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좋아한다. 늘 외로웠다. 관심받고 싶었다. 미움이 두려웠다. 그래서 노력했다. 때로는 불필요한 애씀 때문에 상처받을 때도 있었다. 쉬운 사람이 되고 싶진 않았다. 함부로 해도 될 사람이 아니라 소중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이용당하고 있다고 느낄 때도 있었다. 알면서도 잘 보이려 나를 갈아 넣었다. 목적과 의도가 있던 것은 아니다. 그저 사랑이 고팠을 뿐...
아무도 없는 집에 홀로 들어서면 고요한 침묵이 나를 에워쌌다. 익숙해질 법도 한데 도무지 나아지지 않았다. 그래서 책가방을 던져놓고 밖으로 나갔다. 동네 놀이터에 가면 누군들 있겠지 생각하며 발걸음을 옮겨본다. 누구든 상관없었다. 친구가 아니어도 괜찮다. 아무도 없는 것만 아니라면...
국민학교를 파하면 학교 옆 어린이도서관으로 향했다. 언제나 사람이 많은 곳, 좋아하는 책이 가득한 곳, 혼자 가도 누구도 ‘왜 혼자인지’ 묻지 않는 곳이 그곳이다. 입구에 들어서면 A4 반 절짜리 종이를 나눠주었다. 학교, 학년, 이름, 그날 읽은 도서 목록 5권을 적을 수 있는 표가 그려진 종이를 받아 들고 사람들의 왕래가 잦은 가운데 자리를 부러 택해 앉았다. 오후 5시가 되면 도서관 폐장 시간이다. 그때까지 그곳은 나의 아지트가 되어주었다. 동절기에는 5시부터 어스름 해가 저물어가지만 하절기 5시는 도서관 밖을 나서도 대낮 같다. 집으로 바로 가도 좋을 시간이지만 부러 먼 길을 돌고 돌아 시간을 때웠다. 혼자 있는 시간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
중학교 입학할 때 학군에서 멀리 떨어진 신설 학교에 배정되었다. 운도 참 없지... 이쯤 되면 외로움을 찾아다니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다. 같은 학교에서 배정된 아이들은 삼삼오오 모여 수다 삼매경이다. 점심시간이 되면 이반 저 반에서 도시락을 들고 몰려들었다. 나는 여전히 혼자다. 중학생쯤 되니 새로이 누군가를 사귀려 노력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그들의 틈에 끼려 애쓸 용기도 없었다. 매일 생각했다. 사람들과 친해질 방법을... 시간이 흐르고 네 명의 친구를 사귀었다. 3년 내내 같이 다녔고, 학교를 파하면 우리 집으로 몰려와 매일 함께했다. 함께 공부하자며 모였지만 떡볶이, 라면, 볶음밥 등을 만들어 먹고 월간 만화책 보물섬, 챔프, 윙크 등을 보며 놀았다. 나의 중학교 친구는 네 명이 전부다.
고등학교마저 홀로 배정되었다. 이쯤 되면 외로움은 운명이다. 0교시 수업부터 야간 자율학습까지 학교에서만 15시간 머물게 된다. 친구들은 도시락을 두 개씩 들고 다녔다. 나는 네 개다. 하나는 아이들과 나눠 먹을 아침용이고 다른 하나는 간식이다. 0교시를 마친 후 아침으로 들고 간 볶음밥을 아이들과 나눠 먹었다. 2교시 끝 종이 울리면 챙겨 간 새우깡, 맛동산, 짱구 등을 꺼내어 넓게 펼쳤다. 구름 떼로 몰려든 아이들이 하나둘씩 집어가면 1분도 채 지나기 전에 바닥이 드러나고 나는 한 개도 맛보지 못할 때가 많았다. 그래도 좋았다. 눈빛을 반짝이며 내가 챙겨가는 간식을 기다리는 아이들을 위해 매일 간식을 챙겼다. 새우깡 한 봉에 불과하지만, 가격으로 환산하면 꽤 큰돈이다. 어찌 보면 호구 놀이일 수 있던 간식시간이 좋았다. 아이들의 기다림이 내가 아닌 간식이어도 괜찮았다. 게 떼처럼 몰려들며 연신 ‘나도 먹어도 돼?’를 외치는 그 소리가 좋았다.
사람들은 내게 실속이 없다고 했다. 퍼주고 퍼주길 좋아하는 마음 저변에 깔린 외로움은 좀체 나아질 것 같지 않았다. 주변에 맴도는 이들이 어떤 마음으로 곁에 머무는지 궁금해하지 않았다. 어쩌면 그것은 두려움이다.
흐지부지 흩어질 씀새가 좋다. 실속 없이 보여도 늘 베풀며 사는 사람으로 인상이 남아서 좋고, 낯나게 쓸 수 있는 주머니 사정이 있어 좋다. 남들은 실속 없다 얘기하고 나는 그것을 인정이라고 듣는다. 인정머리 없는 세상에서 베푸는 삶을 사는 내가 마음에 쏙 든다. 사람들을 만나 커피 한 잔 호기롭게 사줄 수 있는 여유 있음이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