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1-09/#027 [아티스트 웨이]
우리에겐 창조적 고독, 다시 말해 혼자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 만약 이런 재충전의 시간이 주어지지 않다는 다면 창조성은 고갈되고 말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남들을 친절하게 대해야 한다는 의무감에 얽매여서, 진심으로 하고 싶은 일이 있는데도 가족과 친구들이 보일 반응이 두려워서 감히 하지 못한다.
겨우 일깨워진 자신의 창조성은 대부분 남에게 미덕을 베풀다가 파괴되고 만다. 이런 거짓 미덕에 따른 대가는 엄청나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잃으면서 미덕을 쌓고 있다.
우리는 그것을 '착하다'혹은 '성실하다'는 말로 포장된 영혼의 잘못된 감각을 살찌우는데 써왔다.
존경받고 성숙한 사람으로 보이고 싶은 충동은 창조성을 망치고 심지어 자신의 숨통을 막기까지 한다.
우리는 착하고 친절하며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되고 이타적인 사람으로 보이려고 노력한다. 너그럽고 헌신적이며 인정받는 사람이 되고 싶어 한다.
당신이 정말 원하는 것은 혼자 있는 것이다. 그러나 진정한 자신은 사라지고 남아있는 것은 텅 빈 껍데기뿐이다. 껍데기가 일상을 살아가고 껍데기가 칭찬을 받는다.
우리의 창조성은 그저 소진된 것이 아니라 아예 우리에게서 빠져나간 것이다.
이기적으로 보일까봐 두려워서 우리는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고 스스로 파멸해간다.
세상 사람들에게 착해 보이고 세속적으로 인정받기 위해 거짓된 자신을 만들어내고 있다.
이 거짓된 자신은 참을성이 많으며, 다른 사람들의 필요나 요구에 기꺼이 자기의 욕구를 뒤로 미룬다.
지나친 선량함이라는 덫에 걸린 창조성은 이처럼 진정한 자아를 파괴해왔다.
진정한 자아는 다른 사람들에게 "싫어"라고, 자신에게 "좋아"라고 말하는 법을 알고 있다.
미덕의 덫에 걸린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비난당할까 봐 두려워 자아를 세상에 드러내지 못하는 것이다.
도대체 누구를 위한 책임감이란 말인가?
당신의 삶을 자신을 위해 사용하고 있는가, 아니면 다른 사람을 위해 사용하고 있는가?
창조성을 억누르는 데 가장 잘 쓰는 방법 가운데 하나는 자신에게 "안돼"라고 말하는 것이다.
우리는 온갖 사소한 부분에서 자신에게 얼마나 야박했는지 안다면 깜짝 놀랄 것이다.
다른 사람들에게 "싫어"라고,
자신에게 "좋아"라고 말하는 법
유치원을 운영할 때, 저와 이름이 같은 선배 원장님이 계셨습니다. 제가 근무하던 유치원은 법인이어서 처우가 꽤 좋은 곳이었습니다. 앵글이를 초등학교에 입학시키며 퇴사를 결정해야 하는 순간이 왔습니다. 좋은 근무환경과 높은 급여, 안정된 직장, 포기하기 아까운 경력... 이 모든 것이 고민의 조건이 되었지만 아이와 맞바꿀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과감히 육아를 결정했습니다. 사직서를 내고 선배 원장님을 찾아가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그때 제게 해 주신 말씀이 있었습니다.
"원장님, 그동안은 함께 일을 하니 이야기해 주지 못했던 것이 있어요. 너무 애쓰고 살지 말아요. 다른 사람들을 챙기느라 자신을 돌보지 못하는 것은 '오만'이랍니다. '타인을 돕는 것'은 내게 남는 에너지가 있을 때 하는 것이에요. 그런데 원장님은 본인의 에너지가 이미 고갈되어 없는데도 남을 돕느라 에너지를 너무 많이 써요. 한 번쯤 이야기해주고 싶었답니다.'
그때는 알지 못했습니다. 왜 나의 선한 나눔이 '오만'일까? 그런데 선배님의 나이가 되고 보니 이제는 좀 알 것 같습니다. 여러분도 알 것 같으신가요?
가을을 보내고 겨울을 맞이하는 로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