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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seudonysmo Oct 12. 2019

시체스 판타스틱 영화제 경험기 (2)

이렇게 정신 나가고 자유분방한 영화제는 처음이야!

내가 코믹콘에 온 건지 영화제에 온 건지

시체스의 개봉 첫 주 토요일 밤에는 '좀비 워크'가 열린다. 시체스 해변가 언덕에 위치한 산 세바스티안 묘지(Cementiri Municipal de Sant Sebastià) 앞에 해 질 녘 오후 8시에 각종 분장을 한 채 집결해서 산 세바스티안 해변을 따라 행진하는 행사.

이 행사에 참가할 좀비들을 모집하기 위해, 산 세바스티안 해안가에는 정오부터 영화제 방문객들을 위해 무료 좀비 분장을 제공한다.

좀비 분장 부스와 사람들, 사진에 보이는 분장한 사람들은 죄다 '직접 분장을 한 사람들'이지만.

나도 혹시 좀비 분장을 받을 수 있을까 해서 줄을 서 보았지만, 사람들은 너무나 많았고 대기열은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결국 포기하고 해변가의 부스를 거닐고 있는데, 분장을 한 채 하루 종일 돌아다니며 사진을 위해 포즈를 취하는 사람들, 그리고 그 뒤로 펼쳐지는 각종 머천다이즈를 파는 광경 가운데에서 나는 지금 영화제에 온 건지 코믹콘에 온 것인지 헷갈릴 지경.

이러한 이유로, 사람들이 약간 전형적인 관광객의 옷차림을 하고 다녔던 산세바스티안 영화제와는 달리, 시체스 공식 티셔츠를 입고 백팩을 멘 채로, 팔다리에 타투를 하고 있거나 특이한 헤어스타일을 하고 다닌다거나 하는 사람들이 많이 보였다(백인 남성들이 유독 많이 보였던 것은 느낌 탓일까).

영화를 진정으로 즐기는(!) 관객들이 모인 곳

머나먼 옛날, 청소년 영화제에서 자원활동가로 일하던 당시, 청소년 심사단의 일원으로 모든 경쟁부문을 보러 다니던 친구들은 모든 상영회차의 시작을 알리는 영화제의 리딩 필름의 음악에 맞춰서 노래를 부르고 박수를 치곤 했다. 그리고 오랜 세월이 지나 2019년의 시체스에서, 그 광경을 다시 목도했다.


시체스의 마스코트는 고릴라, 그러니까 킹콩이다. 시체스 영화제의 리딩 필름은 시체스 해안가를 향해 저벅저벅 걸어오는 킹콩을 담고 있는데....

https://youtu.be/GiWrXDWVDqs

이 영상만 등장하면 모든 관객들이 환호하며 박수를 치곤 했다.

관객들의 박수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는데, 영화가 상영하는 중에도 환호성을 지른다거나, 박수를 치는 광경이 여러 번 연출되었다. 예를 들어 영화에서 중요한 장면-악역이 드디어 죽는다거나-이 등장하는 순간 온 극장이 환호하는 식. 전반적으로 영화를 관람한다기보다는 함께 영화를 즐기는 분위기였다.

산세바스티안 보다는 작은 규모, 휴양 온 셈 치는 거지 뭐

다른 스페인 영화제와 마찬가지로, 여기도 역시 지정좌석제가 아닌지라 좋은 좌석을 얻기 위해 사람들이 상영시간을 앞두고 줄을 서서 기다리는 광경을 쉽게 보게 된다.

다만, 개막 첫 주 주말임에도 불구하고 뭔가 복작복작스러운 느낌은 받을 수가 없었는데, 이건 아무래도 영화제의 규모가 작아서 그런 듯싶었다. 약 7-8개의 베뉴와 15개-20개에 달하는 상영관을 운영하는 산세바스티안과는 달리, 시체스의 상영관은 고작 5개, 베뉴 모두가 단관 상영관으로 된 단출한 규모였고, 상가/레스토랑들이 몰린 메인 스트릿에 뻘하게 걸린 현수막들이 뭔가 소박하게 '우리 축제 중이야~'라고 고개를 빼꼼 내미는 듯하다.

낯선 시체스에서 마주친 스페인 최고의 환대

사실 거창하게 소감을 읊었지만, 이번 시체스 영화제가 내 기억에 오랫동안 남는다면 그것은 아마 영화제에 도착하자마자 맞닥트린 한 자원봉사자의 호의 덕분일 것이다.


이번 영화제에서 가장 보고 싶었던 영화는 제시 아이젠버그와 이모젠 푸츠가 나오는 '비바리움'이었다. 내가 방문하는 주말 중 비바리움의 상영회는 총 2회로, 토요일 아침 10:15시와 일요일 저녁 22:15분이었다. 토요일 아침 7시 비행기로 마드리드에서 출발하고 일요일 저녁 9시 반 비행기로 바르셀로나에서 돌아가는 나에게는 여의치 않은 일정이었기에, 결국 토요일 아침 상영회차를 예매하지 않고 당일 도전만 해보기로 마음먹었다.


그러나, 새벽 네 시에 일어나 비행기를 허겁지겁 타고 도착한 바르셀로나 공항에서 시체스까지 오는 버스를 찾아서 돌아다니는 사이 나의 결심은 기억 속에서 사라진 지 오래였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오자마자 (비바리움 상영관인) 멜리아 호텔로 걸어가고 있었는데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는 게 아닌가.


그렇게 기다리던 사람들이 문이 열리자마자 좋은 자리를 얻기 위해 뛰어가는 걸 보며 '대체 뭔 영화길래?' 하는 생각으로 상영시간표를 보자마자 마음이 덜컥했다. 뒤늦게 티켓 오피스에 가니 상영 시작을 알리는 종이 울려 입장이 불가하다고 한다.


일요일 상영회차는 매진이고 월요일은 내가 마드릿으로 돌아간다고 이야기를 하고 황망히 서 있는데, 직원이 문득 결연하게 'Te acompaño, dame tu tarjeta(같이 들어가 줄게, 신용 카드 줘 봐)'라고 하는 게 아닌가!


그렇게 뒷문을 통해 직원과 함께 들어간 나는 초반 약 2분? 만을 놓치고 비바리움을 볼 수 있었다.

그렇게 다행스럽게 얻은 '비바리움' 입장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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