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 굴에 들어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
'행시 2차 시험은 아직 한 달가량 남았구나' 생각하며 브런치에 가입하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또 한 달이 흘러 2차 시험 감독관으로 차출되었던 동기들이 돌아와 감독관으로서의 소회를 나누고 있었다. 공개된 시험지를 보니 너무 어려워서, 내가 예전에 이런 공부를 했었나 하며 잠시 추억에 잠겼다.
고시생 시절 한 해가 바뀌는 것에 별 감흥을 느끼지 못했다. 나의 1년은 항상 행시 2차 시험일을 기준으로 구분되었기 때문이다. 무더운 여름날 2차 시험을 마치고 나서야 비로소 '또 한 해가 흘렀구나' 생각했다. 또 누군가의 한 해가 마무리될 텐데, 부디 후회 없는 일 년으로 기억되길.
오늘은 멘탈 관리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PSAT 각 과목의 실력만큼, 어쩌면 그 이상으로 중요한 요소가 바로 멘탈 관리다. 멘탈이 무너진 상태라면 각 과목에서 본 실력을 발휘할 수가 없고, 이로 인해 각 과목에서 한 두 문제씩만 더 틀리더라도 평균 3~5점 하락하는 건 순간이다. 아무리 준비가 잘 되었고 훈련을 잘 한 사람이라도 시험 당일 멘탈이 무너져 버리면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 과거 전쟁사를 봐도, 전쟁의 승패를 좌우하는 것은 결국 병사들의 '사기'였다.
암기를 통해 실력을 발휘하는 시험이라면 떨리거나 몸 상태가 좋지 않더라도 (노로바이러스 걸린 수준이 아니라면) 큰 영향을 받지 않는다. 그러나 PSAT은 지식 대신 판단력을 평가하는 시험이기에 멘탈이 흔들리는 순간 (뇌절) 판단력이 흐려져 치명타를 입을 수 있다.
그렇기에 PSAT은 언어논리, 자료해석, 상황판단, 그리고 멘탈관리까지 총 4개 과목으로 구성된 시험이라고 봐야 한다. 흔히 멘탈은 타고난다고 말하지만, 꾸준한 훈련을 거치면 멘탈도 강화시킬 수 있다.
강인한 멘탈은 ①실력에 기반한 자신감과 ②익숙한 상황에서 오는 평온심으로 유지된다. ①은 PSAT 훈련을 통해 자연스럽게 배양되는 부분이나, ②는 적극적인 '멘탈 훈련'을 통해 길러야 한다. 멘탈 훈련은 다른 훈련법보다 더 단순하다. 마음가짐을 바로하고 멘탈이 흔들릴 상황을 미리 경험해 익숙하게 만들거나 그런 상황을 제거하면 된다. 평온심을 기르기 위해 마음속에 새겨둘 사실 몇 가지와, 평온심을 기르는 훈련법을 알아보자.
첫째, PSAT은 누구나 긴장된다. 피할 수 없다면 즐기자.
나는 대학시절 교내밴드 활동을 오래 했다. 내가 다루던 악기는 드럼이었는데, 다른 악기와 달리 드럼은 공연 중 실수할 경우 누구나 알아챌 수 있기 때문에 (갑분싸) 무대에 올라갈 때 유독 긴장이 되었다. 동아리 활동을 하던 5~6년간 열 번도 넘게 무대에 섰는데, 무대에 올라가는 횟수가 늘어난다고 해서 긴장이 덜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당시 무대 울렁증(?)을 겪던 내게 큰 위안이 되는 영상이 하나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헤비메탈 밴드의 콘서트 영상이었는데, 멤버들이 무대에 오르기 전 심기일전하는 부분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런데 그 영상에서, 내가 항상 '어떻게 저 어려운 연주를 항상 완벽히 해낼까'라고 생각했던 드러머가 공연 직전 긴장해서 구토하는 장면이 나왔다. 더 인상 깊었던 부분은, 토를 되게 능숙하게 (침 뱉듯이) 하는 데다가 공연 전에는 긴장돼서 항상 이런다며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태도였다.
