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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seudonysmo Oct 21. 2019

카탈루냐의 혼돈, 폭주하는 중도좌파

총선을 앞두고 본심을 드러낸 중도 좌파 PSOE(노동당)과 임시 총리

2019년 10월 14일, 2017년 10월 1일의 독립 국민투표(10-O)에 이어 추진된 일련의 카탈루냐 독립 움직임과 관련된 재판(일명 Procés로 불렸던)의 최종 대법원 판결이 있었다.


결국, '횡령'과 '권력 남용'의 이유로 당시 카탈루냐 지방 정부를 이끌고 있던, 부-주지사 오리올 즁케라스(Oriol Junqueras)를 비롯한 핵심 인물 9명에게 9년에서 13년 사이의 징역이 내려졌고, 그리고 나머지 3명의 직위는 해제되었다(관련 기사).


이들에 대한 유죄 판결은 사실 어느 정도 예견된 일이었다. 지속적으로 업데이트되는 판결의 내용들에서 법원은 이들의 죄를 명확히 인지하고 있었고, 따라서 개인적으로는 선고일 이후에 카탈루냐가 다시 시끄러워질 것이라 어느 정도 예상은 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의 분노는 나의 상상을 초월했다.

https://youtu.be/UtBh2GCbVcE

내 인스타그램 스토리에는 길거리에 불을 지르고 시위하는 독립 지지자들과, 그러한 시위단을 폭력 진압하는 중앙 경찰들의 영상들이 끊임없이 올라왔다.


또한 바르셀로나에서 꽤나 외곽에 떨어져 있는 엘 프랏 공항을 점거한 카탈루냐 독립 지지자들은 항공권이 있어야 통과할 수 있는 공항 검색대를 지나(이것을 위해 실제로 항공권을 샀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우파 언론에서는 이마저도 검색대를 속일 수 있는 가짜 모바일 탑승권을 활용했다고 보도) 비행기가 지나다니는 활주로까지도 점거했다.


하지만, 시시각각으로 올라오는 뉴스와 SNS 속 영상보다도 나에게 더 큰 충격을 준 것은 따로 있었다.

불구덩이에 기름을 붓는 임시 총리 페드로 산체스(Pedro Sánchez)의 기자회견

https://youtu.be/y5wst0dGGOQ?list=PLeEzCJHXClX2bzz6-g9RiHhQCr34-MBu8

장황하게 설명은 했지만, 결국 '대법원의 판결을 존중하며, 이들을 사면하는 일은 전혀 없으며 그 누구도 법 위에 설 수는 없다'는 이야기. 사실 이러한 입장 또한 전혀 예상치 못했던 것은 아니었다.

내가 충격받았던 것은 이렇게 솔직한 욕망이 드러나는 기자회견을 대법원 판결이 난 직후에 했다는 사실이었다.

카탈루냐는 지속해서 '중앙정부와의 대화'를 요청해 왔다. 사실 2017년 10월 진행된 카탈루냐 독립에 대한 주민 투표는 (적어도 내가 보기에는) 정말 무결하게 적법한 선거는 아닌 것으로 보였다. 또한 실제 투표 참가율과 그 참가자 내 '독립 찬성'의 비중이 그렇게 크지는 않았다.


그렇다 하더라도 카탈루냐 지방 정부는 이러한 자료를 기반으로 중앙 정부와의 대화를 요청했고, PP(국민당) 당의 우파 중앙 정부는 여기에 헌법 155조를 통한 카탈루냐 지방정부 해산이라는 강경 카드로 대응하며 불꽃이 일기 시작한 셈이다.


그리고 우파 정권 탄핵 이후 등장한 중도 좌파 PSOE(노동당)과 산체스 임시 총리. 그러나 이들도 카탈루냐 상황에 대해 뚜렷한 해법을 제시하기는커녕 동일한 입장을 더 두루뭉술하게 유지할 뿐이었다.


이들은 계속해서 '카탈루냐 독립 문제는 스페인 중앙정부의 헌법 내에서 해결'한다는 입장을 내세우고 있었고, 이는 결국 우파 PP당이 추진했던 헌법 155조(카탈루냐 지방정부 해산)라는 카드를 버리지는 않겠다는 것을 의미했다.


심지어 Procés 판결의 유죄가 임박한 지난 9월 말 즈음해서는 실제로 산체스 임시 총리가 '최후의 수단'이라는 워딩을 사용하며 지방 정부 해산을 염두하고 있음을 언급하기도 했다. 그리고 지루한 말 돌리기의 끝에 대법원 판결일 오후, 임시 총리는 대법원의 판결을 지지한다는 기자회견을 개최한다.

결국, 대법원 판결을 앞세워 자신들의 책임을 돌릴 수 있는 10월 14일까지 끝없는 폭탄 돌리기를 했던 셈.

대법원 판결 이후 페드로 산체스와 현 임시 내각은 카탈루냐 지방 정부와의 대화는 일체 회피하며 '카탈루냐의 모든 평화로운 집회의 권리를 지지하나, 불필요한 폭력과 불법 행위에 대해서는 강경하게 대응할 것'이라는 입장만을 고수하고 있다.


이들은 1) 현재 카탈루냐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지 못하거나 2) 계속해서 상황을 축소 포장하여 현재의 지지세력을 어떻게든 모아 총선을 넘기려는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이러한 일련의 상황들을 보며, 뜬금없지만 우리나라에서 도덕성을 무기로 지지를 받은 586 좌파가 보인 도덕적 해이로 인한 실망이 겹쳐지고 또다시 정치와 정치인들에 대한 회의감이 들기도 한다.

P.S. 글을 발행하는 과정에서 관련 태그에 '카탈루냐', '까딸루냐', '카딸루냐' 등을 아무리 검색해도 선택 가능한 옵션은 '카탈루냐미술관' 밖에 나오지 않는다. 대체 브런치는 내가 원하는 태그를 왜 못 입력하게 하는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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