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 불꽃 축제를 좋아하는 남편과 부산 세계 불꽃 축제 관람을 위해 이른 아침 KTX에 올랐습니다. 아침 첫 차를 타고 부산역에 도착한 후 대중교통으로 광안리 해변에 도착하니 오전 10시 반, 불꽃놀이가 벌어질 광안대교가 마주 보이는 자리에 준비해 간 일회용 돗자리를 각각 하나씩 깔고 앉았습니다. 시간의 흐름 따라 사람들이 하나둘씩 모여들고 어느새 해변가는 돗자리로 가득 찼죠. 불꽃놀이는 저녁 8시부터 시작되는데 좋은 자리를 맡기 위한 사람들의 발걸음으로 광안해수욕장은 모래 알 만큼 많은 사람으로 가득 찼습니다.
오전 10시부터 저녁 8시까지 10시간 가까운 자리다툼으로 신경전이 오갑니다. 어느 한 사람이라도 자리를 뜨면 이내 그 자리가 사라져 버리고, 볼일을 보러 나간 사람이 자기 자리를 찾지 못하는 경우도 생겨납니다. 배고픈 건 참을 수 있지만, 생리현상은 참기 어렵습니다. 맡아둔 자리에 짐을 가득 놓고, 남편과 교대로 화장실을 다녀와야 하는 상황이죠. 남편은 얼마 지나지 않아 이내 제자리로 돌아왔습니다. 이제 제 차례가 되었죠. 화장실을 찾은 제 앞에 길게 드리운 줄은 어디부터 시작이고, 어디까지가 끝인지 알 수 없을 만큼 길게 늘어서 있습니다. 결국 볼일을 보고 나오기까지 한 시간도 더 걸렸습니다. 급한 사람은 조금씩 말려가며 기다려야 하는 진풍경이 벌어지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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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진 풍경은 축제 장소 공중화장실 앞에서만 벌어지는 일이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다중이용시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죠. 고속도로 휴게실, 극장, 놀이공원, 한강 둔치 등에서도 이와 같은 모습은 쉽사리 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이럴 때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남편에게 푸념 섞인 볼멘소리를 늘어놓습니다.
"왜 이렇게 늦어?"
"그러게. 왜 이렇게 늦을까?"
"화장실에 사람이 많아?"
"사람이 많지 않아도 여자들은 오래 걸려."
"왜?"
"도시계획을 하는 사람들은 당최 생각을 안 하나 봐. 구조적인 문제를 생각하고 화장실을 지어야지 매뉴얼 대로만 지으니까 항상 같은 상황이 반복되잖아."
"무슨 소리야?"
"남자들은 소변기, 대변기가 따로 있잖아. 옷을 입고 벗기도 간편하고, 시간도 짧게 걸리지. 그런데 여성의 입장에서 생각해봐. 문을 열고 닫고, 옷을 벗고 입고, 다시 문을 열고 닫고 해야 하는 상황을 고려할 때 시간이 많이 걸리겠지? 그러면 남, 녀 화장실을 설계할 때 그 시간 동선까지 고려해서 여자 화장실을 남자 화장실에 비해 넓게 만들고, 칸도 많이 넣어야 되지 않을까?"
"그러네. 당신 말이 맞아."
"그냥 맞장구치지 말고, 생각을 해 봐야지. 이런 문제는 비단 화장실뿐 아니라 여러 곳에 적용돼. 목욕탕도 여성들은 아이들까지 데리고 다니는 경우가 많으니 더 커야 하고, 아파트 커뮤니티에도 여자 샤워실이 더 커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남성용과비슷하거나 남성용이 더 큰 게 도무지 이해가 안 돼서 하는 말이야."
"그런 생각까지는 안 해봤네. 내가 불편한 것이 아니라서..."
"전문가의 생각도 이런데 건축에 대한 지식과 관심이 없는 사람들은 어떻겠어. 함께 나들이를 나왔다가 한참이 지나도 오지 않는 애인과 아내를 기다리며 짜증이 나겠지? 다투지 않아도 될 문제로 마음이 상할 수도 있을 거야. 설계를 할 때 신체적 특징과 동선을 고려해서 건축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
"갑자기 왜 내가 야단맞는 분위기지? 내가 다 미안해... ㅎㅎ"
혹시 여러분은 이러한 부분에 대해 생각해 보셨나요?
남, 녀 상관없이 서로 불편한 일입니다. 공정하다는 것은 똑같이 하는 것이 아니라, 누구도 불편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아닐까요? 공공시설은 한 번 지어지면 몇십 년 동안 유지 보수됩니다. 고장이 나면 수리는 하겠지만 재건축되기는 어렵겠죠. 세금으로 지어지는 공공시설을 만들 때 계획 단계에서부터 남, 여 모두 참여하게 된다면 조금 더 실용적이고 편리한 공간이 만들어지지 않을까요? 일상에서 불편한 것들을 그 순간 투덜대고 말 것이 아니라 함께 건의하고 수정해서 앞으로 지어질 공간에서는 좀 더 많은 사람들이 불편을 겪지 않도록 시정되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