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인적성 평가는 '지식'이 아닌 '능력'을 요한다
우리 사무실에는 한창 LEET를 준비 중인 직원이 있다. 일하느라 피곤할 텐데도 퇴근 후 도서관으로 달려가 밤늦게까지 공부를 한다. 열심히 하는 걸 알고 있기에 직원 모두가 한마음으로 응원하고 있는데, 얼마 전에는 이제 시험이 얼마 남지 않았다며 저녁 술자리에도 당분간 부르지 말아 달라는 부탁을 남겼다. (저녁 술자리가 흔히 생각하는 소주 마시면서 달리는 그런 회식은 아니다. 우리 부처에서는 저녁에도 파스타에 와인을 곁들이거나, 가볍게 치맥을 하는 경우가 많다)
최근 함께 점심을 먹으러 가는 길에 직원은 문득 RNA와 DNA의 개념을 이해하기 너무 어렵다는 얘기를 꺼냈다.
"갑자기 웬 RNA?"
나, 그리고 같은 과에 있는 후배 사무관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되물었다. 그리고 이어진 이야기는 탄식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자신이 살면서 이과 공부를 해본 적이 없다 보니 LEET 언어이해 과목에 항상 등장하는 이과 지문이 도통 이해되지 않아 최근 RNA와 DNA에 관련된 교양서적을 읽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PSAT에 관심이 지대한 (지대함을 넘어 브런치에 글까지 쓰는) 나로서는 오지랖을 부릴 수밖에 없었다.
"쌤(우리 회사에서는 주무관님들을 선생님, 쌤이라고 부른다), 혹시 누가 그렇게 하라고 조언해준 거예요?"
"제가 듣는 인강 강사가 지문 내용이 도통 이해 안 되면 관련 서적을 좀 읽으라고 하더라고요"
"그 강사, 리트 쳐본 적 있대요? 없대죠?"
"어떻게 아셨어요? 이 분은 행정학 전공 교수 출신인데"
조금 더 대화를 나눠본 결과 그 인강은 그간 내가 지적해온 문제점을 집대성한 수준이었다. 머나먼 세종에서도 듣고 있을 정도라면 어느 정도 인지도가 있고 수강생을 확보한 강사일 텐데도 불구하고, LEET 언어이해 과목의 (LEET 언어이해는 PSAT 언어논리와 상당히 유사하다, 차이점을 간략히 말하자면 LEET는 일반적으로 한 지문당 여러 문제가 엮여있고 PSAT은 한 지문당 한 문제라는 점 정도?) 문제를 유형별로 완전히 해부해서 가르치고, 심지어 배경지식이 부족한 학생들에게는 관련 서적을 읽어볼 것을 권하고 있었다.
비록 리트 언어이해가 PSAT 언어논리보다 지문도 길고 난도도 높다고는 하지만, 그렇다 해도 기본적인 대비법은 다르지 않다. 과연 배경지식을 익힐 필요가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니다. 배경지식이 필요하지 않다는 이야기는 앞서 총론에서도 각론에서도 언급했던 내용인데 여전히 잘못된 길을 택하는 사람이 많은 것 같아 한번 더 강조하고자 한다.
PSAT, LEET 모두 '적성평가'에 해당한다. 지식이 아닌 능력(적성)을 평가하는 시험이라는 이야기다. 말인즉슨, 지식을 평가하는 시험이 아니기에 '공부'가 필요 없으며 대신 능력을 키우기 위한 '훈련'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PSAT과 LEET, 그리고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로 다양한 인적성 평가에서 요구하는 인재상(?)은 '많은 지식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 '새로운 정보를 정확하게 이해하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해야 하는 훈련은 무엇일까? 새로운 정보를 오류 없이 이해하기 위한 훈련이 필요하다. 즉 정확한 독해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독해력을 키우기 위한 훈련법은 앞서 각론을 통해 언급했으니 여기서는 따로 언급하지 않겠다.
"선생님, 그래도 배경지식이 없는 사람보다는 있는 사람이 유리하지 않을까요?"
