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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운 Dec 16. 2022

라면 아니라 라멘

세월 따라 입맛도 변하나 봅니다. 전통음식보다는 외래 음식을 더 좋아하는 요즘 아이들에게 인기 있는 메뉴는 마라탕, 쌀국수, 스파게티, 훠궈, 똠냥꿍, 라멘 같은 것들입니다. 진로교육으로 만난 아이들에게 좋아하는 음식을 물었을 때 우렁차게 답하는 메뉴들에 된장찌개, 김치찌개, 갈비탕 같은 것들은 없습니다. 우리 집 아이들도 그렇습니다.


앵글이가 좋아하는 음식 중 하나는 일본식 라멘입니다. 돼지육수를 진하게 우린 후 생면을 데쳐 넣고, 불맛이 담긴 삼겹살 두쪽을 올려 맛을 낸 라멘에는 어떤 매력이 있을까요? 언젠가 우연히 맛본 라멘은 제 입맛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선뜻 선택되지 않는 메뉴이기도 합니다. 라멘은 앵글이가 친구들과 만날 때 자주 선택되는 점심 메뉴입니다. 자주는 아니어도 외출 후 무엇을 먹었는지 물을 때 '라멘'이 자주 등장하다 보니 마치 매일 먹는 것처럼 느껴지기까지 합니다.


수능을 마친 앵글이를 위해 후 12월 한 달을 쓰기로 했었습니다. 가고 싶은 곳, 먹고 싶은 것, 놀고 싶은 것을 이야기하면 함께 해 줍니다. 스물이 되고 캠퍼스의 낭만과 새 친구들을 많이 사귀면 엄마와 함께 할 시간이 부족해지겠죠. 엄마랑 함께하는 시간을 즐거워하는 지금이 딱 좋습니다. 덕분에 동네 친구들과 커피 마실 일은 많이 줄었습니다. 그래도 아이가 좋아하니 참 다행입니다.


아기 앵글이는 엄마 곁에서 30cm도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열아홉 앵글이도 여전히 엄마 껌딱지가 되어 매일 붙어있습니다. 어쩌면 아이가 지혜로운지도 모릅니다. 시간만 내어준다면 운전 기사와 든든한 물주가 되어 주니 말이죠.


날이 더 추워지기 전 산책을 가자 싶어 앵글이와 함께 호수공원을 걸었습니다. 을씨년스러운 풍경이 겨울의 중심에 와 있다고 알려줍니다. 코끝을 스쳐가는 겨울바람, 겨울 내음이 시원하게 느껴집니다. 집을 나서는 순간부터 조잘조잘 귀가 따갑도록 지치지 않고 떠들어대는 아이와 장단을 맞추다 보니 어느새 호수공원 한 바퀴를 훌쩍 돌았습니다. 운동의 말미에 함께 는 점심은 꿀맛입니다. 공원 절반쯤 걸었을 때부터 무엇을 먹을까 메뉴를 정하느라 온 동네 식당 이름이 다 등장합니다. 그러다가,


"엄마, 라멘 어때?"

"또?"

"엄마는 안 먹어봤잖아. 정말 맛있어."

"그래?"

"먹어도 먹어도 질리지 않는 맛이야."

"그 정도야?"


입이 짧은 앵글이가 이렇게 소개할 정도면 정말 맛있긴 한가 봅니다. 그래서 앵글이의 단골집으로 갔습니다.  키오스크 앞에 선 앵글이는 익숙한 손놀림으로 소유라멘과 치킨가라아게를 주문합니다. 물론 엄카로 말이죠.


미가라멘 야당점 소유라멘과 치킨가라아게


치킨가라아게가 먼저 나왔습니다. 음.. 역시 맛있습니다. 다른 매장에서도 맛보았던 흔한 메뉴지만 이곳 치킨가라아게가 훨씬 맛있습니다. 적당히 바삭하고, 달고 짭조름한 소스와 양배추, 양파 슬라이스의 아삭함이 어우러져 일품입니다.


라멘이 식탁 위에 놓인 후 사진 몇 장 찍어봅니다. 그리고, 신기하게 생긴 나무 숟가락을 보며 앵글이와 한바탕 숟가락 생김새를 놓고 되지도 않는 말장난 몇 마디를 주고받으며 국물 한 모금을 들이켜보았습니다. 국물 맛은 꽤 맛있습니다. 라멘 위에 얹어진 삼겹살 구이는 제 입맛이 아니었지만 아이들이 왜 좋아하는지는 알 것 같은 맛입니다.


앵글이와 함께 하는 외출에 맛있는 점심 한 끼는 필수입니다. 편식을 하는 앵글이가 한 그릇 뚝딱 해치우면 만족감이 두 배입니다. 딸과 둘이 하는 데이트는 친구를 만날 때 나누는 그것과 조금 다릅니다. 한껏 멋을 내고 찰칵찰칵 셀카를 찍어대는 아이를 보는 맛도 있고, 관심 밖의 이야기를 흥분해 떠들어대는 아이에게 장단을 맞춰주는 재미도 있습니다.


"앵글아, 엄마가 친구를 만나서 밥을 먹으면 내 몫의 밥값만 내도 되고, 커피를 마셔도 내 몫의 커피값만 내면 되는데 너랑 다니니 비용이 두 배가 아니라 서너 배는 나가는 것 같아. 커피를 마셔도 케이크랑 함께 먹으니 커피 두 잔에 디저트 값이 들고, 밥도 국밥 같은 건 먹지 않으니 레스토랑 수준의 비용이 나가잖아?"

"ㅎㅎㅎㅎ 그러네... 엄마, 내가 나중에 취업하면 갚아줄게."


되받지 않아도 될 품을 팔고 있습니다. 주머니가 가벼워져도 괜찮은 데이트를 한 오늘, 딸과 함께라 참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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