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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운 Jan 16. 2023

아기는 아빠가 안아주세요.

보글보글 1월 3주 "띠"

아기 동글이는 아기띠를 싫어했어요. 아기띠는 외출할 때만 필요한 게 아니라 집에서 아기를 돌볼 때에도 꼭 필요하죠. 아기가 개월을 더하며 몸무게가 늘어날 때 엄마팔로 아기를 안아 재우기는 쉽지 않아요. 신기한 건요, 내 아기이기 때문에 무게가 느껴지지 않는다는 거예요. 두 아이를 키울 때에는 못 느꼈는데 조카들이 태어나고 조카를 돌보다 깨닫게 되었어요. 아기의 무게가 고스란히 느껴지는 걸 말이에요. 3kg 남짓으로 태어난 아기들이 한 달을 보내며 거의 1.5배 이상 몸무게가 늘고, 백일 즈음 2.5배 이상 몸무게가 늘어나요. 백일 즈음 거의 6~8kg이 된다는 거죠. 쌀로 생각하면 이해가 더 쉽겠죠? 10kg의 쌀은 고사하고 5kg의 쌀도 30분을 들고 있기 어려워요.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무겁게 느껴지니까요.


아기가 뒤집기 시작하고, 배밀이를 하다가 조금씩 기어 다닐 즈음이면 이미 몸무게가 팔로 안아 재우기 어려울 만큼 무겁게 느껴지죠. 물론 '사랑 호르몬' 때문에 끄떡없이 안고 있을 수 있지만 그래도 몸에 무리가 오는 건 어쩔 수가 없어요. 그럴 때 아기띠는 도움이 많이 돼요. 그런데 그거 아세요? 아기에게 아기띠가 필요한 시기에는 걷겠다고 떼를 쓰고, 잘 걸을 즈음부터는 안아달라 보채거든요. 아기띠를 정말 아기였을 대보다 서너 살 때 더 많이 사용하게 되는 건 좀 아이러니하죠?


포대기, 아기띠, 힙시트


아기띠의 종류가 얼마나 많은지 알고 계신가요? 아기띠, 힙시트, 처네, 슬링 등 종류도 다양하지만 사용해 보니 어머니 때부터 내려오던 포대기가 엄마에게도 아기에게도 편안한 것 같아요.


아기와 함께 외출을 한 번 하려면 준비할 건 얼마나 많은지요. 그래도 아기띠에 안겨있을 땐 그나마 좀 나은 편이에요. 아장아장 걷기 시작할 즈음부터는 혼자 걷겠다고 고집을 부리기 시작하죠. 아기 걸음이 느린 것 같아도 잠시 눈길을 놓치면 순식간에 사라져 버리거든요. 아기들은 직진본능이 있어서 순식간에 천리길을 가고 말아요. 그래서 아기 안전용품들이 많이 나오고 있어요.


미아방지용 가방과 외출용 안전띠


동글이가 세 살쯤 되었을 때 모터쇼에 간 적이 있어요. 한참 자동차에 관심을 갖는 시기였거든요. 아기띠만 준비해서 전시장에 들어갔는데 신기한 것들이 많이 보이니 내려놓으라 떼를 쓰기 시작했어요. 안전띠를 미처 준비하지 못해 아기 손을 꼭 잡고 걸었지만 워낙 손이 작고 보드라우니 쑥 빠져버리는 거예요. 급한 대로 남편의 허리띠를 풀러 아기 허리에 감고 걸었던 기억이 나네요. 요즘에는 시판되는 안전용품이 다양하기 때문에 미리 준비하시면 미아안전사고를 예방할 수 있겠죠?


코코몽의 '아로미'


"싫어! 난 토끼띠 할 거야!"


앵글이가 아침부터 내내 토끼타령이네요.


"그럼 그냥 토끼띠 하면 되잖아."

"그러면 안 되잖아. 나만 왜 원숭이띠인 건데!!"

"그건 엄마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아니야."

"그러니까 엄마가 토끼띠로 낳아줬어야지~"


말도 안 되는 실랑이 때문에 영혼이 안드로메다로 사라질 지경이에요. 가끔씩 무언가에 꽂히면 타협이 되지 않는 앵글이를 어떻게 하면 진정시킬 수 있을지 막막하네요.


"왜 토끼띠를 하고 싶은 건데?"

"토끼는 예쁘잖아. 코코몽에서도 아로미가 제일 예쁘단 말이야."

"원숭이도 귀엽지 않아? 코코몽에서 주인공도 원숭이잖아."

"아니야! 원숭이는 못생겼어! 난 핑크색을 좋아한단 말이야."

"우리 집에도 토끼띠는 없잖아. 그러니까 토끼띠 하고 싶으면 해도 괜찮아."


어디에서 띠 이야기를 들었는지 온종일 토끼띠를 하겠다고 떼를 쓰는 앵글이에요. 쥐, 소, 호랑이, 토끼, 용, 뱀, 말, 양, 원숭이, 닭, 개, 돼지... 12 지신 중 토끼가 가장 예쁜 것 같기도 해요. 여아를 키우다 보면 핑크로  모든 것을 채우는 시기가 찾아옵니다. 앵글이의 방, 가구, 옷, 액세서리, 문구류까지 핑크가 아닌 걸 찾는 것이 더 빠를 지경이거든요. 토끼띠를 하겠다며 한참을 칭얼거리다 지쳐 제풀에 잠이 든 앵글이에요. '제발 잠이 깰 때는 토끼 생각을 잊었으면' 싶던 기억이 새록새록하네요.


