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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mi Aug 01. 2018

걷고 또 걷다

맥주와 야경

 저녁에는 언니, 그리고 언니 친구들과 함께 밖으로 나왔다. 원래는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물씬 나는 Little Kook이라는 카페에 가기로 했는데, 줄이 길어도 너무 길었다. 한국에서나 여기서나 인기 많은 곳은 사람이 몰리고, 웨이팅이 있나보다. 아쉽지만 모두들 만장일치로 이 카페에 가는 것을 포기하기로 했다. 


기네스에서 마셨던 맥주


  대신 근처에 위치한 바에 가서 맥주를 마시기로 했다. 일요일인데도 많은 사람들이 술을 즐기고 있었다. 조금 춥지만 야외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기네스와 몇 가지 안주를 시켰다. 짧은 영어로 몇몇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공부하고 취업준비를 하다 지쳐 비행기표를 끊었고, 언니가 있는 아테네에 쉬러 왔다고 했다. 언니 친구인 마짓이 인생은 배움의 여정이니만큼, 사는 것은 항상 공부란다. 나도 안다. 그러니 지금 나에게는 쉬는 것이 공부다.

 맥주를 마시다보니 몇몇 사람들이 와서 말을 건다. 옷차림이 남루한 한 소녀가 그리스어로 적힌 글을 들고 테이블을 돌아다닌다. 일행이 됐다고 하고 차갑게 소녀를 보낸다. 구걸하는 소녀가 불쌍해보여, 일행이 조금은 매몰차보였다. 알고보니 들고다니는 종이로 테이블을 가리고 핸드폰을 가져가는 수법이란다. 오기 전 소매치기에 대해 숱하게 들었는데도 상상도 하지 못했다. 아무 힘이 없어 보이는 어린 소녀마저도 경계를 해야하는구나. 복잡한 감정이 들었다. 곧, 어떤 행상이 와서 보조배터리, 휴대용 조명, 라이터 등을 갖고 와서 사라고 한다. 일행 중 한 명이 보조배터리가 필요하다며 무려 10유로를 주고 구입했다. 바로 충전을 해보았는데 애석하게도 충전이 잘 되지 않는다. 이런! 


리카베투스 언덕에서 바라본 아테네 야경


 간단히 맥주를 마시고 다 함께 리카베투스 언덕으로 가기로 했다. 아테네에 온 첫날, 택시기사님께서 꼭 가보라고 추천해준 곳이다. 그 경사가 가팔라 걸어가기엔 조금 힘든 곳 같은데, 역시 차가 있으니 편하다. 경사 때문에 조금 무서울때도 있었긴 했지만 말이다. 리카베투스 언덕에서는 아테네 시내가 한눈에 보인다. 저기 가깝고도 멀리 아크로폴리스도 보인다. 맥주 한잔에 알딸딸한 느낌도 있고, 아직 시차적응이 안돼 피곤했지만 다시 차를 타고 떠날 때까지 그 옛날 그리스 사람들이 민주주의와 찬란한 문화를 꽃피웠을 그 곳을 오래오래 눈에 담았다. 기사님 말씀대로 여기서 해돋이를 보면 참 멋질 것 같다.


(Little Kook)


크리스마스 시즌, 화려하게 장식을 한 Little Kook


 아테네에 있는 카페. 시즌마다 컨셉을 바꾼다. 화려한 인테리어와 코스튬으로 한 번쯤 꼭 방문하고 싶었던 곳이었는데 갈 때마다 웨이팅이 있거나 마감시간이라 결국 가지 못했다. 


발길 닿는 대로, 걷고 또 걷기

 아침에 일어나 또 다시 무작정 걸어보기로 했다. 언니 집에서 나와 작은 공원을 지나, 어제 갔던 전쟁 박물관과 비잔틴 박물관을 지났다. 걷다보니 도로 옆으로 꽃집이 보인다. 여기 꽃 가격은 한국과 비교해서 비슷하거나 약간 저렴한 느낌이다. 이국적인 느낌과 꽃이 주는 향기가 어우러져 즐거움을 준다. 꽃집을 지나니 우리가 아는 곳이 나온다.