그 영상을 통해 아무리 실력 좋은 사람이라도 떨리는 것은 정상이고 자연스러운 것이구나 싶었고, 나만 이렇게 긴장되는 게 아니라는 사실에 오히려 안도하게 되었다.
PSAT도 마찬가지다. 나는 PSAT을 치른 첫 해 평균 89.1점이었고, 둘째 해에도 같은 평균 점수를 받아 넉넉히 합격했다. 셋째 해, 넷째 해에는 조금씩 점수가 떨어져 87점대 85점대를 받았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자료해석에서 '계산'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시기에 점수가 더 안 나왔다) 어쨌든 합격선보다는 크게 여유가 있는 성적이었다. PSAT 시험 전날 잠도 제대로 이루지 못하는 수험생들은 PSAT 고득점자를 보며 점수가 잘 나오니 마음이 편안하겠지 생각하지만, 고득점자들도 시험 전에는 똑같이 긴장한다. '작년까지 받았던 점수가 다 운이 따랐던 것이면 어떡하지', '올해 갑자기 무너져버리면 어떡하지'와 같은 생각을 했을 뿐 아니라, 언어논리 전에는 손에 땀이 전혀 나지 않는 체질임에도 손에 땀을 쥐었다. 그렇지만, 긴장은 하더라도 불안해하지는 않았다. 세계적인 드러머도 공연 전에 속이 뒤집어지는 것처럼, 긴장은 너무도 당연한 것이기에 긴장된다는 사실로 인해 불안해할 필요까지는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불안은 내 마음속에서 온다. 불교 용어 중 '미십중'과 '오십중'이라는 용어가 있다. 각각 번뇌가 생겨나는 과정과 번뇌가 사라지는 깨달음의 과정을 이야기하는 것인데, 이에 따르면 번뇌는 마음속에 작은 씨앗으로부터 점점 자라나 머릿속을 지배하게 된다고 말한다. 결국 불안해하지 않기 위해서는 '나 지금 불안해'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이 답이다. 순환 논증의 오류로 보일 수 있는데 (일본 환경부 장관 '고이즈미 신지로', 소위 펀쿨섹좌처럼.."경기가 좋아지면 반드시 불경기에서 탈출할 수 있다.", "하겠습니다. 그것이 약속이니까") 이왕 오류를 범했으니, 한 번 더 강조하겠다. 불안해하지 말자. 나만 긴장되는 것이 아니니.
어차피 긴장되는 상황을 피할 수 없다면 즐겨보자. 롤러코스터를 즐겨 타는 사람은 긴장이 안되고 무섭지 않아서 즐기는 게 아니다. 오히려 긴장되는 상황이 짜릿해서 타는 것이다. 우리도 마음을 달리 먹어보자. 기왕 PSAT이라는 인생의 롤러코스터에 탑승하기로 결정했다면, 짜릿한 긴장의 순간을 즐겨보자.
다만, 긴장은 하되 불안해해서는 안 된다. 원래 이런 시험은 긴장되는 게 당연하고 마음이 평온할 수 없다. 그렇지만 다른 이들도 다 긴장하고 있는 만큼 내가 긴장하고 있다는 사실에 새삼 '불안해할 필요'까지는 없다. 너무 불안할 땐 주위를 둘러보자. 다들 평온해 보여도 사실 떨고 있다. 다 같이 떨 수밖에 없다면 남들보다 조금만 덜 떨어도 이기는 것 아닌가? 버티기만 하면 이긴다니 어떻게 보면 이처럼 쉬운 싸움도 없다. 긴장은 하되 불안해하지는 말자. 화장실 가고 싶을 때 발을 동동 구르는 게 당연한 것처럼, PSAT 시험장에서의 긴장감도 내 멘탈에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라 이 시험이 주는 중압감이 커서 생기는 당연한 현상이다. 꿈을 이룰 수 있는 기회인데 안 떨릴 리가.
