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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운 Dec 05. 2022

나는 가끔 '나 때는'이라고 말한다.

보글보글 12월 1주 차 "라떼와 꼰대"

청소년이었을 때의 나는 '돈을 많이 버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근거 없는 자신감도 있었다. '뭘 하든 돈을 못 버랴' 싶었던 내가 '유아교육'을 선택하게 된 데에는 엄마의 꿈이 작용되어서다. 학문 자체는 나의 흥미를 끌기에 충분했다. 손재주가 많았던 내게 안성맞춤이었다. 대학에 입학하던 해 엄마는 덜컥 '어린이집'부터 개원했다. 엄마의 선택이 아니었다면 졸업 후 현장에 들어서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학교와 일을 병행하느라 캠퍼스의 낭만, 친구들과의 교류 따위는 없었다. 수업을 마치면 어린이집에 와 일을 해야 했다. 좋고 싫고 생각할 겨늘도 없었다. 바빴고, 미숙했고, 잘하고 싶었다.


김영삼 정부가 들어선 후 조건에 부합된 전국 60개소의 어린이집 운영자들에게 '조건부 인가 조치로 원장 자격을 부여'하는 연수가 시행되었다. 공약에 따라 어린이집 개소수를 늘리기에 '원장' 자격을 갖춘 자들의 인원수는 현저히 부족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는 21살에 대한민국 1호, 최연소로 어린이집 시설장이 되었다.


1993년, 어린이집이라는 명칭으로 영유아 교육기관이 들어섰지만 사람들의 인식은 부족했고, '어린이집'이라는 이름을 들으며 물음표가 끊임없이 그려졌다. 그 후 2년이 흐른 1995년에 개원했지만 인식 부족은 여전했다. 정권이 바뀌고 매스컴에서 끊임없이 어린이집에 대한 보도가 흘러나와도 관심 있는 몇몇 사람 외에는 뭐하는 곳인지 조차 알지 못했다.


어린이집을 개원하고 제일 많이 듣는 질문이


"어린이집이 뭐하는 곳이에요?"

"놀이방인가요?"

"탁아소예요?"


라는 말이다. 질문 모두 아이들을 보육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지만 왠지 그 말이 싫었다. 21살의 어린 원장에게 '10년 이내에 어린이집이 유치원과 같은, 아니 그 이상의 교육 기관이라는 인식을 반드시 심어주고 말리라'는 목표를 세우게 한 질문들이었다. 이후 나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에 매진했다. 돈을 많이 벌겠다는 꿈에서 제대로 된 교육기관을 만들겠다는 꿈으로 바뀐 것이다. 내가 운영하는 기관뿐 아니라 시, 군, 구 연합회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렇게 바쁘게 잠잘 시간을 쪼개어가며 어린이집과 함께 했다.


투자자 엄마를 이사장으로 두고 교육기관을 운영했던 나엄마와의 끊임없는 마찰로 의견이 분분했다. 아무리 비영리 사업체라고 해도 이윤을 남겨야 한다는 엄마와, 교육기관은 영리 사업이 아니므로 오롯이 교육을 목적으로 한 지출과 투자여야 한다는 나의 갈등은 해를 거듭할수록 커져만 갔다. 다행히 건강한 기관을 운영하려던 진심이 통했고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기관으로 해마다 성장했다.


새벽 4시면 일어나 출근을 했다. 엄마가 간호사인 남매는 5시 20분에 등원을 했다. 엄마 등에 업혀 들어선 아이들을 이부자리에 눕혀 재우고 원아들의 간식과 점심준비를 했다. 인건비를 줄이기 위한 선택이었다. 밥, 국, 반찬 세 가지와 두 차례 간식 준비까지 마치면 동이 트고, 어느새 아이들의 등원 시간이 되었다. 오전 차량 안전교사로 동네 세 바퀴를 돌고 돌아와 내게 맡겨진 우리 반 아이들 수업을 하고 종일반까지 하원 시키면 저녁 7시가 되었다. 이후부터 행정업무와 수업 준비를 하고 나면 12시를 넘기는 것은 예삿일이었다. 그렇게 쉼 없이 10년을 달렸다.


20평 정도의 규모, 8명의 원아로 시작된 어린이집은 5년 만에 건물 두 채, 72명의 인가정원을 갖춘 기관으로 성장했다. 하루도 쉬지 않고 달려온 결과였다.


