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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할때하자 Sep 03. 2022

고시 공부에는 휴학이 필수인가요?

휴학 계획 짤 때만큼은 파워 J가 되어보자


  입직 후 처음으로 여름휴가를 다녀왔다. 여태까지는 여름휴가 시즌에 현안이 발생하거나 부서 이동을 해야 했던 관계로 도무지 쉴 틈이 나질 않았다. 이번에도 역시 여유는 없었지만 쉬지 않고 일해봐야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는 사실과, 작년 10일의 휴가를 버려야 했던 (저축도 되지 않았고 금전적 보상도 없었다) 비극이 떠올라 비행기부터 끊었다. 우여곡절 끝에 친구들과 3박 5일간 베트남에 다녀왔고 모처럼 편하게 쉬었다.


  달력을 보니 오늘은 행정고시 2차 시험 합격자 발표일이다. (하루 앞선 어제저녁에 발표가 났다) 돌이켜보면 옷장에서 긴팔 티를 찾게 될 때쯤 합격자 발표가 나곤 했다. 2차 시험에 합격한 사람은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마지막 관문인 3차 시험을 준비하겠지만, 고배를 마신 이들은 다시 달릴 채비를 해야 할 때다.

  고시 합격 후 1년 간 학교에서 상담 아르바이트를 했었는데, 이 무렵 수없이 들었던 질문이 기억난다.


저 이번 학기 휴학해야 할까요?  
  

  오늘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하려 한다.



1. 시험 일정 파악하기


  행정고시(5급 공채)는 1년에 한 번, 추운 연초에 시작해 더위가 가고 찬바람이 돌아올 때쯤 끝난다. 시험은 1차~3차로 구성되는데 3차(면접)는 최종합격자의 1.3배수만 두드릴 수 있는 문이라 극소수에게만 해당되고, 대체로 1차, 2차 시험에 따라 공부 스케줄을 잡게 된다. 올해의 시험일정을 살펴보자.



  보면 알겠지만 제대로 공부하는 고시생이라면 1학기(3월~6월, 봄학기) 휴학은 불가피하다. 간혹 "초시생(또는 입문 예정)인데 첫 학기는 학교 다니면서 준비해도 되지 않나요?"라는 질문을 듣곤 하는데, 후술 하겠지만 기초를 탄탄히 다지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학교 공부를 하며 고시공부를 병행하는 것은 사실 썩 좋은 전략은 아니다. (자세한 내용은 후술 하겠다) 다만 학기 이수를 위해 학교 공부와 고시공부를 병행해야 한다면.. '나는 어차피 고시 볼 거니까 학점 노상관임'하지 말고 학점에도 신경 쓰자 꼭. (고시생에게도 학점은 중요하다. - 이상 학점 중요치 않게 생각했다가 인생 실전 맛본 1인)



2. 휴학 계획을 짤 때 유의할 점


 행시는 합격 후 유예가 1년밖에 허용되지 않고, 휴학 가능한 학기도 한정적이므로 무작정 휴학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현행 제도상 합격 후 쉬지 않고 학교에 다닐 경우 연수원 입소 전까지 최대 4학기를 다닐 수 있다. 휴학 계획은 공부 계획 이상으로 중요한 만큼 몇 가지 원칙을 기준으로 면밀히 짜야한다.   



1) 2학년까지는 마치자 (4학기는 이수하자)


  새내기이거나 2학년이라면 (군대에 다녀왔더라도 이수학기가 4학기가 안 된다면 마찬가지다) 우선 학업을 이수해야 한다. 최소 4학기는 이수하자. 합격 시점을 기준으로 5학기 이상 남으면 졸업이 고시 합격보다 어려운 과제가 될 수 있다. (고졸로 끝낼 거야?)