둘째, 나에게만 어려운 문제란 없다 (지진은 결코 내게만 일어나지 않는다)
PSAT 시험을 보다가 멘탈이 흔들리는 경우가 있다. 바로 어려운 문제를 맞닥뜨렸을 때다. PSAT에서 어려운 문제야 늘 있기 때문에 한 문제 맞닥뜨렸을 땐 멘탈이 별로 흔들리지 않는다. 어려운 문제가 연속으로 나올 때가 문제다. 앞 문제를 풀지 않고 넘겼는데 바로 뒷페이지에 나오는 문제도 어렵게 느껴지면 수험생들은 '어 이럴 리가 없는데.. 왜 계속 어렵지...? 이번 시험 이대로 망치면 어떡하지?'라고 생각하기 시작한다.
나도 이런 경험이 적지 않았다. 연달아 어려운 문제가 나와서, 두 문제 혹은 세 문제를 연달아 풀지 못하고 넘기는 경우가 더러 있었다. 그때마다 내가 평온심을 유지할 수 있었던 비결은 마음가짐에 있었다. '와 올해 시험 개어렵네 ㅡㅡ^.. 문제를 뭐 이딴 식으로 냈어 ㅡㅡ.. 다른 사람들도 여기서 멘탈 좀 흔들리겠는데..? 그럼 난 여기서 무너지지 않고 끝까지 버텨야지 ㅎㅎ'라고 애써 웃으며 생각했다.
어려운 문제를 연이어 마주했을 때, 혹은 어려워서 넘긴 문제가 많을 때 수험생들은 급격히 불안해 하기 시작한다. 사실 그 불안의 원인은 '풀지 못한 문제가 많아서' 보다는 '나만 이러고 있을까 봐 걱정돼서'에 있는데, 명심하자. 지진은 결코 내게만 일어나지 않는다. 옆 사람을 비롯, 전국 PSAT 시험장에 들어찬 수천수만 명의 수험생들 모두가 동공지진 중이다.
대부분의 수험생은 시험 난이도를 비슷하게 느낀다. 출제위원 및 검토위원들도 마찬가지다. 출제를 위해 준비해둔 예비 문제를 다 같이 풀고 나면, 어떤 문제가 어려웠는지 대부분 견해가 일치한다. "야 23번 이거 뭐야 어떻게 풀어 이걸" 이런 식이다.
셋째, PSAT은 보기보다 어렵지 않다
PSAT 시험장에 들어가는 수험생들은 유독 시험장에서 마주하는 문제를 '어렵게 느끼는' 경향이 있다. 작년까지 십수 년간 출제된 기출문제들보다 올해 시험이 더 어렵다고 느끼는 것이다. 사실 이 느낌은 대부분 기우에 지나지 않는데, PSAT의 난이도가 유달리 높아지는 경우는 도통 없다. 출제위원들은 해마다 문제를 출제하는 과정에서 이전 시험들과 정답률과 합격선이 비슷하게 형성되도록 난이도를 적정 수준으로 맞추기 때문이다. (근래 언어논리가 유독 어려워졌다고 평하는 학생들이 많은데, 절대 내부의 공식 지침이 있어서가 아니다. 굳이 따져보자면 어려운 문제를 즐겨내는 분들이 출제위원으로 선정되었을 뿐이다 나 포함)
특히 PSAT 문제의 생김새가 험상궂다(문제 분량이 길다 = 험상궂다)보니, 싸워보기도 전에 겁부터 먹는 경우가 많다. 특히 언어논리의 지문이 길다거나, 자료해석의 표/그래프의 분량이 많거나 (혹은 그림이 크다거나), 상황판단에서 법조문이 길거나 퀴즈의 조건이 많으면 학생들은 덜컥 겁을 먹는다. 근데 여러 번 훈련하면서 느끼지 않았는가? 문제가 길다고 난도가 높은 게 결코 아니다. 문제의 난이도는 지문의 분량이나 그래프의 형태보다, 선지 내용이나 주제로 인해 결정된다. 오히려 지문이 짧을수록 출제위원들은 선지를 더 꼬아서 내야 하고, 퀴즈 구성이 단순해 보일수록 실상은 어려운 경우가 많다. 즉, 겉보기만으로 문제 난이도를 판단해서 겁부터 집어먹을 필요는 없다는 말이다.
