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수록 삶이 퍽퍽해지고 정이 없어졌다 말하는 이들도 있지만, 지난 날 보다 다가올 날들이 더 기대가 되는 것은 나아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남편과 가전 매장을 둘러보며 '오래 살아야겠다'라고 이야기했던 적이 있다. 여유만 있다면 누릴 수 있는 것들이 참 많았다. 변화된 세상에 적응하려면 '젊은 감각을 잃지 말아야겠구나' 생각되는 나이가 되어 가는 것도 아쉽다.
로봇이 사람을 대신하는 세상이 올까?
8~90년대 영화에서 그려졌던 일들이 눈앞에 펼쳐졌다. 면대면으로 주문을 받던 문화는 점점 사라지고 매장 입구에서 기다리는 키오스크에 주문자가 직접 주문하면 번호표를 발행해 주는 세상, 식당에 가도 테이블마다 설치된 키오스크에 손가락 몇 번 토닥이면 되는 세상, 빈 그릇을 치우는 것도 테이블 벨을 누르면 로봇이 다가와 소비자가 직접 정리하도록 되어있는 세상이 되었다.
자주 이용하는 커피전문점, 순대국집, 애슐리의 키오스크와 서빙로봇
처음 마주했을 때는 어안이 벙벙하던 것들에도 이제는 적응이 되었다. 가끔, 키오스크 앞에서 버벅대는 분들의 주문을 도와줄 수 있을 만큼 자연스러워졌다. 낯설던 풍경에 적응하고 나니 직원이 다가오지 않는 것이 더 편하게 느껴진다. 서슴없이 키오스크 스크린을 눌러 주문을 하고, 서빙로봇을 불러 그릇을 정리한다. 그리고 달라진 세상을 신기해하면서 문을 나선다.
세상이 달라져서 좋을까?
물가상승의 이유가 인건비 인상 때문이라고 말하는 이도 있다. 자영업자들은 인건비가 오르니 직원을 줄여야 했고, 그 빈자리를 로봇들이 차지했다. 지금 로봇들이 하고 있는 일들은 사람이 했던 일이고,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은 더 이상 일할 곳이 없다고 이야기한다. 자영업자 입장에서 인건비는 매달 지불해야 할 지출이지만 로봇은 한번 들이면 이후 인건비만큼의 지출이 발생하지 않으니 이득이라 한다. 사람이 사라진 식당, 그래서 우리의 삶은 나아졌을까?
경제적 이득은 얻을 수 있겠지만 사람 간 오가는 정이 사라졌다.
그런데 정말 경제적 이득이 커졌을까?
보행신호등 잔여시간표시와 옐로카펫
보행신호등 적·녹 잔여시간 표시, 보행자 사고예방 효과를 높인다.
퇴근길, 신호 대기를 하며 무심코 신호등을 보았다. 빨간불 밑 숫자판이 눈에 들어왔다. 120부터 카운터 되는 숫자판이 뜬금 반가웠다. 초록불 숫자판에만 익숙하다 빨간불 숫자판을 보아서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동안 빨간불이 초록으로 바뀌는 것을 기다리며 지루했던 기억이 있어서일지도 모른다. 줄어드는 숫자를 보며 무작정 기다렸던 시간이 덜 지루했다. 나도 모르게 줄어드는 숫자를 함께 세었는지도 모른다.보행자에게 시간정보(적색신호 잔여시간)를 제공하면 무단횡단 사고 예방은 물론 무리한 횡단보도 진입을 억제해 보행자 사고를 사전에 방지하는데 효과가 있다고 한다.
배려가 있는 세상
어쩌면 줄어드는 숫자를 세며 그런 생각을 했었나 보다. 나처럼 성격 급한 사람들은 빨간불이 초록으로 바뀌기까지 발을 동동였을지도 모르고, 어린아이들은 '언제 바뀌느냐'라며 보챘을지도 모른다. 그저 빨간불에 숫자 하나 넣었을 뿐인데도 변화라고 읽고 있는 나는 오늘도 '희망'을 가져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