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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운 Dec 14. 2021

수시전형으로 대학은 못 가겠어요.

학교가 달라져야 합니다.

2021년 고3들의 12년 대 장정은 마쳐졌습니다. 이제 고2들에게 바통터치만 남아있을 뿐...


앵글이가 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 나름 원대한 꿈을 안고 스타트 버튼을 눌렀습니다. 그리고 열심히 했습니다. 적어도 엄마가 보기에는 말이죠. 학교 생활도 타에 모범(엄마 생각에는요...)이 될 법하게 성실히 잘 살아 주었습니다. 몇 번의 자소서와 면접을 거쳐 학생회를 2년 동안 잘 이끌어왔고, 교내 각종 대회란 대회에 모두 출전하며 의지를 불태웠습니다. 그리고 여러 차례 좋은 성과로 상도 받았습니다. 수행평가에 강점을 둔 앵글이의 성향 덕분에 수행에서는 거의 올 A를 받았습니다.


학원의 도움 없이(물론 인강은 듣습니다.) 홀로 책상머리에 앉아 씨름하는 앵글이를 보며 내심 자랑스럽고, 한 편으로는 안쓰러움이 가득합니다. 코로나가 덮쳐 학교 생활을 자유롭게 할 수 없었던 2004년생들의 고등학교 생활은 2년 내내 마스크와 동거 동락했습니다. 어쩌면 내년에도 마스크를 쓰고 살게 될 테고, 여전히 거리두기 제한으로 모둠활동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친구들과 삼삼오오 모여 함께 어울려다니는 추억도 없고, 수학여행, 졸업여행, 그 흔한 현장체험학습도 없이 고등학교 생활을 마무리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어떤 이는 대학 생활이 인생에서 가장 추억에 많이 남고, 대학에서 만난 친구가 평생의 친구가 된다고 하지만, 저는 고등학교 시절이 많이 기억에 남고, 중고등학교 때 만난 친구와 35년 우정을 쌓고 있으니 그 시기 또한 소중한 것 같습니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입시'라는 크나큰 장벽 때문에 스트레스의 연속이고, 모두가 같은 심정이므로 고난 가운데 피어난 우정이 애틋할 수밖에 없었던 것 같습니다. 앵글이에게서 그 모든 소중한 추억을 앗아간 코로나도 얄밉지만, 자주 바뀌는 입시 전형으로 갈피를 잡지 못하는 현실이 너무나도 야속합니다.


밤 새 기말고사 시험공부를 마친 앵글이의 책상


고등학교 2학년, 2학기 중간고사가 마쳐지고, 앵글이에게 슬럼프라는 못된 녀석이 찾아왔습니다. 지난 여름 방학부터 2학기 공부를 인강을 들으며 미리 요점정리까지 마쳤었고, 중간고사 기간 내내 밤을 새우며 공부했던 앵글이입니다. 무엇이 문제였을까요? 중간고사에서 롤러코스터를 타고 빠른 속도로 성적이 곤두박질친 앵글이는 어이가 없어 화도 안 난다며 한참의 시간 동안 잠 속으로 빠졌습니다. 시험이 마쳐지고 한 2주쯤 거의 동면 수준으로 잠을 잤던 앵글이가 일어나더니,


엄마. 수시는 망했어. 학종, 교과전형 모두 버리고 정시 준비할게요. 2년의 시간 동안 뭘 한 건가 싶어서 현타가 왔어요. 이럴 줄 알았으면 고등학교 입학을 안 하고 고1 때 검정고시 봐서 패스하고 고2, 고3, 2년 동안 수능을 보는 편이 나았을 뻔했어.

그래도 그동안 했던 것들이 아깝지 않니?

아까워서 화가 났다가 이제는 화도 안 날 지경이야.

살릴 만한 내용이 없어?

거기다 진로까지 바꿨잖아. 바꾸고 나니 그동안 학종 관리한 게 무용지물이 되었어. 아무짝에도 쓸 데가 없다니까?? 그동안 잠 못 자고 열심히 한 보람이 없어졌어. 난 여태 뭘 한걸까?

그래도 내년 6월에 수시 원서 쓸 때 6개 학교에 원서를 넣으라고 할 텐데?

내가 가고 싶은 대학, 가고 싶은 학과는 어차피 떨어질 거 뭐하러 써? 돈만 아깝게... 그리고 성적에 맞춰 아무 대학, 아무 과나 넣을 거면 그동안 한 내 노력이 너무 아깝잖아. 아무 데나 갈 것 같으면 공부는 뭐하러 해? 그리고 원서 넣었다가 아무 데나 덜컥 붙어버리면 수능을 잘 봐도 답이 없잖아. 그러느니 안 넣는 게 낫지.