  일찍 합격하는 것은 모든 수험생의 꿈이지만 막상 너무 일찍 합격해버리면 입직하기까지의 시간을 초과학점/계절학기로 꽉 채워야 할 뿐 아니라 연수원 입소 후에도 (교수님께 이메일로 싹싹 빌면서) 중간중간 학교를 오가야 한다. 학점도 망치고 (유학 안 갈 거야?) 연수원 성적도 낮아져 (아무 부처나 들어갈 거야?) 인생이 험난해질 수 있다. 에이 설마 제가 그렇게 빨리 붙겠어요? 싶겠지만 이런 사례는 제법 있다. 글을 쓰는 지금도 머릿속에 떠오르는 친구들이 있다. (다들 합격하고 미친 듯(몇몇은 ㄹㅇ도랏맨이 된다)이 노는데 나만 학교를 2년이나 더 다녀야 된다고? 차라리 죽여줘)


2) 초시생 때 의욕만 앞선 휴학은 독이 될 수 있다


  고시 공부는 솥에 물을 끓이는 과정과 비슷하다. 초시생 때 예비순환을 들으며 과목별 기본 지식을 쌓는 것은 장작을 패는 것과 같다. 장작을 충분히 패 두지 않으면 물이 끓기까지 충분한 화력을 낼 수 없다. 누가 먼저 장작에 불을 붙이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관건은 얼마나 힘 있는 불을 피우느냐에 달렸다.

  갑자기 왜 이런 이야기를 하냐면, 많은 사람들이 초시생 시기를 너무 가볍게 보기 때문이다. 일종의 '맛보기'로 생각하고 할랑할랑~ 놀면서 가볍게 겉이나 핥아봐야겠다고 생각한다. 오산이다. 초시생 시기가 다른 시기보다 가볍게 여겨질 이유는 전혀 없다. 첫 1~2년간 배우는 내용이 3~4년 차에 배우는 내용보다 곱절은 많다는 걸 생각하면 초시생 때가 제일 중요하다고 볼 수도 있다.

  그렇다고 초시생 때 무작정 휴학을 하라는 이야기는 결코 아니다. 휴학은 한정되어 있기 때문(보통 6학기 정도인데, 각자의 학칙을 살펴보자)에 낭비해서는 안 된다. 매년 1학기에는 2차 시험을 위해 휴학해야 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2차 시험을 세 번만 보더라도 3번 휴학해야 한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초시생 때(예비순환 들을 때)는 휴학보다는 학업과 병행하면서 최대한 고시에 최적화된 생활패턴을 익히는 것이 좋다. 관련 수업(경제학, 행정학 전공수업 등)을 신청하고, 공강 때는 습관적으로 독서실에 갈 것을 권하며, 이외에도 평일저녁/주말에 고시 공부할 시간을 따로 확보해야 한다. 앞서 얘기했듯 중요한 시기이니 방학 때 공부에 전념해야 함은 당연하다. 그간 당연히 여겼던 대학생으로서의 행복한 캠퍼스 라이프는 당분간 접어두어야 한다. 술 마시고 아르바이트하고 동아리 하고.. 이렇게 저렇게 하고 싶은 모든 걸 다 하면서 원하는 것을 얻을 수는 없는 법이다. 세상은 그렇게 호락호락하게 설계되지 않았다.

 + 노파심에 한 마디 더하자면 공부 진도가 빠르지 않다고 조바심 내지는 말자. 급할수록 돌아가라고 했다. 이해도 못한 상태로 인강 진도만 빼는 것은 젖은 장작을 수없이 만들어내는 짓에 불과하다. 결국 마른 장작을 패기 위한 수험 기간만 늘어날 뿐이다. 성실하게 공부하고 있다면 남들보다 느리더라도 괜찮다. (토닥토닥)

 

