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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삭한 기억을 말다 — 크래미 오이김밥

by 로운

오이를 즐겨 먹지 않지만, 이상하게 장을 볼 때마다 손이 갑니다. 냉장고 속에서 물러버릴 때도 많지만, 김밥을 말 때면 꼭 오이를 꺼내듭니다. 아삭한 식감과 은근한 향이 김밥의 밸런스를 잡아주기 때문이에요.

특히 크래미와 깻잎, 계란을 함께 넣으면 오이의 청량함이 더욱 살아납니다. 오이를 넣은 김밥 한입을 베어 물면 입안 가득 상큼함이 퍼지고, 부드러운 계란이 그 여운을 감싸줍니다.


엄마가 즐겨 먹지 않는 재료는 아이들도 잘 먹지 않습니다. 아마도 엄마의 손길이 닿지 않으니 식탁에 오를 기회가 줄고, 자연스레 입맛에서도 멀어진 탓일 겁니다. 그래서 어느 날부터는 의도적으로 ‘잘 안 먹는 재료’를 챙기기 시작했습니다. 그 첫 번째 시도가 바로 김밥 속 오이였지요.


김밥에 오이를 넣으면 수분이 많아 따로 국이 없어도 부드럽게 넘어갑니다. 오이를 주인공으로, 크래미와 계란, 깻잎을 조연으로 곁들인 김밥은 아삭하고 향긋합니다. 그래서인지 오이는 제 식탁에서 조금 특별한 재료가 되었습니다. 김밥과 오이는 찰떡궁합 같달까요.


입시 준비로 매일 김밥 도시락을 싸던 시절, 오이를 넣은 김밥은 아이에게 자주 싸주던 조합이기도 합니다.


새벽마다 썰던 오이의 아삭한 소리,
밥에 김이 스며드는 향,
그 모든 순간이 아직도 손끝에 남아 있습니다.

오늘은 그때의 레시피를 다시 꺼내봅니다.
그 시절의 마음을 함께 말아 올리듯이요.


'크래미 오이 김밥' 만들기


◉ 재료(2줄 분량)

크래미 4개

오이 1개

계란 2개

깻잎 4장

김 2장

밥 2 공기

소금, 참기름, 깨소금 약간


만드는 법

1. 오이 손질하기

오이는 길게 반으로 잘라 씨를 살짝 긁어내고, 소금을 약간 뿌려 10분간 절인 뒤 물기를 닦아냅니다.

2. 재료 준비하기 계란은 크래미를 넣어 계란말이로 준비합니다. 깻잎은 깨끗이 씻어 물기를 닦아둡니다.

3. 밥 간하기

따뜻한 밥에 소금 약간, 참기름과 깨소금을 넣고 고루 섞습니다.

4. 김밥 말기

김 위에 밥을 고르게 펴고, 깻잎 → 크래미 계란말이 → 오이 순서로 올립니다.
돌돌 말아 끝단에 참기름을 발라 고정합니다.

5. 마무리

한입 크기로 썰어 담고, 참기름을 살짝 두른 뒤 깨를 뿌려줍니다.



큰아이가 대입을 준비하던 해, 매일 두 개씩 도시락을 쌌습니다. 처음엔 반찬을 따로 챙겼지만, 어느새 김밥으로 바뀌었죠.


짧은 시간 안에 든든하게 먹을 수 있길 바라는 마음,
젓가락 하나로 집어 먹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작은 배려가 담긴 김밥이었습니다.


“엄마 김밥은 이상하게 질리지 않아.”
그 한마디가, 매일 새벽 부엌을 밝히는 불빛이 되었습니다.


입시가 끝나고 한동안 김밥을 찾지 않았던 아이.
그런 아이의 마음을 아는지, 저도 김밥을 싸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가끔 오이를 듬뿍 넣은 김밥이 생각날 때가 있습니다.

그리운 건 아마 그 맛보다,
그 시절의 마음일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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