"선생님은 이미 배경지식을 갖춰서 잘 모르는 거고, 저희는 선생님과 달라요! 지식도 있어야 한다고요"
라는 말을 하고 싶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다행히도 배경지식이 없어도 불리하지 않다. 만일 한국어 실력이 부족해서 글에 나오는 일반적인 단어들이 해석되지 않는 수준이거나, 외국에서 오래 체류해서 한글을 잘 읽지 못한다면 별도의 교양서적을 읽어야 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별도의 교양서적을 읽어야 할 정도로 한국어/한글 실력이 부족하다면 이 시험 말고 외국어를 특기로 살릴 수 있는 다른 직종을 찾아보라고 조언하고 싶다. 결국 이 시험을 응시할 사람이라면 교양서적을 통해 배경지식을 채울 필요는 없다.
여러분의 생각과 달리 배경지식은 독이 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내가 야구 광팬인데 야구에 관련된 글이 나왔다고 해보자. 내가 야구에 대해 잘 안다는 이유만으로 긴장의 끈을 놓게 된다. 다른 지문에서는 그렇게 집중했으면서 이 문제에서만큼은 겁 없이 속도를 내고 심지어 일부 내용은 대충 넘겨버리기도 한다. 지문이 지루하게 느껴져 지문을 읽다 말고 문제 풀이를 시작하고픈 충동에 휩싸인다. 결국 지문에 담긴 정보를 꼼꼼히 살피지 않아 생각지도 못한 실수를 저지를 수 있다. 게다가 나의 배경지식에 오류가 있을 수도 있는데 무슨 배짱으로 지문의 내용보다 나의 배경지식을 더 신봉한단 말인가. 국사 시험처럼 암기한 내용을 바탕으로 문제를 푸는 시험이 아닐뿐더러, 수능 국어처럼 미리 공부한 문학작품이 지문으로 등장하는 것도 아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수천만 권의 책 중 한 권의 내용을 발췌하거나, 혹은 출제자의 머릿속에 담긴 내용을 지문으로 출제하는 시험이다. (LEET도 다르지 않다. 실제 PSAT 언어논리 출제위원 중 많은 분들이 LEET 언어이해 출제위원으로도 활동한다) 배경지식을 쌓아 대비하겠다는 것은 눈감고 배트를 휘둘러 언제 어디서 날아올지도 모르는 공을 맞추겠다는 것만큼이나 무모한 전략이며 그저 운에 의지하는 것일 뿐이다. 미안하지만, 운에 의지해 시험을 대비하는 것만큼 확실하게 불합격하는 방법은 없다.
앞서 이 시험은 '새로운 정보를 정확하게(오류 없이) 이해하는 능력'을 요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정확한 이해는 배경지식이 아닌 집중력에서 나온다. 출제자가 던지는 다양한 스타일의 질문은 사실 지문 속에 등장한 다양한 키워드(A, B, C 등) 사이의 관계를 묻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지문 속에 등장한 다양한 개념 간의 관계를 집중해서 캐치하고만 있으면 결국 A와 B의 개념에 대한 배경지식이 전혀 없더라도 (RNA와 DNA를 모르더라도) 질문에 답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쉽게 생각해보자. 철수와 영희가 주인공인 연애소설을 읽을 때 우리는 전혀 어려움 없이 이야기를 따라갈 수 있다. 그런데 '빌헬름 부쉬'와 '조르주 콜롱브'가 주인공인 연애소설을 읽을 땐 어떨까? 주인공의 이름이 너무 낯설어서 활자가 스무스하게 읽히지 않을 수 있고 이름이 낯설어 누가 남자고 누가 여자인지 도통 구분되지 않을 수도 있다. 이때 글을 읽음으로써 누가 남자고 여자인지 알아채면 그만이다.
그런데 소설의 내용이 잘 이해되지 않아 두 사람의 성별이 잘 파악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빌헬름 부쉬'라는 이름이 지닌 남성성/여성성을 파악하기 위해 독일에서 남녀에게 이름을 어떻게 붙이는지 공부하고, 마찬가지로 '조르주 콜롱브'라는 이름을 통해 성별을 파악하기 위해 프랑스인들의 작명법에 대해 공부하는 사람들이 있다.