이리 들어도 저리 들어도 앵글이 말에 반박할 말이 없습니다. 엄마 마음 같아서는 진로상담실에 찾아가 방법을 찾아보는 것이 어떨까 싶지만 앵글이의 마음이 바뀌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설득력입니다.


네 생각은 알겠어. 네 마음이 그렇다면 다 버리고 하루라도 빨리 정시 준비로 방향 전환을 하자. 그럼 이번 기말고사는 좀 설렁설렁 봐도 되겠네?

그럴까? 그냥??

엄마가 그러라고 해도 네 성격에 뭐라고 하게 되겠지. 그렇지만 할 수 있는 만큼 하고 너무 무리하지 마. 어차피 수시 넣을 것 아니면 밤새가며 할 필요는 없지.

이런 게 다른 집이랑 다르구나?

뭐가?

다른 집 대화랑 우리 집 대화가 많이 다르네... 난 엄마가 펄쩍 뛸 줄 알았어.

네 인생이고, 네가 살아보고 결정한 일인데 엄마가 왜 펄쩍 뛰어? 이번에 안되면 내년에 또 기회가 있고, 살아보니 코 앞에 닥친 오늘만 오늘이 아니더라. 해 보는 데까지 해보는 건 필요해. 네가 후회가 남지 않을 만큼 해 보고 안되면 무엇이 문제인지 생각하고 보완해서 또 해보면 돼. 인생 100년에서 1~2년 샛길로 빠졌다고 큰 일은 안 일어나.


올 해 들어 앵글이가 풀어 낸 문제집. 책상 옆에 쌓아 둔 문제집들이 아슬아슬 걸쳐잆습니다.

기말고사 첫날. 월요일 등교 준비 중...


엄마, 1~5까지 중에 어떤 숫자를 제일 좋아해?

엄마는 3

그래? 그럼 오늘 잘 모르는 거 있으면 3으로 찍고 올게.

뭐????? ㅋㅋㅋㅋㅋㅋ 그게 뭐야?

지난 중간고사 때보다 공부를 별로 못했어. 당연히 잘 모르는 게 있겠지. 어쩌겠어. 모르면 찍어야지?

그래서 3으로 찍겠다고??

엄마가 찍은 숫자에 얼마나 행운이 깃들지 내가 실험한 번해볼게.

너도 참 기발하다... 그래... 이왕 찍는 거 잘 찍고 와.

잘 보라고는 안 해?

공부 안 했다며? 공부 안 하고 잘 보면 사기캐지. 열심히 한 아이들 입장에서는 억울할 일이잖아. 조물주도 환영 안 하겠다...ㅋㅋㅋ 시험이라 3교시만 하잖아. 일찍 끝나서 신난다... 그런 마음으로 신나게 보고 일찍 와서 쉬어.

역시... 울 엄마 짱!! 알았어. 금방 올게. 기다려~


앵글이의 등교가 마쳐지고 동글이 아침을 챙겨줍니다. 외팔 인생이라 동글이에게 뚜껑 열어라. 옮겨라. 잔소리가 많아졌지만 동글이는 불평 없이 잘 따라줍니다. 따뜻하고 애교 많은 늦둥이 막내 덕분에 정신없이 아침을 뒤흔들고 간 앵글이에게 소진된 에너지가 충전되는 느낌입니다. 동글이의 등교까지 마쳐지니 집에 개미 소리하나 없이 적막감이 흐릅니다. 생각을 모으기에 참 좋은 시간이 찾아왔습니다.


학년말 시험까지 마쳐지면 아이들은 저마다 흐트러지고, 학교 또한 아무런 대책 없이 아이들을 학교로 불러 모아 수업시수 채우기에 급급합니다. 영화보기, 독서, 시간 강사들의 진로 교육이 진행되기도 하고, 자유시간을 주어 보드게임을 하기도 합니다. 12월~2월까지의 시간은 생각만 해도 아깝게 지나갑니다. 제가 학교를 다니던 35년 전에도, 지금도 여전히 학교의 학년말 풍경은 비슷합니다. 강산이 세 번도 더 바뀐 지금, 이 아까운 시간을 왜 그렇게 보내야 할까요?


