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6월 친구에게서 '브런치' 이야기를 들었다. 그 친구는 이미 브런치 작가로 글을 쓰고 있었고, 브런치에 글을 쓰며출판 계약을 했다고 전해 들었다. 그러면서 브런치 작가 되기가 쉽지 않으니 브런치 작가가 되기 위한 글 모임에 참여해 보는 것도 방법이라 일러주었다.
집으로 돌아와 브런치 앱을 깔고, 검색창에 [브런치 작가 되기]를 눌러보았다. 친절하게 설명이 되어있었다. 직접 작성한 글과 앞으로 어떤 글을 브런치에서 쓸 것인지에 대한 계획서를 작성하면 되는 것 같았다. 이미 블로그에 끄적끄적 일기처럼 적어놓았던 글들이 있어 그중 다섯 편 정도 추려 퇴고를 했다. 그리고 작가 신청서를 작성했다.
떨어질 줄 알았다. 그런데 덜컥 붙었다.그렇게 난 브런치에 입문했다.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소리 없이 브런치에 글을 썼다. 구독자가 하나도 없는 내 글들은 하루에 10회 이하의 조회수가 나왔다. 그래도 매일 썼다. 단 한 명이라도 글을 읽어준다면 내 글을 읽어주는 소중한 독자 한 명을 위해서라도 글을 쓸 이유가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추억 매거진에 담긴 글들은 브런치 작가 신청을 위해 블로그에 모아 둔 일기를 퇴고한 글들이다. 라이킷도 조회수도 별로 없다. 글을 올리고 한 달이 넘도록 구독자는 8명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8명의 구독자가 나의 글을 읽기 위해 글벗이 되어준 것만으로 감사했고 행복했다.
한 달 후 7월 중순 갑자기 조회수 잭팟이 터졌다. 대한민국에서 고2로 살아남는 법은 앵글이의 일상을 적은 글이었다. 하루 조회수가 2~30회 정도에 머물기를 한 달... 알리미가 조회수 1000, 2000을 순식간에 찍어주며 초보 작가의 마음을 심쿵하게 만들었다. 그때는 몰랐다. 알고리즘이 브런치에 입문한 작가들의 사기 증진을 위해 작가 승인 한 두 달 즈음 글을 피드로 보내준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래도 이 글 덕분에 글을 계속 쓸 용기를 얻은 것을 보면 알고리즘 녀석은 엄청 영업능력이 뛰어나다.
조회수가 한 번 오르고 나니 구독자가 40명 정도로 뛰었다. 설렘이 가득해진 내 심장이 나대기 시작했다. 이렇게 기쁠 수가... 내 인생에도 꽃이 피는구나... 감격의 여운이 채 가라앉기 전 무엇이든 해보자는 생각이 스쳤다. 그래서 무모한 도전을 시도했다. 바로 소설 쓰기.
매일 연재로 40일간 아들을 살리는 여자 1부 / 아들을 살리는 여자 2부를 썼다. 졸작이지만 세상 태어나 처음으로 '소설'이라는 장르에 도전해 본 것이라 감회가 새롭다. 브런치에 입문하여 얼마 되지 않아서 쓴 소설이라 많이 읽히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스스로에게 충분한 자극이 되어 주었다. 매일 연재라는 악수를 두며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밤을 새웠다. 소설을 쓰는 법을 배운 것이 아니라서 그간 읽었던 독서량에 의지해 내 맘대로 소설을 썼다. 소설을 7회까지 써 놓고 나서 그제야 인물들의 이름이 생겼고, 회사명, 학교명 등에도 인물의 성격에 맞게 이름을 붙이는 재미가 있었다. 그리고, 매일 연재를 한 번도 미루거나 건너 뜀 없이 이뤄냈다.
10개월 동안 태중의 아이를 품어내며 아이가 자라는 만큼 엄마도 아이 맞을 준비를 하며 자라듯이 나도 브런치 10개월 동안 성장했다. 쓰고 싶은 소재가 생길 때마다 매거진을 만들었더니 18개가 되었다. 브런치 북을 만들었다 없앴다 하며 작품 방을 들었다 놨다 몸살을 치른 후 4개의 브런치 북도 빛을 내고 있다. 많은 분들이 사랑을 주셨고, 댓글 하나하나 눈시울을 붉어질 만큼 정성스레 글을 써 주시는 글벗님들 덕분에 살아있음에 감사하게 되었다.
브런치를 처음 시작할 때 나는 마음이 아픈 사람이었다. 그래서 초반의 글들은 내용은 해피앤딩이지만 글의 흐름은 어두웠다. 마음이 슬픈데 글을 밝게 쓰려니 힘들었고 아팠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글을 쓰며 마음이 건강해졌다. 응원의 댓글이 살아갈 이유를 만들어주었다. 잘한다, 잘한다 칭찬해 주시고, 글을 쓰면 피드로 올라가며 많은 조회수와 구독자가 늘어났다. 내게는 기적 같은 일이었다. 그래서 나는 매일 글쓰기에 진심을 다한다. 나를 살렸던 글이 이제 너도 살리는 글이 되었으면 바람 때문이다.
일상을 살아가며 곳곳에 펼쳐진 글감들이 참 많다. 내 곁에 나래비로 늘어져있는 빨래건조대의 옷들도 글감이 되고, 오늘은 재택근무라며 컴퓨터를 두드리다 갑자기 벌떡 일어나 잠을 청하러 침대 속으로 기어들어가는 남편도 글감이 된다. 하나 가득 쌓인 설거지를 11살 아들의 고사리 손으로 씻어 정리한 건조대를 보며 뭉클해진 감정도 글감이고, 현관에서 '다녀오겠습니다!'를 외치는 고3 딸아이가 현관을 박차는 소리를 들으면 어김없이 7시 23분인 것도 신기한 글감이 된다.
매일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내 곁에서 펼쳐지는 사소한 일상도 보석같이 변했다. 어제는 앵글이가
"엄마, 우리 가족들의 사고가 평범하지 않아?"
"왜?"
"음... 다른 집들보다 친한데 간섭하지 않고, 다른 집에서는 제 할 말 다하면 버릇없다고 야단을 맞는데 우리 집에서는 할 말 다하며 살라고 해. 나는 남들도 다 우리 집처럼 사는 줄 알았어."
글을 쓰지 않았으면 나도 꼰대 엄마가 되었을까? 계속해서 생각을 다듬고,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보는 연습을 거듭해본다. 적어도 타인이 내 글을 읽도록 공개된 곳에 글을 쓰면서 삶과 글이 이질화되는 작가는 되고 싶지 않다. 나의 삶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려면 진짜 나의 삶도 글과 같아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나는 오늘도 성실하게 보이는 그대로 글을 쓴다. 이것이 브런치 10개월 동안 내가 배운 출산의 기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