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글이가 눈을 똥그랗게 뜨며 의아한 표정으로 대거리를 했다. 곁에서 유튜브 시청을 하던 남편도,
"그냥 지금처럼 살아. 하려면 진작 했어야지..."
"연기가 늦은 게 어딨어. 드라마 한 편에 아기부터 노인까지 다 나오잖아."
"엄마는 연기 배워서 어떤 역할을 하고 싶은데?"
"시장 바닥에 앉아서 수다 떠는 아줌마나, 드센 욕쟁이 식당 주인 같은 거..."
"레알?? 정말이야? 왜 그딴 게 하고 싶어?"
"살면서 그렇게 해 볼 일이 없잖아. 연기라면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볼 수도 있으니까..."
"엄마가 그걸 한다고? 엄마 욕 할 줄 알아?"
"욕?...... 잘 못하지."
"엄마는 잘 못하는 게 아니라 전혀 못하잖아. 연습 삼아 한 번 해보든가..."
"그거 좋네. 당신이 욕하는 거 한 번 들어 보고 재능 있나 봐줄게."
".........."
"거봐. 엄마가 어떻게 욕쟁이 시장 아줌마 역할을 한다고..."
"그러니까 학원에 다닌다고 했잖아."
해프닝으로 끝나게 된 대화였다. 난 진심이었는데...
동백꽃 필무렵, 한번 다녀왔습니다의 한 장면
드라마를 보면서 주인공이 되고 싶다는 생각은 안 해봤다. 내 나이가 반백살이 다 되어서도, 김혜수급으로 미인이 아니라서도 아니다. 그저 사람 냄새 폴폴 나는 아줌마 역할을 하는 감초 배우들을 볼 때마다 그 맛깔난 연기에 감탄을 하게 되어서일 뿐... 왜 뜬금없이 연기자가 되어보고 싶은지는 나도 모르겠다. 틀에 박힌듯한 삶에서 벗어나 전혀 다른 삶을 살아보는 재미도 있을 것 같고, 생계유지가 아니라 정말 즐겁게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진심으로 욕쟁이 아줌마가 되어보고 싶다. 모두가 두 손 두 발 들고 만류하지만 내 마음은 그렇다.
남편과 함께 마실을 다녀오다가 앞선 차량이 무리하게 3차선에서 1차선으로 차선 변경을 했다. 정말 간발의 차로 부딪치지는 않았지만 능숙한 남편이 아닌 내가 운전을 했다면 이건 완전 사고각이었다. 나도 모르게,
"저런 저런... 운전을 왜 저따구로해? 쫓아가서 한 대 쥐어박고 싶네."
나도 모르게 된소리가 절로 나왔다.
"당신도 욕을 하는구나?"
"이게 무슨 욕이야... 저 사람이 운전을 그지같이 하니까 그냥 한 소리 하는 거지."
"그게 욕이야. ㅋㅋㅋㅋㅋㅋ"
"그래? 이게 욕이야? ㅎㅎㅎㅎㅎ"
내가 할 수 있는 최대의 욕이 이 정도다. 찰지게 감칠맛 나는 욕을 해본 적이 없다. 살아온 환경 탓인지 직업 탓인지는 알 수 없다. 욕할 일 없이 살아온 평탄한 삶을 살아서 그렇다고 이야기할지도 모르겠지만 뒤집어 까서 들여다보면 산전수전 공중전 없는 사람 하나 없다. 나도 그렇다. 그저 남에게 피해 안 주고 적당한 선에서 참고, 인간의 힘으로 안 되는 일에서는 최대한 빨리 털어내며 잊는 방법을 선택할 뿐, 속상하고 화나는 일이 생겼을 때 나도 모르게 욕이 튀어나오는 건 니나 내나 다 비슷비슷하다.
반백살에 연기학원에 다니면 푼수 없다고 하려나? 원래는 작년부터 다니고 싶었다.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에서 시장 여인 3인방을 보면서 참 맛깔스럽다는 생각이 들었고 정말 속말을 겉말로 툭툭 내뱉으며 꼴리는 대로 살면 최소 암은 안 걸리겠다 싶은 생각에 부럽기까지 했다. 그때부터였나 보다. 단역도 상관없으니 투박한 시골 아줌니나, 시장에서 점포 아닌 노점에 좌판 깔고 억세게 살아가는 아지매가 되어보고픈 마음이 들었던 것 말이다.
"당신은 가끔... 정말 뜬금없이 사람을 당황시켜. 은근 사고뭉치에다가... 진짜 엉뚱하다니까?"
남편의 말이다. '뭐... 덕분에 무료하진 않지...'라며 한 마디 건네기도 한다. 내가 생각해도 범상치는 않은 듯하다. 가끔씩 출몰하는 똘끼로 충만해진 나도 모를 나 때문에 당황스러울 때가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뭐 가끔 딴 사람이 되어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 다들 하면서 사는 거 아닌가?? 그래서 나는 현실의 나를 벗어난 내가 아닌 나를 꿈꿔본다. 뭐 꿈은 누구나 꿀 수 있고, 꿈에 꿈 값은 없으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