남편은 돼지띠이자 쥐띠입니다. 집에서 아이를 출산했던 시절에는 자주 있던 일이죠. 가정 분만으로 태어난 남편은, 건강하게 자라는 것을 확인한 후 출생신고를 하고자 한 부모님 덕분에 진짜 생일과 가짜 생일이 있습니다. 연 중 생일을 두 번 치르는 행운을 얻은 남편을 아이들 시선으로 바라보면 개이득입니다.


"내일은 당신이 임가네 쏘는 거야?"

"응? 우리 밖에서 밥 먹기로 했었나?"

"왜? 싫어?"

"그렇다기보다는 뜬금없어서..."

"내가 사?"

"내가 사주는 게 더 맛있으면 내가 사야지.ㅎㅎㅎ"


동글이와 함께 집을 나서며 남편은 무심하게 툭 외식약속을 합니다. 남편과 동글이가 나간 후 앵글이는,


"우리 내일 밥 먹기로 했었나?"

"아니?"

"그게 뭐야... 무슨 약속을 아빠 혼자 해~ ㅎㅎㅎ"

"그러게..."

"그냥 고기가 먹고 싶은 거네~"

"이번주가 생일이라서 그런 거 아닐까? 진짜 생일은 아니어도 생일축하 문자는 호적 생일에 몰려서 오잖아."

"그럼 우리 생일파티하는 거야?"

"뭐, 아빠가 원한다면... ㅎㅎㅎ"


사실 진짜 생일은 추석과 맞물려 있어서 어영부영 명절을 치르며 적당히 휩쓸려가게 됩니다. 생전 생일에 의미를 두지 않더니 남편도 나이를 먹나 봅니다. 부쩍 자상해지고 가족들과 무언가를 함께 하고 싶어 하는 걸 보면 나이 들수록 가족이 제일이다 싶은 생각이 드는 건 아닐까요? 늘 가던 식당이어도 '생일'이라는 의미를 붙이면 생일 파티가 되는 것이니, 각종 이유를 붙여라도 맛난 식사를 해야겠습니다.


나무에 가라앉은 눈이 예쁘네요


며칠 겨울비가 내리며 안개가 뒤덮더니 어느새 쌀가루 같은 고운 눈이 흩날립니다. 그래서인지 나무에 가라앉은 눈이 더 예뻐 보였어요. 가족들이 좋아하는 고기 외식도, 적당히 가라앉은 나무의 눈 쌓인 풍경도 예쁜 그런 날이었네요. 집으로 돌아오는 길, 함박눈으로 바뀌어 간만에 겨울 느낌 물씬 났어요. 질척하고 미끄러운 길을 생각하면 동심이 달아나지만, 겨울을 만끽하기에 함박눈 만한 건 없는 것 같아요.  



"그래, 호랑이띠라고?"

"네?? 아, 네..."

"우리 아이는 소띠인데... 음..."


갑자기 띠는 왜...?


"띠가 좀 약했으면 좋았을 텐데 말이다..."

"아... 예..."

"아무래도 소보다는 호랑이가 더 세잖아... 다 맘에 드는데 띠가 좀..."


스무 살 이쁜 나이일 때 만났던 남자친구는 소띠였습니다. (물론, 남편은 아닙니다.) 재수를 하던 그 친구가 이맘때 원서를 냈던 것 같습니다. 지금은 컴퓨터로 원서접수를 하지만 그때는 지망하는 대학에 직접 방문해서 원서 접수를 했었습니다. 함께 가 주길 원하는 남자친구의 부탁으로 약속장소에 갔더니 친구는 아버지와 함께였습니다. 대중교통으로 가려던 계획은 아버지께서 직접 데려다주시는 것으로 바뀐 것입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여자친구와 함께 간다고 하니 어떤 아이인지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셨을 것도 같습니다.) 삐삐로 연락하던 때라 갑자기 바뀐 계획을 미리 알려주지 못했겠죠. 자동차에 오르니 친구의 표정에 당혹스러움이 읽혀 눈빛으로만 어떻게 된 거냐고 물었을 뿐 몸은 이제 갓 군에 입대한 이병 자세가 되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아버지 맘에 띠가 센 아이를 며느리로 맞으면 아들을 이겨먹을까 걱정이 되셨던 것 같습니다. 친구에서 연인으로 넘을랑 말랑 한 시점이었을 뿐인데 어른들은 더 멀리도 내다보시니 띠가 문제가 될 수도 있었던 것이지요. 세월이 지나도 그때 그 차 안에서의 분위기, 공기, 띠 이야기를 무겁게 던지시는 아버지의 음성까지 기억에 남아있는 걸 보면 꽤 강렬한 기억 중 하나인가 봅니다.


5명의 고정 작가와 객원 작가의 참여로 보석 같고 보배로운 글을 써 내려갈 '보글보글'은 함께 쓰는 매거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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