이번 주 앵글이의 기말고사가 마쳐지면 앵글이의 교실 풍경도 이와 같을 겁니다. 수업일수와 교과시수를 맞춰야 하기 때문에 학교에 아이들이 불가피하게 등교해야 한다면 그 시간을 알차게 보낼 수 있는 대안이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요? 언제까지 우리 아이들이 탁상공론과 같은 이런 행정에 묻혀 허무하게 시간을 보내는 등교를 해야 하는 걸까요? 아이들을 교실 안에 묶어두고 자유롭게 책 읽기, (교실 천정에 붙어있는 작은 모니터가 보이지도 않는 사각지대에 앉은 아이들은 시청도 불가하고) 보고 싶지도, 궁금하지도 않은 영화 감상을 해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아이들이 떠들거나 복도를 배외할까 봐 하물며 '차라리 책상에 엎드려 자'라고 말씀하시는 선생님도 계십니다.


이 글을 읽는 많은 선생님들께서 하고 싶은 말씀들이 많으실 테지만 학부모의 입장에서는 답답할 노릇입니다. 차라리, 1년 동안 가르치시면서 아이들에게 부족했던 단원을 되짚어주시거나, 역사와 같은 과목이라면 교과서에 나오지는 않지만 아이들이 알면 좋을 일화들을 풀어서 재미있게 설명해 주실 수도 있을 테고, 국어교과의 문학 부분에서 학생들이 읽으면 도움이 될만한 책을 선정해서 함께 읽고 토론을 해도 좋을 것입니다. 훑어 지나가는 음, 미, 체 교과에서 아이들에게 동서양 음악사나, 미술사 등을 들려주고 함께 감상하고 음악을 들려주거나, 좋은 명화 따라 그리기를 해도 그 시간이 유익할 텐데 왜 등교만 하게 하고 교실 앞 뒤 바닥에 앉아 공기놀이, 브루마블 같은 것들을 하다 귀가를 시키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입니다.  


배움이 없는 교실에서의 아이들은 흐트러지고 나태할 수밖에 없습니다. 아이들이 통제가 안되고 안 따라 주기 때문에 못하는 거라는 핑계는 정말 핑계일 뿐입니다. 아이들이 더 잘 압니다. 하나라도 더 잘 가르쳐 주기 위해 애쓰시고 이끌어주시는 선생님 수업에서 아이들은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수업에 집중합니다. 우리 아이들도 등교만 시켜놓고 자율적으로 아무거나 하며 시간을 때우다 하교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 시간을 할애해서 의미 있게 사용하도록 지도해 주신다면 적극적으로 그 수업에 참여할 마음이 준비가 되어있습니다.


학교가 달라져야 합니다. 시험을 위한 공부를 학원에 맡겨두고, 학생들을 수행평가와 학종으로 옭아매어 점수를 주는 이가 선생님이라고 군림 아닌 군림을 하시는 분이 한 분도 안 계셨으면 좋겠습니다. 점수를 주는 사람이 선생님이니 점수를 잘 받고 싶으면 '나를 따르라'라고 이순신 장군처럼 외치고 계십니까? 만약 그렇게 수행평가에 목줄을 쥐고 계신 선생님이 계시다면 그 선생님의 수업은 학습 참여도가 무척 낮을 거라 짐작됩니다. 왜냐하면 우리 아이들은 충분히 자신의 인생에 대해, 진로에 대해 많이 고민하고 본인들의 인생이 꽃피길 간절히 원하는 당사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시험이 마쳐진 후 고3들의 가정학습을 암묵적으로 권유하고 계십니까? 학생들이 학교에 나와 마지막 마무리를 알차고 재미있게, 의미롭게 할 수 있도록 할 방법은 연구해 보셨습니까? 학교를 다니는 것보다 자퇴를 하고 검정고시를 보는 편이 낫다고 고1 때부터 부르짖는 아이들에게 '얼빠진 녀석들'이라고 나무라진 않으셨습니까? 아이들이 만약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면 그 책임은 1차적으로 학교에 있는 것이라 생각됩니다.


변화는 아주 작은 것부터, 나부터 실천해야 달라진다고 믿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학창 시절부터 그렇게 살아왔다고 당연한 것이 아니라 그 방법이 잘못되었고, 그 시절을 겪으며 우리가 모순이라고 여겼던 것들을 바로 세워 40여 년이 지난 오늘은 그때와 달라졌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적어도 10살 동글이가 중고등학교를 다닐 때에는 오늘보다 나은 내일이 있는 학교의 모습이 되었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으로 글을 적어봅니다.


이렇게 글을 쓰고 있는 저도, 비록 유치원 교사이지만, 선생님이 직업이어서 너무나도 행복하고 자랑스러운 교사입니다.


교사로 사는 것이 자랑스러운 로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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