3) 퐁당퐁당 휴학보다 쭉 휴학하는 것이 좋다


  고시공부를 하다 보면 1학기는 일정상 휴학할 수밖에 없다. (1차 시험에 불합격했다면 다닐 수도 있겠지만 별로 권하고 싶지는 않다. 3순환을 똑같이 따라가야 이듬해 합격할 수 있는 실력이 배양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관건은 2학기 휴학 여부가 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내년에 최종 합격하고 싶다면 올해 2학기는 휴학하는 것이 좋다. 한창 솥에 열을 가하다가 불을 중간에 꺼버리면 어떻게 될까? 보나 마나 뻔하다. 물이 식는다. 그리고 불씨가 꺼진 장작에 불을 다시 붙이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1학기는 휴학하고, 2학기는 다시 학교 다니고, 이듬해 1학기에 휴학하고.. 초시생 때와는 다르다. 초시생때는 장작을 패는 과정이므로 애초에 불을 붙이질 않았기 때문에, 학교 공부와 병행한다고 해도 치명타를 입지는 않는다. 그러나 한창 2차 공부에 전념하다가 학교에 복학하면? 불은 꺼질 수밖에 없다. 3순환 기간에 실컷 했던 답안 작성 능력도 금세 폼이 떨어지게 되고, 쌓았던 많은 지식들이 날아가거나 뒤틀린다.

  누차 말하지만 물은 100ºC에서 끓는다. 내년 합격을 목표로 삼을만한 시기라면 2학기 휴학을 권한다. (3순환을 한 바퀴 이상 돌렸고, 2차 시험을 두 번 이상 봤거나 시험장에서 답안을 끝까지 작성(점수와 무관히)할 정도라면 내년 합격이 가능하다)

  (경험상) 2학기에 아무리 열심히 하더라도 학기와 병행해서는 휴학생보다 효율적/효과적으로 공부하기 어렵다. 나는 2015년 2학기에 학교를 다니며 아침 7:20 출첵 저녁 11:30 퇴첵 스터디를 함께 했었는데 학점도 그냥저냥 공부 효율도 그냥저냥이었다. 반면 2016년 2학기에는 휴학을 했는데, 기본서도 다시 읽고 (이듬해 3순환 시기에 강한 불을 태우기 위한 장작패기를 했달까) 답안도 많이 쓰면서 정말 많이 성장했다. 그 결과 2017년 좋은 성적으로 합격할 수 있었다.  

 

4) 연수원 입소 시점(합격 이듬해 5월)을 기준으로 18학점을 남기자 (for 유예)


  현직 사무관 친구들끼리 업무에 치여 고통스러울 때마다 웃으며 하는 이야기가 있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시험에 합격하고 싶었던 거지, 일하고 싶었던 건 아니었어"


  합격하고 국가를 위해 헌신하고 싶은 누군가가 듣는다면 혀를 끌끌 차거나, 고개를 갸우뚱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실제로 격무에 시달리다 보면 생각이 달라진다. 새벽 세네시까지 일하고, 주말에도 출근하고, 휴가도 제대로 가지 못하고 그렇게 젊음을 세종에서 태우다 보면 장담컨대 뭔가 단단히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 게 분명하다. 미안하지만 이곳은 사기업이 아니기 때문에, 노동에 대한 정당한 금전적 대가도 바라기 어렵고 성과에 대한 뚜렷한 보상도 기대해서는 안 된다. 분명 일은 내가 많이 했고 모든 역할도 나에게 쏠려있음에도 성과를 매길 때에는 '근무연수'가 짧다는 이유로 '최하위' 평가를 받는 경우가 부지기수고, 특히 고시 출신 사무관들에게는 잔인할 정도로 일이 몰린다. (너 젊고 능력 있다며. 해 그럼)

  갑자기 왜 이렇게 절망적인 이야기를 하냐고? 합격 후 유예가 그만큼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매년 10월 고시에 합격하고 나면 이듬해 5월에 연수원에 들어가게 되는데 연수원 입소 시점을 기준으로 이수해야 하는 학점이 18학점(1학기) 이상 남은 경우 연수원 입소를 1년 유예해주는 제도가 있다. (건강상의 이유나 임신/출산 등의 사유로는 2년까지 유예가 된다고 알고 있는데, 학업 상의 사유로는 1년이 최대다) 안타깝게도 석사/박사과정에 대해서는 적용되지 않고 학부 과정에 대해서만 적용된다. 유예가 승인되면 1년 반을 쉴 수 있는 셈이다. 우리는 이 제도를 십분 활용해야 한다.

