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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운 Jan 06. 2023

방학했다고 버려진 초4아들의 책가방

메리 호프만 [그레이스는 놀라워!]

겨울방학식이 있던 지난주 금요일부터 동글이의 가방은 방바닥에 널브러져 있습니다. '정리하라!'는 말을 몇 번 정도 했을까요? '응, 이따가...'는 또 몇 번이나 들었을까요? 이제 곧 5학년이 될 터이니 제 할 일은 스스로 할 수 있도록 애써 참아봅니다.


매주 금요일은 대청소의 날입니다. 토~목까지는 간략 청소를, 금요일에는 꼼꼼 청소를 하고 있습니다. 오늘이 바로 그 '금! 요! 일!'입니다.


"동글아, 5학년이 되면 새 책을 받아오잖아. 책장 정리도 좀 하고, 지난주부터 버려진 네 책가방도 정리해 보는 건 어떨까?"

"응, 내가 알아서 할게."


도대체 뭘 알아서 한다는 건지 요즘 동글이 입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말입니다. '내가 알아서 할게.'가 말이죠. 동글이에게 주어진 과업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중 자율적으로 즐기는 일은 단연코 컴퓨터 게임입니다. 컴퓨터 앞에서 두세 시간 머무는 것이 눈에 들어오면 단전에서부터 울화가 올라옵니다. 애써 마음을 가다듬고 최대한 친절한 음색으로 불러봅니다.


"동글아~"


라고 불렀을 뿐인데


"어, 알아. 내가 알아서 할게."


라고 합니다. 또, 알아서 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타이머 사용입니다. 제한 시간이 끝나면 저절로 컴퓨터가 꺼지거든요.


"동글아, 선생님 내일 오시는 날인데 학습지는 다 풀었니?"


라고 하면,


"응, 나한테도 다 생각이 있어. 내가 알아서 할게."


라고 하죠. 곁에서 앵글이가 한 마디 거듭니다.


"엄마, 나 키울 때는 잔소리를 안 했던 것 같은데 동글이한테는 잔소리를 많이 하는 것 같아."


생각해보니 그런 것도 같습니다. 앵글이는 남의 말 듣기 싫어하여 스스로 챙기는 편이었으나, 동글이는 노여움을 타지 않는 성격이라 스쳐 지나가는 일이 많다 보니 여기저기 구멍 투성입니다. 한 배에서 나왔음에도 어쩌면 이리 다를까요.


일주일째 널브러진 동글이의 책가방


일주일을 뒹굴러 다니던 동글이의 책가방을 열었습니다. 책가방 속에 책은 없고 온통 물건뿐입니다. 그 와중에 틈새사이로 보이는 소책자 하나가 발견되었습니다.


"동글아, 이거 네가 만들었어?"

"응. 좋아하는 책 읽고 만들기였어. 왜?"

"아니, 읽어보려고..."

"별로 재미 없어. 학교에서 만든 거야."


동글이가 만든 소책자 속 주인공 '사라'는 흑인입니다. 피부색으로 인해 차별받는 사라에 대한 글이 마음에 와닿습니다.



"사라, 지각하다."
사라는 오늘도 버스를 타요.
근데 오늘따라 앞자리가 궁금해 앞자리로 가요.

앞자리가 궁금한 사라는 버스가 멈출 때
조심조심 걸어가 봤어요.
그때! 아저씨가 사라에게 욕을 했어요.

사라는 아저씨의 손짓을 보고 너무 화가 나 이렇게 말했어요.
"아저씨가 백인이면 다예요?"
승객들은 화가 났어요.
그때 버스가 멈추고 버스 기사가 다가왔어요.

버스기사는 사라를 밖으로 내쫓았어요.
그리고 사라는 아까 말다툼을 하느라
정거장을 놓쳐 지각을 했답니다.



사라가 흑인이라는 직접적 언급은 없었지만 그림 속 사라의 피부색으로 잘 드러내고 있습니다. 아이가 만든 소책자를 읽으며 차별과 차이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됐습니다. 아이에게 고정관념과 편견을 심어주지 않도록 더 많은 노력을 해야겠습니다.  


동글이에게 동화책 한 권을 건네주었습니다. 메리 호프만의 [그레이스는 놀라워!]입니다. 동화에서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자신이 여자이고 흑인이라서 공연에서 피터팬 역을 맡을 수 없다는 친구들의 말을 전하는 손녀딸에게 할머니께서는

"그레이스, 넌 네가 원하는 건 뭐든지 될 수가 있어. 마음만 먹는다면 말이야"]


메리 호프만 [그레이스는 놀라워!]


'마음만 먹으면 뭐든지 할 수 있다.'라고 동글이에게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마음먹기 뿐만 아니라 행동으로 옮겨야 그레이스처럼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닐까?' 물었더니 고개를 끄덕여줍니다.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려면 노력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아이도 자신의 생각과 마음이 있으니 어른의 시각으로 아이의 마음을 재단하지 말고 기다려줘야겠습니다.


꼬박 두 달이나 되는 겨울방학이 되었습니다. 코로나와 추위로 외출도 여의치 않아 집콕 전쟁이 벌어질 예정입니다. 일주일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주리를 트는 동글이와 긴긴 겨울 방학을 어떻게 보내야 재미있을지 내내 고민입니다. 겨울방학, 어떻게 보내실 계획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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