빗대자면 우리는 약 120명의 야쿠자와 싸워 이겨야 하는데, 그중 상당수는 바늘로 찌르면 퐁~하고 터지는 '야쿠자 풍선'이다. 문신을 무섭게 새겼다고 찔러보지도 않고 도망갈 것인가? 그럴 수는 없다. 우선 찔러보고, '오잉 왜 안터지지'하면 그때 호다닥 도망가도 늦지 않다. (야쿠자랑 싸웠다가는 횟감이 될 수도) PSAT 문제의 생김새만 보고 난이도를 판단하거나, 위축되지 말자. 다윗이 골리앗을 잡듯 문제의 실마리 하나만 잘 잡으면 생각보다 쉽게 문제를 풀 수 있다. 눈앞의 허들이 너무 높아 보인다고 도전하기도 전에 물러나지 말자. 우린 우리 생각보다 뛰어난 능력을 갖고 있고, 생각보다 곧잘 해낼 수 있다.
넷째, 눈앞의 문제는 내일이 되면 수많은 '기출문제' 중 하나가 될 뿐이다
PSAT 시험 당일 긴장하는 또 다른 원인은 '1년에 한 번뿐인 시험이 바로 오늘이고, 오늘 나의 1년이 결정되며, 오늘 하루가 내 인생에 어마어마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식으로 굳이 상황을 특별하게 인식하려는 태도에 있다.
저런 생각이 틀렸다는 건 아니다. PSAT 중요하다. 그런데 상황은 특별할지언정 내 눈앞에 놓인 문제는 특별할 것이 하나도 없다. 상황이 엄중하다고 인식된다면 그에 따라 '절대 실수 안 한다'라고 눈을 부릅떠야 하는 것이지, 겁을 먹을 게 아니다. 특히 '대망의 2021년 PSAT 문제가 내 눈앞에..!!'라며 책상 위 PSAT 문제를 엄청난 것으로 인식하면서 접근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래서는 좋을 게 하나도 없다. '이 문제가 바로 올해의 기출문제!!!'라며 특별하게 인식할수록, 더 졸고 긴장하게 되고 불안해질 뿐이다.
조금 다르게 생각해보자. 오늘 내가 마주하는 문제는 불과 오늘 저녁만 되더라도 '05~'21년 기출문제 속 하나로 편성될 뿐이다. 반대로 내가 지난주에 풀었던 작년 기출문제도 작년 이맘때 누군가는 손에 땀을 쥐며 푼 문제다. 이렇게 생각하면 내가 문제를 푸는 장소와 시간만 바뀌었을 뿐, 푸는 문제가 질적으로 달라진 것은 없다. 낯선 문제라고 새삼 더 어려운 것은 아니고, 올해 시험이라고 유별날 것도 없다. 지난주 독서실/학교에서 흘러간 기출문제를 아메리카노 홀짝이며 풀었던 것처럼 자연스러운 자세로 임하자. 올해 문제라고 특별할 건 없다.
다섯째, 이 정도 중압감을 버티지 못하면 현업은 감당할 수 없다
조금 냉정하게 들릴 수는 있지만 꼭 해주고 싶은 이야기다. 놀랍게도 PSAT은 여러분이 앞으로 마주해야 할 여러 가지 상황 중 견디기 쉬운 편에 속한다. 게임으로 치면 일종의 '튜토리얼'일뿐이다. 게임 튜토리얼에서 못하겠다며 포기할 수는 없지 않은가? 튜토리얼은 언제나 그렇듯 누구나 완수할 수 있도록 만들어져 있다. PSAT도 그렇다. PSAT 합격선 까지는 여러분을 포함해 누구나 도달할 수 있다.