누가 이렇게 바보 같은 짓을 하냐고? PSAT 언어논리와 LEET 언어이해의 성적을 높이기 위해 일반교양서적을 읽는 사람도 있는데 그런 사람인들 없을까? 역사 지문이 어렵다고 역사 서적을 닥치는 대로 읽는다고 해도 내가 책에서 접한 내용이 다음 시험에 출제될 확률은 거의 확실하게 0%에 가깝고, 심지어 출제된다고 해도 앞서 말했듯 어설픈 배경지식으로 인해 독이 될 가능성이 높다.
다시 위의 예시로 돌아가자. 빌헬름이라는 이름을 통상 남자에게 붙인다는 배경지식을 갖고 있다 해서 소설을 읽어보지도 않은 채 빌헬름 조쉬가 남자일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나? 확신한다 치자. 그 확신이 틀릴 확률은 얼마나 될까? 그리고 한 가지 더. 소설만 제대로 읽으면 확실하게 알 수 있는 내용을 대체 왜 시간 들여 공부해두어야 하나? 그 공부할 시간에 소설을 제대로 읽는 법을 훈련하는 게 천 번 만 번 낫지 않을까?
자 그럼 우리는 낯선 개념들이 등장할 때 어떻게 대비해야 할까? 빌헬름 조쉬가 등장했을 때 긴장되는 마음을 어떻게 추슬러야 문제를 어렵지 않게 풀 수 있을까? 답은 간단하다. 빌헬름 조쉬를 '철수'로, 조르주 콜롱브를 '영희'로 치환시키면 그만이다. 농담이 아니다. 실제 PSAT 언어논리를 풀다가 너무 어려운 개념들이 줄지어 등장하면, 나는 그 개념들에게 A, B, C와 같은 알파벳 이름을 하나씩 부여했다. 지문에서 개념이 등장할 때마다 붙여둔 알파벳 이름을 그 위에 크게 덧입혔다. 한번 해보자. 이렇게 하는 것만으로도 낯선 개념으로 인한 부담이 한결 가벼워진다.
용어뿐 아니라 개념 간의 관계가 어려울 때도 있다. 특히 이과 지문에서 이런 경우가 많은데, 'A는 B의 개입으로 인해 C효과를 일으킨다.'라고 해보자. A와 B도 처음 보는데, C효과마저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C효과가 무엇인지 그 원리를 이해할 필요는 없다. C효과가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만 이해해보자. C효과가 A에게 긍정적인 변화를 이끄는지 부정적인 변화를 이끄는지 이해하는 것만으로도 문제를 푸는 데 큰 도움이 된다. 그리고 C효과가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는 지문에 반드시 제시되어 있다. 여러분이 발견하지 못했을 뿐. 지문을 잘 읽어 C효과가 어떤 녀석(?)인지 알아보면 된다.
'배경지식이 필요한 문제는 출제를 지양할 것'
출제 지침에 명확하게 안내되어 있다. 지침에만 나오는 형식적인 문구가 아니다. 실제 기출문제를 사전 검토할 때 '배경지식을 요하는지' 여부를 굉장히 엄격하게 따진다. 이는 '지문에 나오지 않는 지식이 문제의 정답 도출에 현저하게 유리하게 작용하는지' 여부로 판단한다.
이에 그치지 않는다. 이과 지문을 출제할 때에는 일부러 지나치게 전문적인 내용은 지양하고, 이 분야에 대한 지식이 전무한 사람이 읽어도 한 번에 이해할 수 있도록 지문을 구성한다. 지문에 등장하는 개념이 너무 난해할 경우 (분야에 관계없이) 일부러 첫 문단에 개념(키워드)을 설명하는 문단을 추가하거나, 경우에 따라서는 해당 문제를 폐기한다. 이것이 별도의 시간을 들여 배경지식을 쌓을 필요가 없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