  유예 안 해도 충분히 쉴 수 있다고? 고시공부를 하느라 힘들었던 심신을 달래기에 6~7개월은 턱없이 부족하다. 20대 청춘 절반 가까이를 공부에 쏟아부었는데 붙자마자 일하라고? 그건 절대 절대 절대 저어얼대!! 안 될 일이다. 합격 후 우리의 목표는 유예가 되어야 한다. 나는 유예 기간에 유럽 2번(60일), 미국, 일본(2번, 노재팬 전의 일이다^^;), 홍콩, 대만, 베트남, 제주도(3번) 등을 다녀왔을 뿐만 아니라 브런치 글의 밑거름이 된 PSAT과외, 행정학과외도 했다. 그 외에 합격 동기들(이제는 가장 친한 친구들이 되었다)과 어울려 놀았던 시간까지 따져보면 공부에 바쳤던 4년 여의 시간을 충분히 보상받았다는 생각이 든다. 일하다 힘들 때에도 그 시절 여행사진을 보면서 주머니 속 사탕 꺼내먹듯 스스로를 위로한다. 여러분도 마땅히 그런 시간을 보내야 한다. 내가 유예할 때 먼저 합격한 선배들이 했던 우스갯소리(같지만 사실 팩트 100%)가 생각난다.


"너 지금 같은 시간이 다시 올 것 같지? 빨라도 은퇴하고 60세 이후에 온다. 지금 하루하루 잘 보내"       

  

  써놓고 보니 더 섬뜩하네.. 사족이 길었는데, 요지는 합격했을 때 기준 18학점이 남도록 학점관리(?)를 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속 편하게 졸업하고 공부에 전념하고 싶다고? 왜 굳이? 학교 졸업 일찍 한다고 누가 알아주지도 않는다. 그냥 한 학기 남겨놓고 휴학하며 공부하자. 물론 휴학 학기를 모두 소진해서 눈물을 머금고 졸업해야 한다면 그건 어쩔 수 없다. (쏘 쌔드.. 그러니까 초시생 때 휴학 낭비하지 말자)

  그렇지만 조금만 생각했더라면 충분히 유예할 수 있었음에도 아무 생각 없이 학점을 이수해서 6~7개월 만에 끌려가는 대참사는 일어나지 않게 조심하자. (혹시나 금전적 이유로 일을 빨리 시작해야겠다고 생각한다면.. 정말 심각한 상황이 아니고서야 유예하면서 알바하고 때때로 마이너스 통장을 쓰자. 우리에게 소중한 것은 돈보다 시간이고, 돈(마이너스통장)/시간/체력 세 가지를 모두 누릴 수 있는 시기는 우리 삶에서 유예생일 때가 거의 유일하다)

   

3. 몇 가지 예시


  사람마다 케이스는 다 다르겠지만 그래도 몇 가지 사례를 들어보고자 한다. 주저리주저리 쓰다 보니 말이 길어졌는데, 실은 백 마디 말보다 그림 한 장으로 설명하는 것이 낫다. 아래 그림으로 말을 대체한다. (아이패드로 직접 쓴 것임을 감안하고 보자)







  확실히 사람은 쉬어야 한다. 회사 생각 전-혀 하지 않고 마음 편히 휴가를 다녀오니 글 쓸 힘도 나고 얼마나 좋은지. 이번 추석에는 첫 해외출장 일정이 잡혀있는데, 코로나가 종식되지는 않았지만 이젠 확실히 일상으로 복귀하고 있는듯 하다. 그래도 수험생일 때는 아프면 안 되니까 코로나 조심 또 조심하자.


베트남 푸꿕(Phu Quoc)의 석양, 좋은 휴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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