근위병 교대식


 신타그마 광장과 아테네 국회의사당이다. 운 좋게도 근위병 교대식을 볼 수 있었다. 큰 키의 근위병들이 털 달린 신발을 신고 탁탁 소리를 내며 걷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매주 일요일 11시 정각에는 의장병 행진이 있다고 하니, 시간 맞춰 다시 보러 와야겠다.

 신타그마 광장을 지나 우리나라의 명동과 같은 거리를 지나 모나스트라키역쪽으로 다시 걷는다. 디저트도 구경하고, 화장품도 구경하고, 여러 물건을 저렴하게 파는 다이소 비슷한 곳도 구경했다. 한국이나 여기나 구경할수록 사고 싶어지는 건 똑같다. 남은 일정에 비해 얇은 주머니 사정을 생각해 사는 것은 최대한 자제하기로 한다.


모나스트라키역 주변 아이스크림 가게


 하지만 결국 모나스트라키역 주변의 한 아이스크림 집에 들어갔다. 아이스크림이나 토핑의 종류에 상관없이 무게로 금액을 지불하는 곳이다. 복합쇼핑몰이나 놀이동산마다 있는 한 젤리상점처럼말이다. 아이스크림 가격은 100g당 2.2유로. 나는 요거트 아이스크림 위에 초코시럽을 뿌려 나만의 아이스크림을 완성하고 4.4유로를 지불했다. 여기도 겨울이지만 아이스크림은 언제 먹어도 역시 달다. 디저트를 좋아하는 사촌동생은 초코아이스크림으로 가득 채워 토핑도 듬뿍 뿌렸다. 사촌동생에게 그녀가 완성한 초코 아이스크림은 단돈(?) 5.6유로에 완전한 행복을 준다.


(아테네 국회의사당)

 웅장한 신고전주의풍의 '오래된 궁전', 즉 국회 의사당 건물은 아테네 동쪽 끝의 광장 한쪽 끝에 서 있다. 이 건물은 1836년 바이에른의 건축가 가르트너에 의해 설계되었으며, 원래는 바이에른의 젊은 왕 오토를 위한 궁전으로 지어졌다. 궁전의 내부는 그리스의 역사와 신화에 나오는 장면으로 장식되어 있었으나, 오늘날까지 남아 있는 것은 거의 없다.


크리스마스 팩토리


 여기서 바로 집으로 갔어야했는데! 마트를 찾겠다고 구글맵을 켰다가 그만 길을 잃었다. 우리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또 걷다보니 케라마이코스 역 근처 크리스마스 팩토리가 나왔다. 검색해보니 한국인들이 잘 방문하는 곳은 아닌 것 같다. 


크리스마스 팩토리

 마침 월요일엔 입장료가 반값으로 2명에 5.5유로란다. 마침 월요일이니까 들어가보기로 했다. 아이들을 위한 작은 놀이동산같은 곳이었다. 주로 아이들을 위한 놀이기구, 그리고 체험장이 마련되어 있다. 직원들은 대부분 크리스마스 코스튬을 하고 있다. 나는 산타와 함께 사진을 찍었다. 아이들을 위한 곳 같아 크게 재미있지는 않았지만, 밤에 다시 방문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지인들이 주로 방문하는 곳을 우연히 가보게 되는 것은 그 지역에 사는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호사다.

 언니 집에서 나와 케라마이코스역까지 헤매고 헤매 걸은 15,000걸음. 공부한답시고 운동을 등한시하던 나에게는 지치고도 충분한 활동량이다. 집으로 돌아올 때는 다행히도 지하철을 찾아 타고 왔다. 오는 길에는 마트에서 사촌동생이 좋아하는 초코 우유를 하나 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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