 설켜 끈끈하게 묶여있습니다. 내용을 알고 봐도 모르고 봐도 너무나 슬픈 이 영화는 영화가 끝나고 자막이 올라가도 자리를 뜰 수 없도록 합니다. 가슴이 먹먹하고, 나도 모르는 새 눈물 한 줄기가 주르륵 흘러내립니다. 이유를 찾자면 너무나 많은데 그 이유를 입에 올리기가 미안한 영화입니다.
딸, 아즈미는 학교에서 '왕따'를 당합니다. 이유는 없습니다. 짜증 나서 괴롭히고, 걸그적 거려서 괴롭히고, 마음에 안 들어서 괴롭히고 그냥 괴롭힘을 당합니다. 그렇다고 아즈미에게 어떠한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닙니다. 엄마 후타바는 그런 아즈미에게 '강해져야 한다'라고 말합니다. 그쯤은 견뎌내야 세상을 살아낼 수 있다고, 어차피 세상은 혼자 이겨내며 살아가는 거라고 이야기하며 애써 외면합니다.
말없이 사라진 아빠가 있지만 아즈미는 엄마와 둘이 1년째 동거 중입니다. 이즈에서 보내온 키다리 게를 먹는 날은 포식하는 날입니다. 그런데 게가 도착하면 엄마는 아즈미에게 감사의 편지를 쓰도록 합니다. 쓰고 싶지 않지만 엄마가 시키니 아즈미는 편지를 씁니다. 그러다 몸이 안 좋아진 엄마(후타바)는 병원 진료를 받습니다. 4기 암. 수술도 치료도 불가능한 상태입니다. 의사도 덤덤하게, 후타바도 덤덤하게 현실을 받아들입니다.
외로운 후타바는 혼자 울고 외로이 시련과 아픔을 견뎌내며 아즈미와 함께합니다. 이즈에서 온 키다리 게를 먹으며 엄마는 딸에게 속옷을 선물합니다. '언젠가 필요한 날이 있을 거야.' 아즈미는 이상했지만 선물을 마다할 이유가 없습니다.
※ 이후의 이야기는 스포 하지 않겠습니다. 슬프지만 너무나도 감동적인 엄마의 헌신과 희생, 그리고 모든 것을 내어 준 후타바의 이야기를 브런치 여러분께 소개합니다.
2021-11-03/#021 [모닝 페이지] 새벽 필사
[아티스트 웨이 P121~124 분노에 담긴 메시지에 귀 기울이기]
우리는 분노를 없애기 위해 노력만 할 뿐, 정작 분노가 내는 목소리를 듣지는 않는다.
분노는 우리가 귀 기울여야 할 외침이며 호소이고 요구이다.
분노는 소중히 여겨야 한다.
분노는 우리의 한계를 절실히 드러내 주고, 우리가 어디로 가고 싶어 하는지를 알려주는 지도이기 때문이다.
창조성이 막힌 사람이 회복하는 과정에서 분노는 건강의 청신호이다.
분노는 우리가 무엇을 좇아 행동해야 할지를 알려준다.
그러나 그것에 휩싸여 행동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우리는 분노가 제시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연료로 이 분노를 이용해야 한다.
나는 그저 입을 삐죽 내밀고 블루스 몇 곡을 만드는 데 필요한 에너지를 취했을 뿐이다. (듀크 엘링턴)
분노를 느낄 때면 우리는 분노를 느낀다는 사실 자체에 더욱 화가 난다.
분노는 과거의 삶이 죽었음을 알리는 하나의 폭발물이다.
분노는 우리를 새로운 삶으로 이끄는 연료이고, 우리의 주인이 아니라 도구이다.
분노를 묻어두기보다는 끌어내야 한다.
게으름과 무관심, 절망은 적이지만 분노는 친구이다.
착하거나 점잖지는 않지만, 정직한 친구임은 분명하다.
분노는 우리가 배신당했을 때, 우리가 자신을 배신했을 때를 언제나 알려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이제 우리가 가장 흥미를 느끼는 것을 알려준다.
분노는 행위 그 자체가 아니라 어떤 행위를 초대하는 것이다.
분노는 솔직한 자기표현이다.
그런데 나(우리)는 자신에게 솔직하지 못하다.
그래서 분노를 표현하지 못하도록 자신을 구속한다.
건강하게 분노를 표출하면 더 건강해진다.
분노를 마음에 쌓아두면 '화'가 쌓여 병을 만든다.
어쩌면 나는 내 마음의 소리를 듣지 못해 스스로를 억압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세월의 흐름 따라 쌓이고 쌓여 어떻게 분노를 표현하는지도 잊어버렸다.
이제 치유받지 못한 채 수년 동안 나와 동거 동락 중인 분노와 대면할 때가 됐다.
고개를 숙여 마음의 소리를 들어보자.
그리고, 내 마음이 무엇을 원하는지 물어보자.
아마도 마음은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마음의 소리를 듣고 질문하며 얻은 깨달음은 나를 한 층 성장시키리라 믿는다.
성장하는 나와 함께하고픈 로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