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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mi Jul 21. 2018

무작정 그리스로 떠나다

충동적으로 끊어버린 비행기 티켓


 3년여 간 준비한 시험에서의 최종 탈락, 2차 시험 후 쉬지도 못하고 연달아 준비했던 하반기 취직 실패. 무기력감에 3일 정도 침대에만 누워있다 충동적으로 비행기 티켓을 끊어버렸다. 그것도 열흘 뒤 출발 티켓으로! 언니가 살고 있는 그리스로 가는 비행기 티켓은 나에게 단숨에 활력을 되찾아 주었다. 여행을 준비하면서 알아봐야 할 것도 많았고, 할 일도 많았기 때문이다. 여행 일정을 짜는 일도 만만치 않았다. 생각보다 예산이 많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고 급한 대로 출국 전 열흘 동안 단기 아르바이트를 세 개나 잡아 닥치는 대로 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여행준비를 해나갈 수록 새로운 걱정이 함께 찾아왔다. 36일 간의 여행으로 더 이상 다음 전형을 진행할 수 없어 멈춰버린 취업 준비, 빠듯한 예산과 통장 잔고, 여행준비기간과 여행 기간을 포함하면 두 달 이상 늘어날 나의 공백기까지. 출발도 하지 않았는데 벌써 집으로 돌아오고 싶어졌고, 떠나지도 않았는데 일상의 소중함을 알 것만 같았다.

 그래도 뭐 어쩌겠는가! 이미 일을 저질러버린 것을. 이럴 때 아니면 내가 여행을 언제 가보겠는가 생각을 하며 즐겁게 생각하려고 노력했다. 단체여행이 아니라, 내가 직접 계획해서 떠나는 해외여행은 태어나서 생전 처음이다. 거기에 여행 직전, 6살 어린 사촌동생까지 함께 가게 되어 책임이 막중해졌다.


(스카이스캐너)

 세계의 저렴한 항공편과 호텔 예약, 그리고 렌트카 대여를 전문으로 하는 영국의 에든버러에 본사를 두고 싱가포르에 지사를 두고 있는 영국의 서비스 업체이다. 필자는 주로 저렴한 항공권을 찾기 위해 이용한다.


생각지 못했던 비행기 연착


모스크바 공항 폐쇄로 같은 곳만 빙빙 돌던 비행기

 이번 여행에서 안전하게, 그리고 예정된 시간에 도착할 수 있기를 바랐다. 그러나 그리스로 가는 비행기편부터 문제가 생겼다. 원래 예정되었던 비행시간은 인천에서 모스크바로 9시간, 모스크바에서 아테네로 4시간이다. 중간 경유시간은 2시간. 그러나 인천에서 출발이 40분 가량 지연되고, 기상 악화로 모스크바 공항이 폐쇄되면서 비행기는 1시간 가량 착륙을 하지 못했다. 모스크바에 거의 도착해서 같은 곳만 빙빙 돌던 비행기가 착륙하자 사람들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고, 몇몇 단체 한국인 관광객은 박수를 치며 좋아했다. 

 예정된 환승 비행기 탑승시간은 저녁 6시 35분, 하지만 모스크바 공항에 우리가 내린 시각은 이미 6시 45분이었다. 결국 환승해야할 비행기를 놓치고 말았다. 기내에서 승무원에게 다음 탑승권을 보여주며, 환승할 비행기를 탈 수 있냐고 묻자 승무원은 걱정하지 말라고 너희의 잘못이 아니니 설사 타지 못하더라도 대체편이 제공될 것이라 했었는데 그 말에 조금은 안심을 했었다. 그러나 대체편으로 배정된 항공기는 다음 날 아침 9시 5분 비행기였다. 맙소사.


너무나 크고 넓었던 모스크바 공항

 기내수하물을 잔뜩 들고 공항에서 어떻게 밤을 보내나 걱정을 하고 있는데, 러시아항공 직원이 3층 서비스 센터에 가라고 했다. 한참을 헤매다 출국 수속을 밟고, 출국장을 나가 다시 3층으로 올라갔다. 몇 번이고 물어 겨우 서비스센터에 도착하니 이미 2시간 가량이 지나가 있었다. 모스크바 공항은 너무나도 크고, 러시아 사람들의 영어 발음은 알아듣기 어려웠다. 게다가 러시아 특유의 강한 억양과 말투, 불친절한 태도에 길을 물어볼 때마다 기분이 나빠졌다.

 진이 빠졌지만 서비스 센터에 도착해서도 줄을 30분 이상 서야했다. 그러나 돌아온 답변은 항공사 측에서 제공하는 무료 호텔이 다 나가 공항 음식점이나 카페에서 사용할 수 있는 밀바우처를 줄 수 있다는 답변뿐이었다.


4시간만에 겨우 받아낸 무료 호텔

 어떻게 해야 하나 주변을 맴돌고 있는데, 분명히 동났다했던 무료 호텔을 제공받는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이를 보고 비슷한 처지의 한국인들과 함께 불만을 토로하며 이야기를 나눴다. 그들로부터 항공사가 자국민들한테는 '동났다던' 호텔을 계속 주고 있다는 소리를 들었다. 이런게 인종차별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항공사 규정도 다시금 확인했다. 밤에 6시간 이상 비행기가 연착될 경우 무료 호텔과 호텔까지의 교통편, 식사까지 제공한다는 내용이었다. 항공사 일처리에 화도 났고 공항에서 밤을 새는 것은 도무지 자신이 없었다. 다시 줄을 섰다. 싸움이라도 해서 무료 호텔을 받으려고 마음을 먹고 있었는데 이번에는 순순히 호텔을 줬다. 대체 아까는 왜 안준건데?


모스크바에서 하루 잠을 청했던 호텔

 호텔에 도착해서 체크인을 하니 벌써 12시가 넘은 시간이었고, 우리가 다음 날 타야할 공항행 셔틀버스는 새벽 5시차였다. 항공사의 체계 없고 느린 서비스 제공에 이미 사촌동생과 나는 기진맥진한 상태였다. 나뿐만 아니라 같은 고객이면서도 저마다 받은 서비스가 각기 달랐고, 항공사 서비스에 불만을 가진 사람들이 많았다. 하지만 우리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계획에도 없던 러시아에서의 하룻밤이라니. 이런 것도 여행의 묘미인가. 오늘 한 고생을 하면 화도 나고, 내일은 잘 갈 수 있을까- 걱정도 되고, 어이가 없어 웃음도 났다. 생각지 못한 비행기 연착으로 모스크바에서의 밤이 그렇게 저물어가고 있었다. 내일 아침엔 무사히 아테네행 비행기를 탈 수 있기를. 


(아에로플루토 러시아 항공)

 아에로플루토 러시아 항공은 연착과 수화물 분실로 악명이 높다. 필자의 경우 모스크바 공항을 경유하여 아테네 공항으로 가는 비행기였다. 환승시간이 2시간으로 넉넉하다고 생각했는데, 연착이 되는 경우도 많고 모스크바 공항의 규모가 큰 편이라 웬만하면 더 넉넉한 환승시간을 권유한다. 모스크바 공항 이용시 러시아 사람들 특유의 말투와 억양이 우리나라 사람들이 듣기에 친근한 느낌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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