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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실습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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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seudomin Oct 22. 2017

안녕하세요. 학생의사입니다.

실습 일기

"안녕하세요. 학생의사 OOO입니다. 환자분 성함과 연세가 어떻게 되시죠? 지금부터 10분간 진료를 보려고 하는 데 괜찮으시겠어요?" 본과 3학년 때부터 CPX 준비를 할 때 수없이 하는 말이다. 본과 2학년 때도 모의환자 시험을 보긴 하지만, 그때는 교수님이 환자 진료를 하는 것을 한 번도 보지 못해서, 난생처음으로 그런 말을 하는 것이 부끄러워서 그 쉬운 말을 하지 못하게 된다. 하지만 본과 3학년이 되고 CPX 성적 비중이 커지고, 다른 사람들이 진료하는 것을 보면서 달라진다. 


오시는 데 힘드시진 않으셨나요?


이제는 더 발전해서 모의환자 앞에서의 다음 대사까지도 익숙하다. "안녕하세요. 학생의사입니다. 환자분 성함과 연세가 어떻게 되시죠? 오시는 데 힘드시진 않으셨나요? 제가 지금부터 10분간 진료를 보려고 하는데 괜찮으시겠어요? ---해서 병원에 오셨다고 했는데 맞으신가요?" 여기까지 정말 청산유수다. '오시는 데 힘드시진 않으셨나요?'라는 질문은 아무 감정 없이 해도 점수를 받는 보너스다. 환자와의 사적 질문으로 분위기를 풀면서 rapport를 쌓는 문장이기 때문이다. 여러 바리에이션들이 있는데, '식사는 하셨나요?', '오늘 날씨가 많이 춥죠?'와 같은 말이 있고, 모의환자분께서는 대부분의 질문에 대해 생동감 있게 답변해 주셔 실제 환자 같은 분위기를 만들어 주시나, '점심식사는 무엇을 드셨나요?'라는 말에 당황했다는 경험담도 들린다.


처음 20초 간은 대본대로 하면 되기 때문에, 환자와의 정신적인 교감을 하기 위해 환자의 눈을 바라보고, 여유 있는 모습을 보여주며, 환자의 말을 최선을 다해 경청하기까지 완벽한 태도를 보여줄 수 있다. 더 능숙해지면 말하면서 물어볼 것의 순서들을 정리하고, 어떻게 모의환자 시험을 이끌어 나갈지 생각하게 된다.


OOO 교수님 팀에 있는 OOO입니다.


본과 3학년이 되면 병원 실습을 하며 실제 환자와 면담을 하는 상황이 오게 된다. 모의 환자 때는 대본 읊듯이 술술 나오던 말이 실제 환자에게 가서는 'OOO 환자분? OOO 교수님 팀에 있는 OOO입니다. 환자분 면담을 하러 왔는데요. 몇 가지 여쭤봐도 될까요?'라는, CPX였다면 거의 점수를 받지 못할 말로 바뀐다. 마치 자신이 학생이라는 것을 알려주기 싫어하는 듯, 의사인 척하고 싶어 연기하는 듯 말하게 된다. 떨리는 눈, 한 마디 한 마디 힘들게, 최대한 스스로가 당황하지 않게 방어하면서, 정말 당황할 분위기를 예상할 때는 용기를 얻기 위해 친구를 옆에 두고 면담하기도 한다.


모의환자 시험과 실제 환자 면담은 초진과 입원 환자 면담이라는 큰 차이를 가지고 있다. 초진환자는 병원에 처음 오거나, 다른 과에서 진료를 받고 있었지만 현재 진료받는 과에 처음 오는 환자이다. 입원환자는 외래를 경유해서 입원을 하였기 때문에 이미 의료진과 자신의 질병에 대한 이야기는 어느 정도 된 상태이다. 오전과 오후 두 번의 회진, 그리고 담당 레지던트와의 여러 번의 만남을 가진다. 입원기간이 길거나 눈치가 꽤 빠른 환자들은 면담을 하러 온 사람이 학생인 것을 알고, 비협조적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모의환자 시험이 입원환자 면담에 아무 쓸모가 없지는 않다. 시험 준비를 하면서 환자와 끊임없이 눈 마주치기, 공감하기, 환자의 증상에 대해서 논리적인 흐름으로 물어보는 행동이 반복되면 무의식적으로 환자와의 면담에서 나오게 된다. 실제 환자와 대화할 때는 무의식적으로 교감을 쌓는 행동을 통해 어느 정도 호감도가 쌓이면 면담이 수월하게 진행되고, 증상에 대해서 한 가지를 물어보면 관련된 증상들을 말해주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정보를 빠르게 얻는 경우도 있다. 그런 점에서 면담을 할 때마다 이론과 실제는 한참 다르다는 생각이 든다.


다시, 내 소개로 돌아와서, 글을 읽는 독자들에게, '안녕하세요. 학생의사입니다.'라고 소개를 하고 싶다. 어쩌면, 아직 평범한 의대생일 수도 있지만, 졸업 직후 환자를 환자를 진찰하고 처방을 하게 될 훗날의 나를 위해서, 그리고 다양한 목적으로 글을 읽는 독자들을 위해서 한 글자 한 글자 써 나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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