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dami Jul 30. 2018

저마다의 자연스러움

조금은 무서웠던 밤산책


 저녁 7시경 밤에 잠시 언니와 산책을 나갔다. 너무나 당연하게도 아침에 집을 나섰을 때 풍경과 밤의 풍경은 사뭇 달랐다. 언니가 살고 있는 집은 미국 대사관 근처인데, 시위로 주변이 좀 시끄러웠다. 그리스는 시위가 자주 일어나고, 이로 인해 교통이 통제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예전에 시위를 하던 사람 중 하나가 잔인하게 죽어, 그 뒤로 시위가 많이 과격해졌다고 했다. 살짝 겁이 나서 얼른 들어가자고 했다. 집에 들어가기 전 마트에 들러 계란, 바나나, 우유를 구입했다.


저마다의 자연스러움


언니 집에서 보이던 창 밖 풍경


 현지시각 밤 9시에 잠이 들어 눈을 떠보니 새벽 2시였다. 한국과 아테네의 시차는 7시간. 규칙적이지 못한 수면 시간에 피곤해졌다. 오지 않는 잠을 억지로 청해볼까 하다가 조금(?) 이른 시간에 하루를 시작하기로 했다. 오후와 저녁 뜬금없는 시간에 잠이 오고, 아침에는 자꾸 새벽에 깬다. 엄마한테 말을 했더니 스트레스 받지 말라고 한다.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현지에서 시간을 보내다 보면 자연스럽게 적응 될 것이라고. 그렇다. 억지로 한다고 되는 건 아닌 것 같다. 하지만 새벽에 깨면 정말 할 일이 없다!

 언니는 여행을 많이 다녔다. 대학교에 입학한 후부터 수십 번 비행기에 올랐고, 취업도 해외에서 했다. 그러다보니 요새는 어딜 가도 감흥이 없다고 한다. 예전엔 처음 가는 곳에 가면 새롭고 신기했었는데 지금은 다 사람 사는 곳이지 하는 생각이 든다고 한다. 그런 언니의 말을 듣고 나 또한 엄마처럼 그냥 편하게 생각하라고 했다. 여행을 많이 다녀 그런 감정이 느껴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또 그러다보면 자연스럽게 다른 새로움을 찾고, 어떤 곳을 가면 새로운 감정이 느껴지는 날이 올 것이라고.


창 밖 풍경, 그리고 오렌지나무


 나는 일상에 지쳐 새로운 것을 찾으며 비행기 티켓부터 끊었다. 나에겐 매우 놀라운 일이다. 나는 언니와 달리 여행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여행을 위해 무언가를 찾아보고, 알아보고 계획을 짜는 일도 힘들뿐더러 떠나는 것도 상당한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길을 나서면 돌아올 것을 걱정하고, 나가는 경비도 걱정이 많이 된다. 그래서인지 지금까지 해외로 나와 본 것이 단체로 두 번이 전부이다. 하지만 나는 왜 여행을 별로 안좋아할까를 가지고 걱정해본 적은 없다. 언니와 나의 생김새가 다르듯, 여행에 대한 생각이나 태도 또한 다른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기 때문이다. 여행을 별로 좋아하지 않던 나에게, 이번엔 자연스럽게 여행이 나에게로 찾아왔다.

 오늘은 조금 지치고 힘들었다. 어떻게든 나가보려고 했는데 그놈의 시차적응 때문에 새벽에는 일찍 잠을 깨 미친듯이 심심했고, 낮에는 미친듯이 졸렸다. 새벽부터 혼자 나갈 수는 없다보니 자연스럽게 하루 종일 언니 집에서 쉬었다. 언니가 벌써 자냐고 나가라고, 나가라고 하는 소리를 듣다 5시부터 잠이 들었다. 그리스까지 와서 방콕이라니! 나도 참 나답다.


비잔틴박물관과 전쟁박물관


 어제 일을 반성하며 다음 날은 아침부터 언니 집에서 나왔다.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사촌동생을 깨워보려고 했는데 도무지 일어나질 않는다. 이 역시 사촌동생의 자연스러움이다. 포기하고 혼자 길을 나섰다. 검색을 통해언니 집에서 걸어서 10분 거리. 에반겔리모스 역과 신타그마 역 사이에 박물관이 모여있다는 것을 알았다. 겁도 없이 혼자 무작정 구글맵을 키고 걸었다. 그렇게 비잔틴 박물관과 전쟁 박물관을 방문했다. 입장료는 두 곳 다 4유로이고, 아테네를 방문하는 사람들이 꼭 가는 아주 유명한 곳은 아니다. 하지만 이런 곳을 방문해보는 것이 보통의 여행자들보다는 '조금' 길게 살고 있는 나만 할 수 있는게 아닐까.


비잔틴 박물관

 비잔틴 박물관의 경우 규모가 크지는 않지만 관광객들로 북적이지 않아 조용하고 여유 있게 볼 수 있고, 소매치기 걱정이 없어 좋았다. 곳곳에 배치된 직원들이 관람객보다 많은듯한 느낌이었다.


전쟁박물관

 전쟁박물관은 비잔틴 박물관 바로 옆에 위치해 있으며, 규모는 비슷하거나 조금 더 큰 느낌이다. 전쟁과 관련된 여러 전시물들이 있었지만, 한국 전쟁과 관련된 전시물들이 가장 눈에 띄었다. 역시 아는만큼 보이고, 관심이 생긴다. 솔직히 두 박물관 모두 관심이 있던 분야는 아니다 보니 크게 흥미가 생기지는 않았다.

 여행을 풍성하게 만드는 건 여러가지가 있을 것 같다. 새로운 경험, 함께하는 사람, 내가 보고 경험하는 그 모든 것들. 그 중 하나가 바로 내가 갖고 있는 배경지식인 듯 하다. 그리스 관련 책 좀 많이 읽고 올걸! 하다못해 여행서적이라도.


공원과 바자회

전쟁박물관 지하의 바자회


 재미있게도 전쟁박물관 지하에서 바자회를 하고 있었다. 옷, 인형, 책, 음반, 화장품까지 여러 제품을 팔고 있었고 사람들도 많았다. 바자회의 분위기를 업 시켜주는 연주자도 있었다. 물건을 구경하며 음악을 들었다. 판매자 한명이 주변에서 머뭇거리는 내게 와서 말을 걸더니 10유로 이상 사면 하나는 공짜라고 한다. 쉽사리 동화되지 못하고, 주변을 맴돌던 나에게 그 말이 특별한 말은 아니지만 특별하다. 알려줘서 고맙다고 했다.


햇살이 따뜻하고 맑아 기분이 좋았던 공원


 지하에 있는 또 다른 문으로 나오니 아까 지났던 공원이 보인다. 햇살이 따뜻하고 맑아 기분이 좋다. 공원을 거니는 사람들이 참 여유로워 보인다. 나를 포함해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