행정고시의 사례에 비추어 설명해보자면, PSAT을 통과한 뒤 마주하는 2차 시험에서는 훨씬 큰 중압감을 견뎌야 한다. 2차 시험은 5일간 5과목을 응시하는 방식인데, 한 과목당 10페이지(최대 10,000자) 분량의 답안을 무려 5일간 (매일 2시간씩) 작성해야 한다. 2차 시험은 정말 잔인한 것이, 시험시작 종이 울리고 시험지를 펼쳐 보면 약 30초~1분 사이에 내가 풀 수 있는 문제와 풀 수 없는 문제가 구분되고 사실상 그 순간 내 당락여부도 알 수 있다. (합격한다는 확신은 얻을 수 없으나 떨어질 것이라는 판단은 충분히 가능하다) 5과목 중 한 과목에서라도 모르는 문제가 보인다면 그 해의 합격은 물 건너갔다고 봐야 한다. (붙더라도 성적이 낮아 원하는 부처를 지망하지 못할 확률이 높다) 그만큼 2차 시험의 중압감이 큰데, 문제는 3차 면접은 더 힘들다는 사실이다.
3차 면접은 개인 PT발표, 인성/상황면접, 집단토론의 세 가지로 구성되는데, 다 합치면 하루 3~4시간 동안 면접을 봐야 한다. 시험은 고민하거나 답을 수정할 기회라도 있지, 뱉은 말은 주워 담을 수 없기에 면접에서의 실수는 용납되지 않는다. 질문의 내용과 수준도 높은 편이라, 자칫 상황에 압도되면 말문이 막히기 일쑤고 심한 경우에는 면접 도중 울어서 불합격하기도 한다.
그렇게 3차 면접까지 치르고 무사히 합격하여 실무에 투입되면, 이젠 눈앞의 상황이 더는 '시뮬레이션'이 아니기 때문에 더 큰 긴장감을 안게 된다. 늘 느끼는 긴장은 아니지만, 중요한 사업의 향방을 결정할 때라든지, 현안이 터졌을 때라든지, 혹은 업무 처리상 문제가 발생해 이를 처리할 때라든지, 담당자로서 물러나지 못할 상황은 숱하게 찾아온다. 때론 심장이 두근거릴 만큼 당혹스러운 순간이 올 수도 있고, 도망치고 싶은 순간이 올 수도 있다. 실무가 그만큼 중압감이 크기 때문에 1차→2차→3차로 이어지는 시험 절차를 그토록 어렵게 편성한 것이다. 그러니 마음을 독하게 먹고 PSAT은 이겨내자. PSAT의 중압감은 누구나 버틸 수 있는 수준으로 설계되어 있고, 이조차도 버티지 못할 정신력이라면 이후에는 더 힘들어질 뿐이다. 우리가 해야 할 일과 져야 할 책임은 그보다 훨씬 무거우니, 이 정도는 거뜬히 이겨내자.
앞서 했던 말들이 일종의 격언과 같았다면 (자기 계발서인 줄;;) 여기서부터는 수험생들이 능동적으로 훈련할 수 있는 부분에 대한 서술이다. 멘탈도 훈련으로 강화시킬 수 있다.
첫째, 온실에서 나와 가혹한 환경에서 훈련하자
"옆사람 다리 떨어서 신경 쓰였어", "자꾸 재채기하는 사람 너무 싫어", "시험장이 너무 추웠어(더웠어)"
수험생들이 흔히 하는 시험장 컨디션에 대한 불평불만이다. 다 맞는 말이다. 옆사람 다리 떨거나 기침을 반복하면, 또는 시험장 온도가 안 맞으면 (5급의 경우 손이 얼어서, 7급의 경우 몸이 녹아서) 시험을 치는 데 방해가 되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같은 환경에서도 크게 영향받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거의 영향받지 않는 사람이 있다. 이 또한 타고난 멘탈의 차이로 이해해야 할까?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 사람마다 멘탈의 강인함이 상이한 건 사실이다. (타고난 부분도 있고 후천적으로 형성되는 부분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운동신경을 타고난다는 사실과, 운동을 반복하면 실력이 개선된다는 사실이 양립 가능한 것처럼, 멘털 또한 일부분 타고나는 것이지만 동시에 강화시킬 수 있기도 하다.