20대를 생각하면 일을 했고, 일을 했고, 일을 했다고만 말할 수 있겠다. 불행했느냐고 묻는다면 그건 아니다. 행불행을 생각할 겨늘 없이 바빴고 그만큼의 성과를 이뤄냈다. 남들이 보기에는 성공해 보일지도 모른다. 단기간에 성장했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하루를 25시간처럼, 일 년을 366일처럼 일했던 노력의 결과였기에, 어쩌면 그들의 10년과 같은 5년을 치열하게 보낸 결과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지나고 나니 아쉬움도 있다. 가장 자유롭고, 꿈이 많을 20대에 일만 한 셈이라 억울하기까지 하다. 10년을 하루도 놀지 못했다. 친구를 만나지도, 20대의 여흥도 없었다. 그저 일에 묻혀 매일 성과를 내고, 직원들 급여와 그 달 운영비에 쫓기며 살아내기에도 벅찼던 나의 20대가 이제와 서운하고 서럽게도 느껴진다.


가끔은 '껄, 껄, 껄' 후회도 한다.

조금 실수해도 괜찮고, 방탕해도 괜찮았을 그때, 내가 살아낸 49년 중 가장 치열한 10년을 살았다. 눈에 보이는 결과로만 마주한다면 분명 성공이라는 것을 맛본 것이 맞다. 하지만, 보통의 사람들이 즐기고 누렸을 것을 아무것도 해보지 못했다고 생각하면 못내 섭섭하고 아쉽다.


그래도 다시 그때로 돌아가 그 현실에 놓인다면 아마도 나는, 그때와 똑같이 일할 것이다. 가끔 아이들이 묻는다.


"과거로 되돌아갈 수 있다면 언제로 가고 싶어?"


잠시의 고민도 없이 답한다.


"아니? 나는 지금이 제일 좋아. 아무 때로도 안 갈 거야."


너무 열심히 살았나 보다. 후회도 여한도 없을 만큼 말이다. 그때의 나도, 지금의 나도 그냥 이대로가 더할 나위 없이 딱 좋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그냥 지금 이대로 말이다.


보글보글 12월 1주 차 "라떼와 꼰대"


2022년을 살아가고 있는 내 아이들에게 '나 때는' 이야기를 가끔 한다.

그 시절을 살아 낸 (지금의 45세~60세 정도의) 사람들은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낀세대로 위에 굽히고, 아래에 치이는 젊은 날을 보냈다.


L사의 연구원인 동갑내기 친구는, 시대의 흐름 따라 직함이 사라지고 'OO님' , 'OO프로'로 불리는 세상에서 윗분들에게는 깍듯이 예를 갖추고, 후배들에게는 'OO님'으로 부르며 살아간다. 변화되어가는 세상을 살아내며 여전히 윗분을 예전처럼 섬기지만, 후배들에게 예우받기 바랐다가는 바로 '꼰대'가 되어버리는 세상의 중심에 나와 내 또래들이 있고, 그들은 지금의 대한민국을 이끄는 중심축으로 24시간을 25시간처럼 살아내고 있다.


교사였던 나는 119에 실려갈 정도가 아니면 무조건 출근을 해서 자리를 지켜냈다. 지금 시각으로 바라보면 미련 곰탱이가 따로 없다. 하지만 그 시절을 살아 낸 많은 기성세대가 그렇게 살았다. 시각에 따라 어느 부분은 본받을 만하고, 어느 부분은 지나치게 복종하며 나를 없애는 방식의 삶을 살았던 것 같다.


어린이집 현장에 들어선 후 내가 보낸 첫 졸업생은 1991년 출생자들이었다. 그들이 교사로 들어올 때 감회가 새로웠고, 그들이 학부모가 될 때쯤 현장을 떠났다.


유난히 수작업이 많은 유치원 현장에서 디지털 세대와의 협업은 참 어려웠다. 세상이 좋아져도 아이들은 교사가 직접 제작한 투박하고 삐뚤빼뚤한 교구를 더 좋아한다. 어쩌면 디지털화된 세상이라 그런지도 모르겠다. 직접 그리기보다 출력해서 오리고 자른 인쇄물에 더 익숙한 세대에게 내 방식을 전달하면 여지없이 꼰대가 되어버린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에 첫 발을 딛는 후배들에게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을 연구하는 교사'가 되어주길 권하고 싶다.


내가 살아온 방식을 미래 세대에게 강요하면 '꼰대'가 되는 것을 알지만 계속해서 '라떼' 이야기를 하게 된다. 살아봐야 알 수 있는 것을 살기 전에 알려주고픈 마음이 드는 건, 좀 더 편안한 길로 걸었으면 싶은 바람 때문이다. 실패 또한 경험하고 극복해봐야 성공의 가치를 알 수 있음에도 알려주고 싶은 건, 먼저 살아 낸 선배로서 나도 걷던 그 길을 수월하게 걸었으면 하는 마음 때문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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