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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채원 Feb 22. 2023

우연적 현상으로서의 가속

어제 아침 생리통이 심해 오전 러닝을 걸렀다. 그럼에도 하루에 할당된 운동 자체를 거르고 싶지 않았다. 다행히 아침보다 저녁에 훨씬 컨디션이 나아져서 근처 중앙공원으로 향했다. 시간대와 장소 상 오래 달릴 생각은 없었으나 그럼에도 5-6km 정도는 달릴 수 있지 않을까 예상했다. 그러나 결과는 3km. 원인에 대해 생각해보자면, 첫 번째는 완벽하지 않은 몸 상태에 있겠고, 두 번째는 변주 없는 코스, 즉 중앙공원 트랙을 따라 달리는 것의 지루함에 있겠다. 나는 더 나아가 세 번째 원인에 주목해보고 싶다. 어제의 달리기에서 나는 가속 상태에 잘 대처하지 못했다.

내가 느끼기에 중장거리 달리기를 할 때 중요한 점은 숨이 차지 않을 정도로 천천히 달리는 것에 있다. 기록 욕심에 너무 빨리 달리면 금방 지치고 숨이 찬다. 수영과 마찬가지로 최대한 일정한 리듬을 유지하면서 몸을 움직여야 끝까지 지치지 않고 달릴 수 있다. 그런데 천천히 느린 속도로 달리더라도 동작을 지속하다보면, 내가 의식적으로 애쓰지 않아도 가속이 붙게 된다. 속도가 확 붙을 때 관건은 가속에 휘말리지 않고 내가 달리는 페이스를 있는 그대로 유지하는 것. 그 지점에서 소위 말하는 엑셀을 밟으며 내 의지로 속도를 올리면 오히려 탈이 난다. 어제 나는 이 부분에 어려움이 있었다. 속도가 붙는 순간 그 즐거움을 조절하지 못하여 스스로 속도를 올린 것이다. 예상대로 금방 지쳤고, 중앙공원 식으로 말하자면 한 바퀴 더 돌기에 역부족이었다. 더 무리하는 것은 또 다른 억지이므로 달리기를 그만 둘 수 밖에 없었다.

어제의 사사로운 좌절에서 나는 꽤나 큰 깨달음을 얻었다. 가속은 우연적 현상이구나. 물론, 가속에 관한 과학적 설명은 충분히 가능하겠으나 달리기를 하는 내 입장에서 가속이란 예상할 수 없는 지점에서 내 노력 혹은 의지 없이 찾아드는 우연적 현상일 뿐이다. 가속을 내 노력으로 불러일으킬 수 있다면 의욕하여 속도를 냈을 때 긍정적인 결과가 나와야 할 것이다. 하지만 오히려 그러한 노력은 달리기 중단이라는 역설적인 결과를 낳았다. 우연적 현상으로서의 가속이 내게 찾아왔을 때, 설령 그것이 나를 흥분케 하더라도 나는 여전히 주어진 페이스를 유지해야 한다. 평정심을 잃지 말아야 한다.

내 삶에도 많지 않지만 크고 작은 가속들이 있었다. 그 때 나는 엑셀을 밟기 급급했다. 나를 더 궁지에 몰아넣고 채찍질하기 바빴다. 나는 내가 더 발전하고 지금보다 더 많은 것을 성취하길 원했고 나 자신에게 엄격한 선생을 자처했다. 삶에서의 가속이란 기대 이상의 성과라는 상징으로 나타나겠다. 이러한 의미에서 나는 성과에 대한 칭찬에 참 취약했다. 삶에서의 가속 양상들 중 하나인 칭찬은 과정의 일부일 뿐, 종결을 의미하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 이후에 해야할 일들을 가속이 붙었던 그때처럼 잘 해내지 못할까봐 두려워하며 책망의 늪에 빠져버리곤 했다. 가속이 주는 쾌락 뒤에 또 다른 가속의 쾌락만을 기대하며 나는 그 늪에서 어찌할 줄 몰랐다. 그래서 칭찬이 두려웠다. 이후에는 반드시 꺽이리라는 머피의 법칙을 스스로 정해놓고 공포에 떨었다. 사실 삶에서 나타나는 모든 형태의 가속은 다 우연적 현상이었을 뿐인데. 너무 들뜰 필요도, 혹은 너무 걱정할 필요도 없이 우연히 나타나는 현상을 지나가는 형태로 받아들이고 보내면 그만이었다. 한편으로 나는 참 의욕적이었다. 지나치게.

건강 등의 조건이 허락하는 한 당분간 나의 달리기는 지속될 것이다. 우연적 현상으로서의 가속을 만날 때 일정한 페이스를 유지하는 작업은 여전히 난이도 있겠으나 분명 기대하고 있는 바다. 내가 그리 집착하였던 평정심은 칭찬에 관한 두려움의 또 다른 형태인데 그건 집착의 대상이 아니었다. 애쓰지 않아도 자연스레 체득되는 것. 의욕을 좀 더 내려놓으려고 한다. 애써서 굳이 달리지 않아도 때때로 나는 빠르게 달릴 수 있다. 멈추지 않은 채로 일정하게 움직이면 된다. 그에 대해서만 집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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