많은 수험생들은, 시험장에서의 상황을 가정하고 훈련한다는 명목으로 대학교 빈 강의실이나, 고요한 독서실에서 귀마개까지 낀 채 PSAT 문제를 푼다. 그런데, 우리가 훈련하고자 마련했던 그 조건들(고요한 장소, 아무도 방해하지 않고 집중 잘되는 상태)은 사실 '이상적'이다. 이상적인 상황에서만 훈련해서는 실전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돌발 상황에 슬기롭게 대처할 수 없다. 군사 훈련도 (군대 이야기;;) 실제 전장과 유사한 조건에서 이루어질수록 효과적이지, 이상적인 (적군은 총도 없고 나는 완전 무장 = 예비군 훈련 ㅎ) 상황에서만 훈련을 해서는 효과를 보기 어렵다. 내가 수년간 예비군 훈련을 받으면서 가장 효과적이라고 느꼈던 훈련은 첨단 센서를 몸과 머리에 부착하고 10 : 10으로 겨뤘던 서바이벌 게임이었다. 영화 세트장처럼 정교하게 꾸민 시가지 내에서 전술대로 움직이며 전투를 해보니 (총에 맞아 죽어보니) 바닥에 엎드려 총을 쏘던 것보다 훨씬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흔히들 군대에서 전역하고 나면 '뭐든 할 수 있다'는 마음이 생긴다고 하는데, 그건 그만큼 군대에서의 생활이 (엉망진창이고 열악하고) 힘들어서 그런 것이다. 산전수전 다 겪고 와야 강인한 멘탈을 지닐 수 있다.
PSAT도 마찬가지다. 너무 정제된 상황에서만 훈련해서는 실전에서 무너지기 쉬운 온실 속 화초가 될 뿐이다. 정제된 상황에서의 훈련도 좋지만, 때론 조금 열악한 상황에서도 훈련해보자. 내가 즐겨 썼던 방법은 카페에서 문제 풀기, 노래 들으며 문제 풀기(이건 의도했다기보단 노래가 좋아서 끌 수 없었던 것 ㅎ) 등이었다. 카페에서 PSAT을 풀어보면 알겠지만 처음엔 엄청 집중도 안되고, 옆에서 대화 나누는 사람들에게 짜증 나기 일쑤다. 그렇지만 익숙해지고 나면 어느새 옆 사람에게 신경 쓰기보다는 문제에 집중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 노래 들으며 푸는 건 더 자극적(?)인 훈련법이다. 정말 집중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대신 노래를 들으면서 풀다가 노래를 끄면, 갑자기 집중이 훨씬 잘 됨을 느낄 수 있다. 이처럼 열악한 환경에서 PSAT 훈련을 한 사람은 시험 당일 옆 사람이 다리를 떠는 등 이상한 행동을 하더라도, 멘탈을 놓치지 않고 집중력을 유지할 수 있다.
둘째, 징크스(Jinx)의 반대, 나만의 루틴(Routine)을 만들자
징크스의 사전적 의미에 대해서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러나 '루틴(Routine)'은 어릴 때 영어 단어장에서 '일상', '습관' 정도로만 외웠지, 이것이 징크스의 반대 의미임을 아는 사람은 생각보다 적다.
어학사전(출처: 네이버 국어사전)에 따르면, '루틴'은 다음과 같은 의미이다.
(명사) 체육 운동선수들이 최고의 운동 수행 능력을 발휘하기 위하여 습관적으로 하는 동작이나 절차. 예를 들어 어느 한 선수가 경기 3시간 전부터 운동장을 꼭 15바퀴 뛰고 체조를 한다거나, 운동장의 선을 밟지 않고 선수 대기실로 들어가는 것 따위가 이에 해당된다.
루틴을 그냥 미신으로 치부하고 괄시하는 경우도 많은데, 미신과는 조금 다르다. 미신이 불확실한 대상에 대한 믿음을 품는 것이라면, 루틴은 주어진 상황에 더 집중하기 위해 머릿속을 정리하는 행위에 가깝다. 세계적 테니스 선수 라파엘 나달이 경기 때 지키는 루틴이 13가지(혹은 그 이상)에 이른다는 사실은 유명한 이야기다. (어깨 만지고 코 쓸기, 물병 세워두기 등등 죄다 사소한 것들이다) 나달이 루틴에 대해 인터뷰한 내용이 있어 인용한다.
