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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운 Aug 23. 2023

군고구마가 될 뻔했습니다만...

지난해 가을부터 에어프라이어에 구운 군고구마 맛에 흠뻑 빠져있습니다. 세척고구마를 흐르는 물에 씻어 에어프라이어에 넣고 200도 30분을 구우면 정말 맛있는 군고구마를 맛볼 수 있습니다. 한 봉지에 7~10개 정도 들어있으니 네 가족 하루 간식으로 충분한 분량이 됩니다. 30분 투자해서 내어놓는 간식으로 이만한 것이 없죠.



'2단계 이하의 조리법으로 만든 음식이 건강에 좋다'라는 다큐멘터리를 시청한 기억이 있습니다. 2단계 이하라면, 씻고 삶고, 씻고 데치고, 씻고 굽는 정도의 조리법이겠죠. 그러면, 씻어서 바로 먹을 수 있는 채소나 과일, 삶거나 찐 계란•감자•고구마•옥수수•두부•양배추 등의 음식과 바로 구운 고기 정도이겠네요. 건강에 좋다는 간단한 조리법 음식을 좋아하는 저에게는 안성맞춤입니다. 앵글이에게,


"튀기거나 간이 센 음식도 싫어하고, 가공식품도 먹지 않는데 왜 나는 살이 찔까?"

"음... 운동을 안 해서?"

"ㅎㅎㅎㅎㅎ"


맞는 말이기는 한데 좀 억울할 때가 있습니다.


"난 조금 먹고, 야식도 안 먹는데 좀 억울해."

"음... 조금씩... 계속 먹는 건 아닐까?"

"ㅎㅎㅎㅎㅎ"


결국, 운동을 안 하니 살이 찌는 것인데 꾸준한 운동을 하는 것은 왜 이리 어려울까요?


"엄마는, 움직이기 싫은 마음이 다이어트 욕구를 이기는 것 같아. ㅎㅎ"


너무 사실이라 마음이 아픕니다...


지난봄 군고구마를 만드려고 세척만 해 둔 채 외출을 했던 적이 있습니다. 돌아와서 구워야지 하고 나섰다가 저녁이 되어 내일 아침에 구워야지 미루게 되었고, 그도 귀찮아서 그대로 뒀었죠. 그렇게 며칠이 흐르고, 주방 한쪽에 머무른 고구마를 보았지만 못 본 척 지나치다 보니 어느덧 고구마는 바짝 말라갔습니다. 마른 고구마를 군고구마로 만들면 맛이 없을 것 같고, 쪄서 먹어야 할까 생각하다 외면된 고구마는 주방 한쪽 믹싱볼에 담긴 채 잊혔습니다.


한 달, 두 달... 시간이 지나고 잊혔던 고구마를 반년이 지난 얼마 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신기하게도 썩지 않고 마른 네 개의 고구마 중 두 개의 고구마에 싹이 올라 있었습니다. 싹이 오른 고구마를 그냥 버리려니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살려고 싹을 틔웠구나 싶은 마음이 드니 왠지 짠하고, 미안했습니다. 그래서 페트병을 잘라 고구마를 담가놓았죠.


하루종일 물을 흡수한 고구마에 생기가 돌기 시작했습니다. 며칠 후 고구마 하나는 하얀 뿌리를 드러냈고, 나머지 하나는 뿌리를 내리지 못한 채 윗면이 썩어가기 시작했습니다.


"엄마, 이건 죽을껀가봐."

"그러네. 얘가 더 많이 말랐었나 봐. 며칠만 더 지켜볼까?"


화초 키우기를 좋아하는 동글이는 매일매일 물을 바꿔주었고, 죽을 것 같던 나머지 하나의 고구마에서도 드디어 뿌리가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엄마, 정말 착한 식물이 더 잘 자라?"

"착한 식물?"

"응. 과학 시간에 배웠는데 식물에게 칭찬을 해주면 잘 자란다던데?"

"그럼 동글이도 고구마에게 칭찬을 해줘. 그럼 더 잘 자라지 않을까?"

"엄마, 그런데 물을 바꿔주다가 줄기 하나가 떨어졌어. 어떡해?"

"지금 떨어졌으니까 얘도 물에 담가볼까?"

"그럼 살아?"

"엄마도 안 키워봐서 몰라. 살 수도 있지 않을까?"



우리 집에 고구마 삼 형제가 생겼습니다. 떨어진 줄기에서도 뿌리가 내렸습니다. 오늘 아침에도 동글이는 물을 바꿔두고 등교를 했습니다. 뿌리내린 고구마를 땅에 심어줘야 하나 궁금해하는 동글이를 위해 배양토를 주문해 봅니다. 올 가을, 고구마를 수확할 수는 없겠지만 화초가 된 고구마를 매일 볼 수는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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