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 + 가족 + 에세이
추석 연휴 마지막 날에도 사무실에 앉아 남의 글을 들여다본다. 아직 출간하지 않은 남의 글을 읽고 의미를 생각한다. 추석 연휴, 나는 왜 사무실에 앉아 타인의 글을 들여다보고 있을까? 정상수의 쇼미 더 머니 1차 예선 랩을 들으며 운명의 추를 생각했다. 타인의 글을 먼저 읽는 직업이 운명일까?
고등학교 시절, 3가지를 하느라 시간을 다 보냈다. 농구, 게임, 교회생활이다. 지금도 남아있는 고등학교 친구들은 교회 친구들이고, 모이면 게임을 한다. 농구는 나이고 뱃살이 나오니 자연스레 못 하게 되었다. 그때 남 모르는 은밀한 취미가 있었다. 집에 있는 전집 읽기였다. 첫 번째 전집은 사촌 누나가 물려준 해적판 전집이었다. '읍니다'로 끝나는 본성 자체가 낡은 책이었다. 그 전집 중 '검은 해적'을 가장 많이 읽었다. 두 번째 전집은 흰색으로 하드 커버였다. 분명 해적판은 아니었다. 유광의 하드커버가 번쩍거렸고, 한국 작가가 제법 많았다. 세 번째는 미국 유학 도중에 산 한글판 펭귄클래식이다. 지금은 내가 보부아르라고 부르는 친구와 책을 읽고 독서 기록을 이메일로 공유했다. 미국 유학 도중에 한글판을 사다니 아이러니하다.
고등학교 시절, 어느 날 첫 번째 전집을 읽고 있었다. (기억은 첫 번째 전집이지만, 사실은 두 번째 일 수 있다.) 볕이 좋았다. 햇볕이 들어도 덥지 않아 책 읽기 안성맞춤이었다. 그날 따라온 방이 하얗게 보였다. 내 방은 현관 바로 앞이라 가족이 외출을 하지 않는 이상, 지나칠 일이 없다. 그래서 나는 방 문을 닫고 생활한 적이 없다. 외출하는 엄마는 나를 보며 평생 책만 읽으며 살고 싶지 않냐고 물었다.
'모이라 (그리스 운명의 여신)'는 엄마의 말을 듣고 운명의 추를 작동시켰다. 당시 엄마는 나를 목사로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이런저런 집회를 끌고 다니고, 성경공부를 시키고, 교회에 꼬박꼬박 다니게 했다. 그런 엄마의 행동보다, 평생 책을 읽으며 살고 싶지 않냐는 질문이 더 생생하게 기억난다. 목사보다는 신학 교수가 났겠다 싶어서 종교철학으로 유학을 떠났을 때도 그 말이 생각났다. 박사가 되지 못해 한국에 돌아왔을 때, 그 말은 내 기억에서 자취를 감췄다. 최근 출판사를 열고 다시 생각났다. 그리고 엄마의 말이 내 인생을 견인했다고 여기기 시작했다.
운명은 늘 곁에 있었다. 참 묘하다. 분명 선택은 내가 하지만 돌아보면 운명이 이끄는 기분이 든다. '신'일지도 모르며, '도'이거나 '수학 법칙', 혹은 '세계의 의지'일 수도 있다. 늘 운명을 외부의 거대한 힘이나 의지로 생각했다. 플랭팅가의 짧은 글 (완벽한 세상은 자유가 필수라는 글)을 읽으며 개인의 선택과 자유에 대해 더 확고하게 생각했다. 여태 운명에 대해 너무 크게 생각했다. 사무실에서 소속 작가의 글을 읽으며 생각해보니 운명을 움직이는 사람은 엄마였다. 엄마는 개인적인 의지와 상관없이, 나의 운명을 견인하고 있었다. 정말로 함께 밥을 먹으며 무한도전 뉴욕 편을 보다가, 유학 가고 싶다는 나의 말에 가라고 했던 엄마; 엄마의 종교관이 싫어 시작한 종교철학; 평생 책 읽으며 살면 어떠냐는 엄마의 말과 출판사 설립. 엄마는 여전히 정정하시다. 건강하셔서 오래 사실 듯하다. 그래도 엄마가 달리보인다. 내 운명의 살아있는 견인자다. 모이라가 엄마였다. 그러고 보니 존 다도스키 교수가 개인 면담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의 반쪽은 엄마에게서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