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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할때하자 May 27. 2023

세종에서는 홈파티를 종종 합니다

세종에서는 이렇게 살아요

  문득 고시생 때 '합격 후의 삶'이 어떤지 아무도 이야기해주지 않아 답답(?)했던 기억이 났다. 그래서 나부터라도 세종에서의 일상을 간간이 전하기로 했다.


 




  '포틀럭(potluck) 파티'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각자 음식을 조금씩 싸와서 나눠 먹는 파티를 의미한다. 형식만 놓고 보면 명절에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지만, 파티라는 단어 덕분인지 가족보단 친구들끼리 음식을 나누어 먹는 모습이 그려졌다. 미드 <프렌즈>의 한 장면을 떠올렸던 것 같기도 하다. 중학교 때 이 단어를 처음 접한 후로 나중에 어른이 되면 꼭 해봐야지하고 가슴 한편에 로망처럼 품어왔는데, 세종시에 내려온 후 로망을 여한없이 실현하고 있다. 물론 실상은 파티라기보다는 소소한 저녁식사에 가깝다.


1. 세종으로의 집단 이주


  매년 약 300명 내외가 행정고시에 합격한다. 총 8개월 가량의 연수(진천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 교육과 지자체 수습근무를 거친다)를 받고, 이중 80% 남짓이 세종시로 내려온다. 240여명의 동기들이 다함께 이주(?)하는 모양새다. 매년 초 세종시의 전월세 매물 품귀 현상이 일어나는 이유다.   

  세종시는 오피스텔 월세(50~60만원)에 비해 아파트 전세가가 낮아(20평대 기준 1억5천~2억원 수준) 제법 많은 이들이 아파트에서 자취를 시작한다. '고시생 때는 서울 원룸에서 살았는데, 합격 후에 충청도 원룸에서 사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는 논리도 한 몫을 한다. 나도 이 논리에 따라 아파트로 들어온 사람 중 하나다.


2. 몇 년에 걸친 집들이 


  아파트에 입주하게 되면 몇 년에 걸친 집들이가 시작된다. (입주한지 몇 년이 되었든 처음 오는 사람에게는 집들이다.) 물론, 말이 집들이지 실은 친구들과 집에서 저녁을 먹고 술을 마시는 것이다. 원룸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그림인데, 안방 문만 닫으면 내 생활공간이 완전히 분리되는 아파트에서는 누군가를 초대하기가 어렵지 않다. 자연스럽게 거실과 화장실 한 개는 게스트를 위한 공간이 된다. (생일 때 받은 비싼 핸드워시는 게스트 화장실에 비치된다. 호텔 어메니티처럼)

  나도 한 달에 2~3번은 집에 친구들을 부른다. 집에서 놀면 같은 돈으로 더 맛있는 음식과 술을 즐길 수 있어 좋다. 술을 즐기지도 않으면서 오직 인테리어 용으로 꾸민 홈바가 모처럼 제 역할을 하게 되기도 한다.  

  

'오늘의 집' 어플이 없었다면 인테리어는 어떻게 완성했을까



3. 진짜 대화는 오직 집에서만


익명성이 보장되는 건 집에 있을 때랑 차에 탔을 때 뿐이야


  회사 동기끼리 심심찮게 주고받는 우스갯소리다. 도시 곳곳에 공무원이 가득하니 밖에서는 어떤 얘기도 자유롭게 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번화가도 몇 군데에 불과하고 맛집도 뻔해서, 어딜가든 아는 사람이 있을까봐 주위를 먼저 둘러보는 것이 습관이 된다. 한 다리 건너 아는 사람도 많으니 말을 아낄 수밖에 없다. (이런 연유로 세종에는 유독 방으로 나뉘거나 칸막이 쳐진 식당이 많다) 회사 얘기뿐 아니라 사생활 이야기도 자유롭지 않다. 흡사 판옵티콘에 갇힌 느낌이다. (회사에 출근하면 주무관님 중 한 분이 '어제 000가게에 계셨다면서요~? 누가 봤다던데?'라고 장난스레 묻는 일도 많다.) 그래서 되도록 집에서 모인다.

  비싼 세종시 물가도 한 몫한다. 세종시 물가는 서울보다 비싸다. 음식도 술도 비싸니 굳이 밖에서 먹을 이유가 없다. 바틀샵에서 2~3만원짜리 와인 한두 병사고, 모이는 길에 치킨, 피자 등을 픽업해오면 하룻 저녁 재밌게 놀 수 있는데, 밖에서 모이면 10만원은 우습게 나오니 어쩔 수가 없다.


간혹 요리솜씨가 좋은 친구를 만나면 엄청나게 호강할 수 있다


  아무튼 이 같은 이유로 홈파티를 종종한다. 여러 부처로 흩어진 동기들과 모여 각자의 회사 에피소드를 나누며 웃고 떠들다보면 그간의 스트레스가 한결 가벼워진다. 자리에 함께하지 못한 동기들의 근황을 공유하기도 한다. '누구는 곧 결혼한다더라', '누구는 이번에 부처 옮긴다던데?' 등의 시시콜콜한 이야기다.

  (소련에 의해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당한 한인들처럼) 항상 서울을 그리워하면서도 세종에서 하루하루 버틸 수 있는 이유는, 함께 웃고 떠들 수 있는 친구들이 있기 때문이다.


 



  스터디원, 카페 옆자리 사람, 혹은 같은 강의를 수강했던 누군가가 동기가 되어 "그때 000선생님 3순환 듣지 않았어? 거기서 본 거 같은데", "너도 그 독서실 다녔어?!"라며 웃고 떠드는 시간은 반드시 온다. 집에 놀러온 친구들 앞에서 해외출장 길에 사온 술을 꺼내들며 "아 이거 귀한건데.."라고 생색낼 시간도 온다. 그러니 힘들어도 꾹 참고 열심히 공부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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