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누구도 속 시원히 알려주지 않던 이야기
"합격생은 하루 몇 시간이나 공부할까?"
이는 내가 초시생 무렵부터 품었던 궁금증이자, 합격 후에도 적잖이 받았던 질문이다.
'얼마나 공부해야 하는지'는 수험생이 자신의 공부량을 파악하고 조절하는 데 있어 정말 중요한 지표임에도, 주변 선배나 합격생들은 이 질문에 도통 진지하게 답해주지 않는다. 그도 그럴 것이, 정답이 없기 때문이다. 공부시간은 지능에 반비례한다. 똑똑하면 조금 공부해도 되고, 똑똑하지 않다면 오래 하면 된다. 여기서 얻어야 할 교훈은 똑똑하거나 똑똑하지 않거나 어쨌든 '된다'는 것이다(?).
나도 통계조사를 해본 적이 없어서 정확히 몇 시간이나 공부해야 합격하는지는 답해주기 어렵다. 그래서 단순히 나의 사례만으로 섣부른 일반화를 해보고자 한다. 내 지능이 그렇게 뛰어나진 않아도, 평균 이하는 아닐 테니(설마) 대충 다른 합격생들도 엇비슷하게 공부했을 것이다. 고시생 시절 내 하루 일과는 주중, 토요일, 일요일로 구분해 다르게 구성(?)되었다.
1) 평일
합격하던 해를 기준으로, 나의 주중 기상시간은 오전 7시였다. 나는 신림동 원룸에서 자취하면서 3순환 강의를 들었는데 (*3순환 : 행정고시 학원 강의는 1~4순환으로 이루어지며, 3순환은 2차 시험 직전, 가장 중요한 시기에 듣는 심도 있는 강의다) 오후 1시~5시에 열리는 현장 강의의 시간이 애매해서, 오전 8시~12시에 진행되는 영상강의를 들었다. (전날 진행된 현장 강의를 다음날 오전, 학원 벽걸이 TV로 재생해주는 말도 안 되는 강의인데, 수강료도 현장 강의와 만원 정도밖에 차이가 안 난다. 한 마디로 수험생을 빙다리 핫바지로 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고시생 시절, 합격한 뒤 규제 부처에 가서 학원들을 응징하리라 마음먹었었다) 수강료는 정말 납득하기 어려웠지만, 내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한 궁여지책이었다. 오전 8시~9시에는 50점 답안(총 5페이지의 답안지를 한 시간 동안 작성한다. 본래 행시 2차 시험은 10페이지를 작성해야 하는데, 그 절반만 쓰는 것이다)을 쓰고, 9시부터 12시까지 강의를 들었다.
12시~12시30분 정도에 강의가 끝나면 근처 고시식당에서 식사를 했다. 고시식당은 뷔페식이어서 시간을 절약하기 딱이었는데, 입맛에 맞는 식당을 선택하면 끼니당 3000원 밑으로 꽤나 괜찮은 식사를 할 수 있었다. (사람마다 선호하는 식당이 다르므로, 처음부터 월권을 끊지 말고 여기저기 한 끼씩 먹어보고 결정하자) 무엇보다 식사 시간이 15분 정도밖에 안 걸려서, 시간이 금인 고시생에게는 이만한 곳이 없었다.
식사를 마치면 소화도 할 겸, 10분 정도 고시촌을 산책했다. 그리고 커피를 사서 독서실로 돌아와, 대략 30분 정도 잠을 청했다. 졸리지 않아도 잠은 꼭 자려고 했는데, 이때 잠시 자두는 것이 오후 시간 공부효율에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을 수험생활 3~4년이 되어서야 깨달았기 때문이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기력을 회복하기 위한 낮잠을 'Power Nap'이라고 한다더라) 아무튼, 파워냅을 '반드시' 청하고, 13:30부터 공부를 재개했다. 17:30~18:00까지 공부를 하고 나면, 저녁을 먹었는데 역시 평일에는 대체로 고시식당에서 식사를 했고 18:20 쯤 식사를 마쳤다. 쳇바퀴를 도는 햄스터처럼 10분간 산책을 하고, 18:30부터 다시 책상에 앉았다. 그리고는 대략 23:00~23:30까지 독서실에서 공부를 했다.
