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야근으로 잠옷이루는 밤 01:27
[서평] 이상한 정상가족 / 김희경 지음
"한 사회가 아이들을 다루는 방식보다 더 그 사회의 영혼을 정확하게 드러내 보여주는 것은 없다." (넬슨 만델라)
『이상한 정상가족』의 구성은,
1. 가족은 정말 울타리인가? [가족 안 - 자식은 내 소유물]
2. 한국에서 '비정상' 가족으로 산다는 것. [가족 바깥 - '정상'만 우리 편]
3. 누가 정상가족과 비정상 가족을 규정하나. ['믿을 건 가족뿐'이라는 만들어진 신념]
4. 가족이 그렇게 문제라면. [함께 살아가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
의 4가지 주제로 이야기를 펼치고 있다.
p10
『정상가족』 이데올로기는 결혼제도 안에서 부모와 자녀로 이뤄진 핵가족을 이상적 가족의 형태로 간주하는 사회 및 문화적 구조와 사고방식을 말한다. 바깥으로는 이를 벗어난 가족 형태를 '비정상'이라 간주하며 차별하고, 안으로는 가부장적 위계가 가족을 지배한다. 정상성에 대한 지나친 강조로 가족이 억압과 차별의 공간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이상한 정상가족』은 부모와 자녀로 이뤄진 핵가족을 이상적 가족의 형태로 간주하는 ‘정상가족’ 이데올로기로 아이들이 고통받고 있다는 점에 주목한 책이다. 가족은 사회를 반영하고, 가족 내에서 사회의 비극이 되풀이된다는 지점에서 ‘정상가족 이데올로기’의 부조리를 다양한 사례들과 연구 결과를 통해 드러내는 책이다. 특히 사회적 사각지대라 볼 수 있는 아동 인권의 문제를 가족과 가족주의에 관한 문제로까지 서사를 확장시켜 나갔다.
p36~37
부모의 체벌 덕분에 내가 괜찮은 사람이 되었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 부모의 체벌에도 불구하고 나는 괜찮은 사람이 되었다고 말해야 한다.
: 강한 훈육으로 인해 다듬어지고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기저 자체가 좋았기 때문에 체벌을 당함에도 불구하고 건강하게 성장했다고 말하는 것이 맞다. 성장하면서 "권위적이고 엄한"이라는 합리화로 자녀를 체벌하면서 "사랑의 매"라고 이름한다. 하지만 아이는 체벌적 훈육이 아니더라도 충분히 건강하게 성장하도록 도울 수 있다. 과연 자녀를 위해 체벌을 했을까? 잘못된 행동을 보고 난 후 '나의 화'를 조절하지 못해 '사랑의 매'라는 이름으로 '나의 화'를 풀어낸 것이 아닐까?
상대가 나를 사랑하거나 깊이 의지한다는 사실을 내가 알고 있는 상태에서 힘을 휘두른다면, 이는 신체적 상해에 더해 상대의 마음을 악랄하게 모욕하는 '질이 나쁜 폭력'이다...... 가해자는 폭행의 이유로 '네가 맞을 짓을 했다'며 피해자 탓을 한다. '맞는 것보다 상대를 잃는 게 더 두려운' 피해자는 맞을 짓을 계속하는 자신을 탓하며 더 좋은 사람이 되겠다는 다짐을 했다고 한다.
: 요즘 이슈가 되고 있는 가스 라이팅 폭행이다. 폭력은 어떠한 이유에서도 정당화될 수 없다. 특히 힘을 가진 자와 힘이 없는 자. 즉, 부모 자식 간의 관계에서 부모는 자녀의 생존을 책임지는 위치에 있기 때문에 부모가 화를 내거나 체벌을 가하고, 때로는 음식을 주지 않아도 자녀는 부모에게 안기며 폭력 당한 것을 쉽게 잊는다. 어쩌면 잊은 게 아니고 잊어야 살기에 잊힌 것이 맞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생존을 쥐고 있는 사람은 그 힘을 함부로 휘둘러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부모는 자식의 울타리이다. 울타리는 건재해야 하며 안전해야 한다. 어떠한 이유로라도 폭력에 정당성은 없다. 체벌을 하지 않고 말로 하는 폭력도 폭력이다. 비교, 편견, 비하, 억압, 강요, 강압 등의 언어로 자녀를 묶어두려 하지 말자. 자녀는 신이 내게 잠시 맡겨 둔 선물이다.
