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부터 시작된 매주 일요일 딸아이와의 데이트는 현재진행형입니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딸아이가 무소속이 되었다는 거죠. 좀 더 자유로워졌으니 함께 할 것들이 다양해질 것 같았지만 여전히 우리는 맛집, 카페, 쇼핑몰 등을 돌아다니고 있습니다. 그래도 한 해가 지났고, 한 살 더 먹었으니 뭔가 기억에 남을 만한 새로운 것을 하고픈 엄마의 희망사항을 담아 가끔 대학로에서 연극을 보거나 콘서트, 뮤지컬 등의 공연도 함께 하기로 소박한 계획을 세워봅니다.
이제 갓 스물이 된 앵글이는 '화장하기' 취미가 있습니다. 몸단장에 게으른 엄마는 좀체 이해할 수 없지만 예뻐진 모습을 보면 스트레스가 달아난다고 하니 참 좋은 취미구나 싶기도 합니다. 하루는 이른 아침 앵글이가 침실로 들어와 방긋 웃어 보이더니,
"엄마, 나는 아침에 눈을 떴을 때 내 모습이 예쁘면 엄마가 너무 사랑스럽게 느껴지더라?"
"네가 예뻐 보이는데 내가 사랑스럽게 느껴진다고?"
"응. 어쩜 이렇게 이쁘게 낳아줬을까 싶어서 고맙기도 하고 사랑스럽기도 해!"
잠이 덜 깬 침대맡에서 웃음이 빵 터졌습니다. 앵글이의 높은 자존감을 진심 닮고 싶었다고나 할까요?
"오늘은 코스트코에 가자. 동글이 로션이 떨어졌어."
"나는 좋지. 그럼 오늘 화장할 수 있겠네?"
"다른 날은 못해?"
"화장을 하면 외출을 해야지... 난 집순이라 외출이 좀 귀해..."
몸단장을 할 딸아이를 위해 차분히 기다려줍니다. 사실 얼마의 시간이 걸릴지 예측하기 좀 어렵거든요. 스무 살 딸아이를 기다릴 때에는 인내심이 필요합니다. 요즘은 요령이 늘어서 앵글이가 신호를 보내올 때까지 제 할 일을 합니다.
"앵글아~ 준비 다 되면 말해~"
한마디만 던져놓으면 그만이죠. 그리고 한... 두 시간쯤 지났을까요?
"엄마 다됐어!"
바로 이때부터 준비를 하면 됩니다. 제가 외출을 위해 준비하는 시간은 넉넉 잡아 5분이면 충분하거든요.
딸아이와 함께 승강기에 올랐습니다. 승강기 삼면이 거울로 되어있으니 사진 찍기에 안성맞춤입니다. 요리조리 사진을 찍으면 거울 덕분에 입체적으로 촬영되거든요. 한참 사진 찍기에 열심인 앵글이를 바라보고 있는데 아래층에 사는 앵글이 친구가 승강기에 올랐습니다. 한껏 빼입고 말이죠. 곱게 화장을 하고 정장을 입은 친구의 모습이 얼마나 예쁘던지 저도 모르게,
"어디 가니? 오늘 너무 예쁘네~?"
"아, 오늘 담임선생님 결혼식이 있어서요..."
"그렇구나... 예쁘게 입었는데 날이 너무 추워서 걱정이네..."
"그러니까요...ㅎㅎ"
신기하게도 아이들을 보면 딱 내 아이 나이만큼 보이는 게 있거든요. 가만히 두어도 너무 예쁠 나이인데 한껏 꾸며놓으니 어찌나 예쁘던지요. 까만색 정장과 코트, 하이힐을 신고, 단정하게 맨 미니숄더백까지 부족함이 없는 하객룩이었어요. 1층에서 친구가 내리고 우리는 자동차에 올랐죠. 아파트를 돌아 나오는데 건너편에서 초록불을 기다리고 있는 친구가 보였어요. 스타킹을 신은 두 발이 종종 모둠발을 뛰는데 마음 같아서는 강남까지 데려다주고 싶었다니까요...
"앵글아, 아까 친구 가방 봤니?"
"아~ 응. 입생로랑 숄더백 말이지?"
"미니미니한 게 너무 잘 어울리더라. 비쌀까?"
"비싸겠지... 작은 게 생각보다 비싸더라?"
