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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운 Dec 19. 2022

울어도 산타할아버지가 선물을 주시면 좋겠습니다.

보글보글 12월 셋째 주 "크리스마스 선물"

길게 이어진 복도 벽면으로 문이 하나, 둘, 셋... 여덟 개, 우리 집은 다섯 번째 문이다. 현관이라 부르기에도 무색한 나무문을 열면 어른 한 명 가까스로 설 정도의 공간이 오른쪽으로 보이는데 그곳이 부엌이다. 마주 보이는 문을 열면 퀴퀴한 곰팡이 냄새가 익숙한 듯 맞아준다. 오래된 새시 틈이 벌어져 사람들이 오갈 때마다 흙먼지가 휩쓸려 들어오는 방 하나에서 네 식구가 산다. 반지하라고 하기도 좀 애매하다. 지상에 노출된 창이라고 해봐야 천정과 맞닿은 쪽창이 전부다. 낡은 갈색 새시로 된 창을 올려다보면 행인들의 무릎 아래만 보인다. 물길을 따로 내지 않고 지어진 건물이라 반지하 창으로 들이치는 빗물 때문에 천정을 따라 벽면 가득 곰팡이가 번져있다. 방문을 열면 확 다가오는 곰팡이 냄새에 얼굴이 절로 찌푸려진다.


부모님은 새벽에 나가 늦은 밤이 되어서야 귀가하신다. 7살의 나는 학교에서 오빠가 돌아올 때까지 동네를 오가며 혼자 논다. 어린이날, 엄마는 스카이콩콩을 사 주셨다. 무려 3,500원이나 하는 스카이콩콩을 선물해 주신 거다. 덕분에 혼자 있는 낮 시간이 지겹지 않다. 처음에는 한 번도 뛰지 못하고 넘어졌지만 어느 순간 백 번도 구를 수 있게 됐다. 또래 아이들과 견주어도 나를 능가할 이는 없다. 얼마 후에는 오빠도 이겼다. 우리 오빠는 초등학교 5학년이다.


1980년 내가 살던 곳 / 그 시절 스카이콩콩


아이들은 참 이상하다. 인도를 둘러싼 버드나무를 보며 만날 귀신 이야기를 한다. 듣지 않으려고 딴생각을 해봤지만 소용없다. 자꾸만 기억 속에 맴도는 머리 푼 귀신 이야기 때문에 혼자 있는 밤이 너무 무서웠다. 실컷 놀다가 해가 뉘엿뉘엿 저물어가면 친구들은 하나둘씩 엄마의 부름에 맞춰 집으로 돌아가고 언제나 혼자 남는 건 나뿐이다. 낮에는 괜찮은데 해지고 난 반지하 방은 음침하다. 가끔 옆 집 사찰 아줌마가 부침개며 국밥을 챙겨주기도 하시지만 거의 대부분 오빠가 올 때까지 굶고 있을 때가 많다.


한 여름 반지하 방은 꽤 시원한 편이다. 덜덜 대는 선풍기 하나로 버텨야 했지만 그래도 냉기가 느껴지는 반지하라서 괜찮다. 문제는 송충이이다. 벌어진 새시 틈으로 버드나무에서 떨어지는 까맣고 털이 뭉실뭉실한 송충이가 창문 틈을 비집고 들어왔다. 에프킬라를 뿌려대도 소용이 없었다. 어느샌가 하얀 벽지가 까맣게 변하고, 누워 있으면 얼굴로 툭툭 떨어졌다. 잠을 자다 자지러지게 놀란 게 한두 번이 아니다. 아버지가 벌어진 새시 틈을 청테이프로 칭칭 붙여주셨지만 어떻게 들어왔는지 알 수 없을 송충이는 꾸역꾸역 천정을 메웠다.



지루한 여름이 끝나고 송충이와의 전쟁도 막을 내렸다. 가난을 실감하기 어려웠던 어린 나는, 가족들이 없는 낮 시간 동안 동네 아이들과 술래잡기, 고무줄놀이, 말뚝박기, 망까기, 구슬치기, 딱지치기, 소꿉놀이 등을 하며 놀았다. 스카이콩콩 한 바퀴 돌려 뛰기 묘기를 보여주면 아이들은 우와를 외치며 대단하다 물개 박수를 원 없이 쏟아냈다. 의기양양 잘난 체를 해도 좋을 만했다. 나만큼 스카이콩콩을 잘 타는 아이들은 없었다.


몇 달만 지나면 국민학교 입학이다. 옆집 어르신 집으로 몇 번 전화가 왔고, 엄마는 가끔 어르신 댁에 300원씩 전화비를 드리고 통화를 하셨다. 바쁜 엄마를 대신해 할머니가 돌봐주기로 하셨나 보다. 입학식에 엄마가 같이 가주지 않아도 상관없었다. 할머니는 계시니까...


12월이 되자 바빠졌다. 크리스마스 발표회 준비 때문이다. 매일 교회에 가서 연습을 했다. 나는 [크리스마스 캐럴] 연극과 독창을 맡았다. 크리스마스이브 저녁 발표회는 성황리에 마쳐졌고, 많은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았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머리맡에는 커다란 선물이 놓여있었다. 6년이나 기다렸던 산타할아버지가 다녀간 거다. 너무 기뻐 선물을 끌어안고 방방 뛰어다니는 나에게 부모님은 어서 뜯어보라며 다가앉았다. 포장을 뜯자 그 속에서 빨간색 책가방이 나왔다.


우주표 가방


산타할아버지는 내년에 국민학교에 입학한다는 걸 어떻게 아신 걸까? 7살의 크리스마스에 찾아온 산타할아버지는 참 좋은 분인 것 같다.


12월 셋째 주 보글보글 "크리스마스 선물"


처음이자 마지막이 된 크리스마스 선물은 빨간색 우주표 가방이었습니다. 오빠는 국민학교를 다니는 동안 가방이 서너 번쯤 바뀌었지만 저는 이 가방을 6년 내내 들고 다녔습니다. 물건을 얌전히 사용하는 성향 때문이기도 했지만 소중해서이기도 합니다. 한, 3학년쯤 되니 산타할아버지는 부모님이라는 걸 알겠더라고요. 딱히 기억에 남는 크리스마스 선물이 없는 걸로 보아, 7살 때 받은 선물이 처음이자 마지막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아마도 이후에는 용돈을 주셨던 것 같습니다.


60년 중반부터 70년 중반 정도에 태어난 분들에게 크리스마스 선물은, 생필품이 많았을 것 같습니다. 모든 게 귀할 때였으니까요. 아이들이 좋아하는 장난감 같은 선물보다는 학용품이 많았던 것은 녹록지 않은 그 시절 형편 때문이기도 했을 겁니다. 울면 산타할아버지께서 선물을 안 주신다며 착한 어린이가 되라고 말씀하셨지만 사실은 답정너식 선물을 주셨던 우리들의 부모님... 그래도 그때는 지금보다 훈훈했던 것 같습니다.


우리단지 내 크리스마스트리


경기가 침체되었다고, 인심이 메말랐다고 여기저기서 떠들어대도 그러려니 넘길 때가 많다가, 12월이 되면 체감되는 것은 그 시절 그 흥겨움을 찾을 수 없어 더욱 그러한 것 같습니다. 그래도 아파트 정원에 꾸며놓은 눈사람과 루돌프의 썰매가 있어 반갑습니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12월에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함박눈도 내리고, 반짝반짝 트리와 흥겨운 캐럴이 흘러나왔으면 좋겠고, 허무맹랑한 동화 속 이야기 같아도 산타할아버지가 선물을 가득 안고 아이들을 찾아와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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