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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운 Nov 07. 2022

죽음이 두렵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보글보글 10월 5주 [생전 유언장]

남편과 나는 많이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자신을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었고,

'나를 가장 하위에 두는' 내 시선에서 그의 모습은 멋졌다.

그런 그와 함께 살며

조금은 섭섭하고,

때로는 화가 날 때도 있었다.

오롯이 내 편 같다가도,

가끔은 그에게 내가 '가족'이 아닌 것 같을 때도 있었다.

'자신을 최우선'으로 두는 그에게

'과연 나는 가족일까?' 의문이 생겼을 즈음

크게 다퉜던 기억이 난다.


"언제쯤 내가 당신에게, 언제쯤 당신이 나와, 가족이 되나요?"


나에게 '가족이 된다'는 것은 어떤 의미였을까?


[생전 유언장]을 주제로 맞은 2주 간,

많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잡생각이 가득했고,

멍 때리는 시간이 잦아졌다.

그러다 우연히 장기 및 조직 기증으로 100명의 사람에게 새 생명을 주고 떠난 이에 대한 뉴스 기사를 보았다.



기사를 읽고 남편에게,


"장기 및 조직 기증으로 100명의 사람에게 새 생명을 주고 떠난 이에 대한 기사가 올라왔네. 나도 기증에 동의했는데 사후 많은 사람들에게 새 생명을 주고 떠났으면 좋겠다..."


가만히 듣고 있던 남편은,


"죽음이 두렵지 않도록 살다 가면 돼. 내가 열심히 사는 이유이기도 하고... 오늘을 열심히 살면 죽음이 다가와도 두렵지 않지 않을까?"


나는 20년 넘게 알아 온 남편과 내가 다른 사람인 줄 알았다. 그런데 중요한 어느 지점에서 그와 내가 닮아 그가 좋았나 보다. 그와 내가 오늘을 열심히 살아내고 있는 이유 말이다...


보글보글 10월 5주 [생전 유언장]


나의 죽음을 미리 준비하지 못하고 덜컥 떠난다면,

충분히 슬퍼하고 애도하며 마음의 짐을 덜어내길 바랍니다.

이별은 언제 어떻게 찾아오든 슬픈 일이니까요.


나의 죽음을 미리 준비하게 된다면

생전에 그리운 이들을 찾아 인사하고 떠날 테지만,

혹시 그러지 못한다면

나의 연락처에서

평소 내가 그리워했던 이들을 찾아 문자를 남겨주세요.


"장례식은 없습니다. 계신 그 자리에서 조금만 슬퍼해주세요. 지금보다 시간이 훌쩍 지난 어느 날, 함께 웃으며 추억할 수 있을 때 지나치듯 만나 인사할 수 있을 거예요. 지금은 나의 가족들이 충분히 애도할 수 있도록 멀리서 기도만 부탁드립니다."


나의 시신은 장기 및 조직 기증으로, 기증이 끝나면 시신 기증이 되어 6개월쯤 뒤에 가족들에게 가루가 되어 인도될 거예요. 그러니 시신이 없다고 아파하지 마세요. 나로 인해 많은 이들이 새 생명을 얻을 테고, 의술이 발전되는 데 사용된다면 기쁠 겁니다. 떠나고 없는 이의 형체가 있는 없든 당신의 마음속에 남아있다는 것은 변치 않을 거예요.


내가 떠나고 난 뒤 생각보다 처리해야 할 일들이 많을 거예요. 한 사람이 오고 가는 것이 그리 수월한 일은 아닌가 봅니다. 남겨진 당신이 나의 가족이어서, 내게도 충분히 사랑을 준 당신이 있어서 정말 감사했습니다. 떠난 후 당신에게 아픔만 남긴 것이 아니기를 바랍니다. 떠난 나를 떠올리며 하나씩 정리하면서 당신의 마음속 깊은 슬픔과 설움까지 덜어낼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그러니 당신은 천천히 내게로 오세요. 내가 살아낸 세상보다 조금 더 즐겁고 멋지게 살아낸 후에, 미련도 여한도 없이 행복한 삶을 살아냈노라 전할 수 있을 만큼 누리고 오세요. 그것이 당신을 기다리는 내게도 기쁨이 될 겁니다.


당신을 두고 먼저 갔다고 미안해하지 않을 거예요. 하지만 나와 함께해 준 숱한 시간 속에 당신이 있어 참으로 좋았다고, 감사하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많이 고맙고 사랑했습니다. 부디 평안하세요.


2063년의 어느 날 [당신들의 '나' 드림]


6명의 고정 작가와 객원 작가의 참여로 보석 같고 보배로운 글을 써 내려갈 '보글보글'은 함께 쓰는 매거진입니다.

보글보글과 함께하고픈 재미난 주제가 있으시면 언제든지 댓글로 제안해주세요.

참여를 원하시는 작가님들은 매주 일요일 주제가 나간 이후, 댓글로 [제안] 해 주시면 됩니다.


덧.

방문객      - 정현종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부서지기 쉬운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이 오는 것이다 ㅡ 그 갈피를
아마 바람은 더듬어볼 수 있을
마음,
내 마음이 그런 바람을 흉내 낸다면
필경 환대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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