『이상한 정상가족』은 4가지 주제로 끊임없이 질문을 던진다. 책을 읽으며 잘못된 사고와 편견에 관해 들여다보고 생각할 수 있었다. '정상'과 '비정상'의 기준은 없다. 그 기준 역시 누군가 편협된 사고로 만들어낸 이데올로기에 불과하다. 편견에 싸여 눈을 가리면 잘못된 길로 가고 있는 나를 보지 못하고 편협된 사람으로 살아가게 된다. 옳다고 생각했던 것이 과연 옳았는지, 내가 갖고 있는 사고가 바르다고 정의할 수 있는지 되돌아보게 만드는 책이었다. 대통령이 추천 한 책 『이상한 정상가족』을 브런치 독자들에게도 추천하고 싶다.
2021-11-02/#020 [모닝 페이지] 새벽 필사
[아티스트 웨이 P110~115]
사람과 사물, 문학, 음악 속에서 보이는 그대로의 삶에 흥미를 가지라. 세상은 소중한 보물과 아름다운 영혼, 재미있는 사람들로 살아 숨 쉰다. 너 자신을 잊으라. (헨리 밀러)
아티스트의 삶에 대한 커다란 편견 가운데 하나는 목적 없는 삶을 산다는 것이다.
창조적인 삶이란 끝없는 관심의 연속이다.
관심이란 우주와 나를 연결하고 살아남는 방식이다.
살아있다는 것은 바른 정신을 갖는 것이고, 바른 정신을 갖는다는 것은 관심을 쏟는 것이다.
삶의 진실은 그 삶의 성공 여부와는 상관없다는 것을 고통스러운 삶을 통해 깨닫게 된다.
삶의 질은 기쁨을 맛보는 능력과 비례하고, 기쁨을 맛보는 능력은 관심을 갖는 것으로부터 비롯된다.
관심을 쏟으면 헤어진 연인, 아픈 아이, 깨진 꿈 등으로 인한 일상적인 고통이 치유되기 시작한다. 그리고 결국은 모든 고통의 근본적인 원인이 치유된다.
관심이란 무엇보다도 서로가 통하려는 작용이다.
고통에 빠져 있는 동안, 미래를 생각하기에는 너무 두렵고 과거를 돌이키기에는 너무 고통스러울 때 현재에 관심을 기울이는 법을 배웠다.
자아라는 명사는 동사가 된다. 창조가 시작되는 이 순간, 일과 놀이는 하나가 된다. (스티븐 나크 마노비치)
지금 이 순간,
어디에 선가는 새 생명이 태어나고,
어딘가에서는 생을 마감한다.
나는 이제,
새 생명이 태어남을 경험하는 것보다,
생을 마감하는 것에 배웅하는 경험을 더 많이 할 나이가 되었다.
그 안에
내 부모, 형제, 친구...
수많은 사람들과 이별을 하게 될 것이고,
어쩌면 그들이 나를 배웅해 줄 수도 있다.
인생의 절반 중,
20~50세까지의 삶은 분주한 삶이었다.
앞으로의 삶도 분주하게만 살아갈 것인가?
지금 내 앞에 죽음이 가까이 왔다고 생각해 보자.
후회 없는 삶을 살았을까?
나는 분주하기만 한 삶을 살았다.
후회까지는 아니지만,
그 분주한 삶 가운데
"나"는 없었다.
잘 살았다는 말을 할 수 있을까?
열심히 살았지만
그 중심에 "내"가 없었다면
"잘 살았노라"라고 말하기 어렵다.
부와 명예가 주어지면 잘 살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부와 명예가 있어도 "가치"가 없다면 "잘 산 삶"은 아닐 것이다.
앞으로의 시간도
어쩌면 아마도 열심히 살아갈 것이다.
하지만,
깨달음을 얻었으니
그 열심의 "중심"에
"나"를 채워서 열심을 다하며 살아내야겠다.
그래서 나는,
지금 이 순간도
나의 성장을 위해 열심을 다한다.
오늘도 열심히 살아 낼 하루를 펼치는 로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