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년 전 그 맛 그대로, 딸과 함께..."
12월은 시험을 마친 앵글이와 기똥차게 놀아보자고 약속했던 터라 매일 아이와 함께 추억 쌓기 놀이 중입니다. 세브란스에 들렀다가 점심으로 신촌 수제비를 선택했습니다. '20살 로운이가 좋아했던 음식을 20살 앵글이도 좋아할까?' 생각하니 설렘 가득합니다. 7~8년 정도 방문하지 않았기에 여전히 영업을 하고 있을지도 궁금했습니다. 검색을 통해 영업 중임을 확인한 후 앵글이와 찾은 수제비집은 29년 전 있던 위치에서 옆 건물로 옮긴 것 말고는 옛 모습 그대로입니다.
이곳은 잘 숙성된 반죽을 일일이 손으로 얇게 뜯어 토렴 하는(뜨거운 육수에 살짝 익힌 후 건지는) 방법으로 끓여주기 때문에 국물이 맑고 시원합니다. 주문을 받은 후 만들어주시기 때문에 조금 기다릴 수 있습니다. 수제비가 나오기 전, 전식으로 김밥을 주문했습니다. 너 하나, 나 하나 사이좋게 나눠먹는 동안 수제비가 등장하면 참 좋겠지만 김밥을 다 먹고도 한 참을 기다려야 나오니 조급함을 내려놓고 넉넉한 마음으로 기다려야 합니다.
맛은, 그냥 김밥 맛입니다. 설명하기는 좀 힘든데, 배고프면 맛있고 배부르면 그냥 김밥 맛입니다. 그렇다고 해도 안 시킬 수는 없는 맛, 그 맛이 신촌 수제비집의 김밥 맛이죠.
두구두구두구둥.
드디어 수제비가 등장했습니다. 맑은 사골국물에 보들보들 수제비, 그 위에 당근과 애호박을 볶은 고명이 얹어진 수제비에 고춧가루 양념을 얹기 전 일단 한 번 맛을 봐야겠죠?
'음~'
역시 29년 전 먹던 그 맛 그대로입니다. 어쩜 이리 똑같은지 스무 살 그때로 돌아간 것도 같습니다. 제가 처음 사 먹었을 때는 1,800원이었습니다. 한 푼이 아쉬울 그때 넉넉한 양의 싸고 맛있던 수제비는 일주인에 두세 번씩 발걸음을 옮기게 했었죠. 세월이 흐른 지금은 5,000원이 되었습니다. 세월의 흐름만큼, 화폐가치가 달라진 만큼의 인상은 아닙니다. 그때도 착한 가격이었고 지금도 그렇습니다. 엄마의 마음이 가득 담긴 한 그릇은 만든 이의 정성을 더해 여전히 주린 배를 든든히 채워줄 만큼의 양과 가격으로 손님을 맞아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
칼칼하고 시원한 맛을 더할 고춧가루 양념을 넣고 깍두기 국물까지 섞으면 그 맛이 일품입니다. 워낙 슴슴하고 깔끔한 맛이라서 다진 양념과 잘 익은 깍두기 국물은 필수입니다.
식탁 위에 수제비 그릇을 놓아질 때는 양이 적다 싶지만 먹다 보면 다 먹기가 부담될 만큼 넉넉한 양입니다. 혹시 수제비를 좋아하신다면 주문하실 때 '양 많이 주세요'라고 말씀하시면 그릇에 넘실넘실 가득 차도록 담아주십니다.
"앵글아, 엄마가 네 나이 때 자주 오던 단골집이야. 맛이 어때?"
"음... 알 것 같은 맛이랄까?"
"네 입맛에도 맞아?"
"응. 맛있어. 또 오게 될 것 같아."
맛있는 게 많기도 많은 요즘, 아이 입맛에도 맞을지 궁금했습니다. 엄마의 단골집을 딸과 함께 와 보니 이 또한 추억이 되는 것 같습니다. 함께 추억을 나누기에 괜찮은 곳들을 하나하나 찾아가 볼 생각입니다. 아이가 자라니 친구가 되어주어 참 좋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