23시가 넘어가기 시작하면 슬슬 눈이 침침하고 피곤해지기 시작하는데, 나는 이 시간쯤에는 더 이상 버티기 힘들어 독서실에서 도망치듯 빠져나와 원룸으로 향했다. 물론 공부를 끝내기에는 이른 시간이므로 원룸에 도착하면 취약 과목의 기본서를 20분 정도 읽었다. 공부를 정말 하기 싫을 때는 '양'이 아닌 '시간'으로 계획을 세우는 것이 적잖은 도움이 된다. 예를 들어 '기본서 20페이지 읽기'는 집중하지 않으면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리거나 달성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지만, '기본서 20분간 읽기'는 아무리 나태하게 읽더라도 20분만 채우면 되기 때문에 달성하기가 쉽고, 계획을 지켰다는 사실이 나 자신의 자존감과 성취감, 그리고 기분을 나아지게 하는 부수적인 효과까지 주기 때문에 좋다. 아무튼 나는 당시 정치학이 취약 과목이었기 때문에 정치학 기본서를 20분~30분간 읽고 핸드폰 게임도 조금 하고, 그렇게 1:00~2:00 사이에 잠이 들었다.
2) 토요일
토요일의 일과는 평일과 거의 동일했다. 동일했지만 다른 점이 있다면 공부를 22:30~23:00 정도에 끝냈다는 것? 그리고 집에 갈 때는 반드시 닭강정과 캔맥주 하나를 사서 돌아갔다. 내가 공부하던 당시 인기 있었던 TV 프로그램은 '윤식당'이었는데, 밤에 윤식당 한 편을 보면서 닭강정과 맥주를 곁들이면서 한 주간의 스트레스를 해소하고자 했다. 그리고 다음 날은 일요일이므로 새벽 두 시까지 놀다가 잠들었다.
3) 일요일
일요일에는 늦잠을 잤다. 9시~10시쯤 일어나, 고시식당이 아닌 일반 식당에서 아점을 먹고 근처 카페로 향했다. 카페에서 대략 15~16시까지 그 주에 미처 못했던 공부나, 이해되지 않았던 부분을 '게으르고 나태하게' 훑었다. 일요일은 어쨌든 회복과 휴식이 메인 테마였으므로, 절대 주객(주: 휴식, 객: 공부)이 전도되지 않도록 노력했다. 오랜 수험생활 경험상, 호흡이 긴 공부일수록 반드시 일정 텀을 두고 휴식시간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아무리 성능 좋은 핸드폰이라도 충전기 없이는 버틸 수 없다) 그리고 저녁 시간에는 또 다른 카페에서 복습 또는 밀린 공부를 조금 더 하고, 12시 이전에 잠을 청했다.
스톱워치로 재본 결과, 평일에는 하루 10시간 남짓의 순공부시간(학원강의 듣는 시간 제외)을 기록했고, 토요일에는 평규 8~9시간, 일요일에는 거의 잰 적이 없지만 대략 3~4시간 정도 공부했다. 대략 일주일 60시간 정도였는데 이 이상으로는 공부를 더 하더라도 한계효용이 크지 않다고 생각했다.
내가 공부를 얼마나 하고 있는지 충분한 양을 하고 있는 것인지 궁금하다면 시간을 재보자. 나도 스톱워치로 시간 재는 걸 좋아하는 편이 아닌데, 한 번 재보니 그날 얼마나 집중했는지 알 수 있어 좋았다.
정리하자면 아래 그림과 같다. 참고로 아래 일과는 가장 가열차게 공부하는 3순환 기간(매년 3월~6월, 4개월)의 스케줄이고, 그 외의 기간에는 순공부시간 기준 하루 8~9시간 정도 공부했다. 초시~재시생 무렵에는 이런 공부 스케줄을 전혀 지키지 못했고, 합격하던 해에 들어서야 이렇게 공부량을 뽑아낼 수 있었다. 좀 더 일찍 깨달았다면 더 빨리 합격했을까..?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합격하던 해만큼은 물은 100도씨에서 끓는다는 말을 되새기며 99도씨에서 그치지 않도록 이 악물고 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