별생각 없이 스쳐 지나가는 대화였는데 괜스레 마음에 걸렸어요. 아직 앵글이에게 가방을 사 준 적은 없거든요. 장을 보고 집에 돌아와 검색을 해 봤더니 생각보다 값이 꽤 나가더라고요. 딸아이는 사달라고 하지 않았지만 엄마 마음이 그런가 봐요. 스물이 되고 이제 모임에 나갈 일도 생길 텐데 예쁜 가방 하나 정도는 사줘야 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 말이죠.
"앵글아~ 엄마가 겨울 가방 만들어줄까?"
"좋지~"
너스레를 떨어가며 엄마표 가방을 만들기 시작했어요. 앵글이가 좋아하는 핑크색 가방을 제일 먼저 만들었죠. 와우~ 반응 최고였어요. 뿌듯하고 으쓱했죠.
"엄마, 꽤 이쁜데? 다음 주에 친구 만날 때 이거 들고나가야겠다..."
"엄마가 뽀글이 가방도 만들어줄까?"
"좋지? 그럼 베이지색으로 만들어줘. 퍼 코트랑 같이 메게..."
숄더백 3종세트와 퍼크로스
앵글이가 좋아해 주니 힘이 쑥쑥 났죠. 비싼 가방은 아니지만, 옷에 맞춰 들고 다닐 수 있게 다양한 색깔로 만들어주면 좋겠다 싶으니 만드는 재미도 있었어요.
이상하죠? 가방을 꽤 여러 개 선물했지만 마음이 개운하지는 않았어요. 내내 친구의 가방이 눈에 밟혔거든요. 제 눈에 그 가방이 예뻤나 봐요. 그래서 그간 모아둔 상품권을 세어보기로 했어요. 앗! 다행스럽게도 생길 때마다 모아뒀던 상품권으로 작은 가방 하나 정도는 살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래서 딱 맘을 먹었죠. 이번 주 일요일 데이트는 아울렛으로 가자고 말이죠.
"앵글아, 엄마랑 아울렛갈까?"
"왜? 뭐 살 거 있어?"
"그냥, 아이쇼핑~"
"그럼 오늘도 난 화장을 해야겠다~"
앵글이가 화장을 하는 시간이 지루하지 않았어요. 다른 날 보다 셀렘이 가득했거든요. 그리고, 함께 아울렛에 갔죠. 사실, 브랜드와 가방 이미지를 머릿속에 대충 그려놨었거든요. '이런 게 있었으면 좋겠다'라고 말이죠. 매장을 한 바퀴, 두 바퀴 돌면서 미니가방만 예의주시하고 봤어요. 그러다가 눈에 딱 들어온 가방을 마침 앵글이도 보고 말았죠.
"엄마, 이거 어때?"
앵글이에게는 엄마랑 같이 사용할 가방을 사자고 했었거든요. 앙증맞은 사이즈에, 앵글이가 좋아하는 보석도 콕콕 박혀있고, 비슷한 다른 가방에 비해 무게감이 없었어요. 안성맞춤이었죠. 그래서 고민 없이 '저, 이 가방 주세요'라고 했지 뭐예요.
"엄마도 이 가방 맘에 들어?"
"응. 딱 맘에 들어. 그런데 쇼핑하는 시간이 너무 짧게 걸렸나?"
"엄마, 쇼핑의 법칙이 있는데, 빙빙 돌아도 처음 본 그 물건을 사게 되는 거래. 다른 매장 둘러봤어도 우린 이 가방을 샀을 거야."
"그렇지? 사실, 마음속에 그려뒀던 이미지가 있었거든? 오늘 산 가방이 딱이었어."
집에 와서 보니 더 마음에 들었어요. 앵글이 마음에도 쏙 든다니 오늘 쇼핑은 성공입니다.
사실 전, 학교 다닐 때에도 가방을 잘 들고 다니지 않았어요. 청바지 뒷주머니에 카드 하나, 비상금 만원 정도 넣고 다녔죠. 직장을 다닐 때도 별반 다르지 않았어요. 짐을 들고 다니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고, 화장도 하지 않아서 파우치가 필요하지 않았거든요. 아이들 어릴 때는 어쩔 수 없이 가방을 들고 다녀야 해서 주로 배낭을 메고 다녔죠. 한쪽으로 메는 가방은 어깨끈이 자꾸 떨어져서 불편했거든요. 요즘에도 핸드폰과 동전지갑 하나면 충분해요. 자동차키와 카드 몇 개, 비상금 만원이면 족하거든요. 그래도 앵글이 가방을 만들고 남은 실로 제 것도 하나 만들었어요. 작은 손가방이 마음에 쏙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