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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운 Nov 21. 2022

제가 돈 버는 이유는 밥을 사주고 싶어서예요.

보글보글 11월 셋째 주 "인생의 터닝포인트"

2.78kg의 작은 아이가 품 안에 들어왔습니다. 당시에도 조리원은 있었지만 사는 게 퍽퍽하다 보니 2박 3일 후 집으로 돌아와 홀로 아이를 돌봐야 했죠. 독박 육아, 그 두려움은 -첫 아이를 낳아 키우고 있는(키웠던) 많은 엄마들만 느낄 수 있는- 막막함 그 자체였습니다. 너무나도 작디작은 아기는 손끝 하나 대기도 무서웠어요. 가늘고 약해서 기저귀 갈다가 뼈가 부러지는 건 아닐까 걱정이 될 정도로 연약한 아기를 (병원에서 배운 대로) 씻기고 먹이고 재웠습니다.


아이가 태어나 일주일쯤 되었을 때,

아기 가슴을 한 팔에 기대어 놓고 등을 닦아주는 순간 아기가 축 늘어지며 푸르스름하게 변해버렸죠. 순간 너무 놀라 아기를 눕히고 흉부압박을 시작했어요. 이성을 잃은 채 울고 불며 몇 분이나 시간을 보냈을까요? 조금씩 혈색이 돌아오며 아기가 숨을 '후~'하고 내쉬며 '우아앙~'울어버렸죠. 아기가 살아났어요. 무슨 정신인지도 모를 두려움에 털푸덕 주저앉아 서럽게 울어 버렸습니다.


"아기가, 살아났구나..."


그 순간의 기억은 평생의 트라우마가 되었습니다. 갸녀렸던 아기는 열아홉의 앵글이가 되었고, 정신없고 미숙했던 저는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습니다.


앵글이 13개월 되었을 때 

감기가 심해져 이대목동병원에 입원을 했었어요. 젖을 떼기 전임에도 장염이 심해 수유를 중단하고 수액 공급만 가능했었죠. 하루하루 증상이 심해져 장염에서 폐렴이 되었고, 한 달가량 입원 치료를 받았습니다. 후에 알고 보니 '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질환이었어요. 다행히 앵글이는 후유증이 남지 않아 피해 소송에 함께 참여하지 않았지만 얕은 감기만 와도 고열과 폐렴으로 이어져 잦은 입원 치료를 받게 되었습니다.  


앵글이가 2살이 갓 되었을 때 

긴 머리를 올리느라 U자형 비녀를 사용했었죠. 아이에게 놀잇감을 주고 주방에서 일을 하는데 갑자기 정전이 되었어요. 깜짝 놀라 아이를 살피며 주위를 둘러보는 그 0.3초의 짧은 순간, 자지러지게 울며 까무룩 넘어가는 앵글이가 눈에 들어왔어요. 영문을 몰라 아이에게 다가가니 U자형 비녀를 쥔 앵글이의 엄지 손가락이 까맣게 변해있는 것이 보였죠. 비녀를 콘센트에 꽂은 거예요. 다행히 두꺼비집이 저절로 떨어져 큰 사고 없이 손가락만 태운 채 지나갔어요. 병원에 갔더니 다행히 전류가 손끝에서 발끝까지 온몸을 관통하고 지나가 체내에 머물지 않았기에 아기는 건강하다고 했습니다. 앵글이의 기억력이 좋은 것은 전기 때문일지도 모른다며 지나가는 말을 건네기도 했지만, 아기를 키우는 일은 보통일이 아니라는 걸 매일매일 경험하게 되는 순간들입니다.


앵글이가 3살이 되었을 때

버스에서 잠든 앵글이를 업고 지하철을 타기 위해 구로역 계단을 올라 매표소로 가는데 어느 청년 하나가 시선을 뒤로 둔 채 전력 질주하며 제 쪽으로 달려들었어요. 청년의 무게가 잔뜩 실린 채 부딪쳐 등 뒤에 업혀 잠이 든 아기는 10m 이상 멀리 날아가 바닥에 떨어졌고, 저 또한 뒤로 널브러져 잠시 의식을 잃는 사고가 있었습니다. 정신이 들면서 멀리 날아간 아기를 시선으로 찾는데 저 멀리 행인 한 분이 울고 있는 아기를 안고 제 곁으로 다가오셨습니다. 아기 울음소리에 안심이 되면서도 눈으로는 다친 곳이 없는지 훑는데 아기 머리가 부풀어 오르는 게 보였어요. 불쑥 불쑥 불쑥, 짧은 순간 아기 머리가 2배로 커지는 것을 보며


"우리 아기 죽는 거예요? 우리 아기 어떡해요..."


미친 X 마냥 울부짖는데 119가 왔어요. 깨었다 잃었다 중간중간 정신이 오락가락하다 보니 구로 고려대병원 응급실이었죠.


"선생님, 우리 아기 죽는 건가요? 우리 아기 괜찮아요?" 


이성을 잃은 아이 엄마에게 의사 선생님이 해 주실 수 있는 처치는 재우는 것뿐이었나 봅니다. 정신을 차려보니 앵글이는 시술을 마치고 곁에 누워있었어요. 뇌출혈로 인해 부어오른 머리는 가라앉아 있었고 압박 붕대로 칭칭 감긴 채 잠든 아기를 보니 안심이 되면서도 눈물이 나왔어요. '달려오는 청년을 어떻게든 피했어야 했는데 운동 신경이 너무 둔했던 걸까, 택시를 탔더라면 일어나지 않을 사고는 아니었을까' 싶은 자책이 무수히 밀려왔어요. 불안정한 아기 엄마를 의사 선생님께서는 심시켜 주셨습니다. 


