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과 글쓰기 일상
고마운 사람, 사랑하는 사람에게 글을 쓸 때 만년필을 뒤집어 쓴다.
만년필을 뒤집어 쓰면 조금 더 가는 글씨가 나온다. 이에프 보다 가는 글씨다. 만년필을 자주 쓰지만 여전히 가는 체를 선호한다. 정갈한 글씨 표현을 할 수 있고, 여백도 넓기 때문이다. 나름 정성 때문에 정갈하게 표현하려고 한다. 카라를 빳빳하게 다리고, 넥타이를 고쳐맨 정갈한 글씨다. 그렇다고 답답한 인상은 주고 싶지 않아 여백을 둔다. 고맙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보이고 싶은 나의 모습이다. 또 여백을 두면 읽는 사람의 눈이 편하니 배려하는 글쓰기이기도 하다.
만년필을 뒤집어 쓰면 닙이 휜다고 한다. 나의 첫 만년필인, 워터맨 만년필을 수리 맡겨야 하는데, 뒤집어 쓴 이유가 가장 크지 않을까 한다. 닙에 무리가 간다고 생각한다. 무리해도 고맙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펜을 뒤집어쓴다. 어떻게 생각하면 '희생'이다. 니체는 사람의 '희생'을 어리석은 일이라고 생각했다. 사람이 도구처럼 사회를 위해 희생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말이다. 그런데 도구를 '희생'하는 일은 괜찮아 보인다. 어차피 도구이니 도구를 희생한들 무엇이 나쁠까? 사람 간의 연대는 몇만 원의 도구보다 났다.
글을 쓰는 사람에게 만년필은 당연한 욕망의 대상 (김수영, '가냘픈 역사') 이자 동시에 욕망을 수행하는 도구다. 이보다 중요한 상징이 있을까? 그럼에도 이보다 선행하는 가치가 있다면? 나는 감사와 사랑으로 만년필을 뒤집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