나달은 이런 행동에 대해 "예를 들어 생수병 2개를 내 벤치 앞에 왼쪽에 놓는 행위를 미신으로 볼 수도 있지만 그게 아니다"라며 "미신이라면 왜 지고 나서도 이런 행위를 계속하겠느냐"라고 되물은 적이 있다. 그는 "이런 것은 나 자신을 경기에 온전히 임하도록 하는 행위"라며 "주변 환경을 정리해야 내 머릿속도 더 잘 정돈되는 느낌"이라고 설명했다.
앞서 10번째 글(10. 시험을 열흘 앞둔 그대에게)에서 내 루틴을 소개한 바 있다. 나는 시험 당일 과목별로 실수를 정리한 A4용지와, 기출문제 1~2페이지, 필기도구, 편의점 스*벅스 커피(일 년 중 오직 시험 치는 날에만 마신다. 시험 종류와 무관히.), 페*로로쉐 3구(이것도 평소엔 거의 안 사 먹는다), 핫*스(이것도 시험 치는 날에만 산다) 정도를 챙겼으며, 시험 전날에는 결코 PSAT 문제를 풀지 않았다.
루틴은 깨지는 순간 징크스로 돌변하는데, 그렇기에 사소한 것이라도 자신의 루틴을 지키는 것이 바람직하고, 이미 형성된 루틴을 애써 무시하거나 없애려 할 필요도 없다. 루틴의 규율(?)을 지키는 것이 크게 어렵지 않다면, 루틴을 지킴으로써 주어진 상황에 더 집중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한 발 더 나아가, 자신의 루틴을 적극적으로 파악할 것을 권한다. 루틴은 맹목적으로 무언가를 믿는 미신과는 달리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만큼, 분명 무의식 중에 혹은 의식적으로 지켜온 행위가 있을 것이다. 그 루틴을 찾고 따름으로써 심리적으로 안정된 상황을 만들어낼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최소 한 문제, 아니 두 세 문제까지도 더 맞힐 수 있을 것이다. (앞서 말한 적 있지만 세 문제면 행정고시 PSAT기준 평균 2.5점에 달한다) 루틴을 지키는 것은 일종의 강박적 행위이지만, 그 강박을 유지함으로써 심리적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다면 오히려 좋지 않은가?
위 내용은 모두 내가 고시생 시절 품었던 마음가짐이자, 실행에 옮겼던 훈련들이다. 연습 때 잘 풀다가도 시험장만 들어가면 머릿속이 하얘지고 활자가 눈 위에 둥둥 떠다니는 상황이라면, 마음을 독하게 먹고 PSAT을 너무 두렵게 생각하지 않아야 한다. 겁을 먹게 되면 다리가 저리고 몸이 말을 안 듣는 것처럼, 지나치게 위축되면 될 일도 안 된다. 남들 슥슥 푸는 시험에서 혼자만 벌벌벌 떨고 있어봐야, 어디 가서 위로받기도 힘든 게 사실이다. 긴장이 될 때면 주위를 둘러보고, 똑같이 긴장한 주변 사람들을 보면서 나의 긴장과 불안을 조금 내려놓아보자. (나를 객관화해서 관찰하는 것도 괜찮다. TV 속 화면을 통해 나를 관찰한다고 생각해보자. 시험 보러 가서 떨기만 하고 문제는 손도 못 대고 있다면, 시청자 입장에서도 답답하고 한심해 보이지 않을까?) 결국 풀어야 붙을 수 있다. 모든 멘탈관리의 시작은 굳은 마음가짐과 이겨낼 수 있다는 용기로부터 출발함을 명심하고 언어/자료/상황 훈련만큼이나 멘탈 관리를 충실히 하자. (멘탈이 흔들릴 때마다 이 글을 다시 읽기를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