"어머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요만할 때는 자주 넘어지고, 낙상도 일어납니다. 어쩌면 신께서 그러한 사고를 대비해 아기가 자라는 동안 뼈가 유연하도록 만드셨나 봅니다. 고인 피는 뽑아냈으니 2주 정도 지나면 괜찮아질 거예요."


죽을 고비를 몇 차례 겪어내고 앵글이는 건강히 잘 자라주었습니다. 자녀가 건강한 것이야말로 최고의 감사 조건이죠.


보글보글 11월 셋째 주 "내 인생의 터닝포인트"


아침에 눈을 뜨며 아무 근심 없는 오늘을 앚이할 수 있는 것이 그저 신기하고 새로운 마음입니다. 하얀 건 종이요 까만 건 글씨라 도무지 해결점이 보이지 않는 숙제를 받아 들고 마감일을 기다리며 종종 대다 일순간 풀리지 않을 것 같던 문제가 풀리며 단숨에 숙제를 마치고 선생님 앞에 선 느낌이랄까요? 요 며칠 제 마음이 그렇습니다.


아이를 낳고 키우는 건 누구에게나 어려운 일입니다. 우리도 엄마는 처음이니까요. 잘 해내고 싶지만 사람이 사람을 키워내는 것이어서 마음대로 되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선을 다해 제 몫을 다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엄마'이죠.


앵글이가 고3이 되면서 '이제 위험할 시기는 다 지나갔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서인지 올 한 해 마음이 편안합니다. 남들은 고3 자녀 뒷바라지로 분주한데 저는 어쩐 일인지 작년보다 올 해가 더 행복하거든요. 그 이면에 숙제를 마쳐가는 자유함이 있어 그런 것 같습니다. 둘째 동글이의 학령기가 까마득 남아있지만 걱정이 되지는 않아요. 그 아이는 그냥 잘 살 것 같거든요. 한 번 해 봐서 두려움이 덜어진 덕분일까요?


아이가 스물이 되면 엄마로부터 벗어나 한 걸음씩 사회를 향해 나아갑니다. 그래서 아이들이 제게서 떠나갈 그때를 위해 '의미 있는 나의 삶'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합니다. 20년 넘게 해왔던 일을 계속하면 휴식 기간이 있었어도 현장에서 별 어려움 없이 적응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지만, 시간이 자유롭지 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동글이는 아직 엄마의 손길이 필요한 나이라서 아이가 학교에 가 있는 시간 동안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을까, 끊임없이 몇 년을 생각했습니다. 오랜 시간 공들여 생각을 해서일까요? 뜻하지 않은 곳에서 제 기량을 발휘할 수 있는 일들이 다가왔습니다.


1. 학생들을 만나 마음속 이야기를 들어주는 집단상담

2. 자기 주도 학습이 필요하다는 것은 알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한 학생들에게 어차피 해야 할 공부라면 왜, 무엇을 위해 해야 할까 생각해 볼 수 있도록 도와주는 진로교육

3. '서로의 다름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우리가 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까?' 생각을 나누는 인권교육


찾아가는 폭력예방교육 유치원/초등학교
초6을 대상으로 한 심성수련 집단상담 / 중등부 메타인지 자기주도학습


각기 다른 듯 하지만 '학생들의 마음을 읽어주는 교사'라는 점은 같아요. 제일 잘하는 일은 유치원 운영이겠지만, 선생님으로 살고픈 마음 때문인지 '학생이 있는 곳으로 찾아가는 교육'이 참 좋습니다.


워킹맘에서 전업주부로, 전업주부에서 프리랜서 교사로 성장하고 있습니다. 어떤 이름으로 불리든지 그 역할 그대로 행복합니다. 하지만 '내 인생의 터닝포인트'를 찾으려 하니 '바로 지금!'인 것 같아요. 유치원 운영자로 있을 때보다 '교사'일 때가 더 행복했고, '엄마'로의 나도 좋았지만 '다시 선생님'인 지금도 참 좋습니다.


저를 찾아주는 학교가 있고, 눈을 반짝이며 강의와 토론에 참여해주는 학생이 있어 행복합니다. 50이 되도록 공부하는 엄마를 보니 자극이 되고 더 멀리 도전하고 싶어 진다는 아이들의 격려도 힘이 나고, 작으나마 강사비가 입금되었을 때 온 가족을 이끌고 한턱 쏘는 것도 참 좋습니다.


"엄마는 왜 일을 하고 싶어?"

"응~ 엄마가 번 돈으로 우리 가족 밥 사주고 싶어서..."

"고작 밥 사주려고 일을 한다고?"

"밥 사 주는 게 얼마나 좋은데..."

"엄마, 애써 벌었으니 그거 모아서 엄마가 사고 싶은 거 사! 남는 걸로 말이야..."


함께 팀을 이룬 강사분들도 제게 물었어요.


"선생님께서는 강사비를 받으시면 어떻게 사용하세요?"

"전 가족들에게 한 턱 쏘느라 받은 돈 보다 나가는 돈이 더 많아요. 그래서 늘 마이너스죠."

"아니, 외식은 생활비로 해야지 왜 강사비로 하세요?"

"제가 벌어서 밥 살 때 제일 행복해요."


모두들 제게 신기한 사람이라고 했지만 '제가 돈 버는 이유가 밥을 사주고 싶어서'거든요. 여러분도 제가 신기하신가요?


6명의 고정 작가와 객원 작가의 참여로 보석 같고 보배로운 글을 써 내려갈 '보글보글'은 함께 쓰는 매거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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